10일 오전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탤런트 고 정다빈(본명 정혜선)씨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에 영정사진이 놓여있다. (서울=연합뉴스)
[정다빈 빈소 취재 현장] “~아니예요?…아닌가보네, 찍어봤는데”
지난 10일 정다빈씨가 서울 삼성동의 한 빌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후 강남경찰서, 서울의료원, 서울아산병원 등을 숨가쁘게 쫓아다닌 <한겨레> 수습기자가 취재 현장에서 느낀 소감을 정리했다.
1. 취재와 속보의 경쟁
열띤 취재 경쟁이라는 말은 충분하지 않았다. 차라리 그것은 아수라장이었다.
정다빈씨가 숨진 10일 소속사인 세도나미디어 소용환 본부장이 강남경찰서에 나타나 50여명의 기자들에 에워싸여 있을 때였다. 둥글게 모인 기자들 가운데 맨 앞에 선 취재 기자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펜을 놀려 소 본부장의 말을 받아 적고 있었다. 그 바로 뒤에서는 방송기자들이 팔을 한참 뻗어 무선 마이크와 녹음기 등을 들이댔다. 그 뒷줄에는 한 무리 사진기자들이 대포알처럼 생긴 렌즈를 들이대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고, 또 비디오카메라 기자들이 대포처럼 생긴 방송용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다.
이 동심원의 가장 바깥에 선 비디오카메라 보조원들은 카메라가 뒤로 넘어지지 않도록 지지대 역할을 하며 온몸을 들이밀고 있었다. 뒤늦게 온 몇몇 취재 기자들은 한참 뒤에서 “좀 크게 얘기해주세요!”라고 요청했으나 공허한 외침이었다. 이 모든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제대로 알아듣고, 좀 더 생생한 녹음을 확보하고, 좀 더 좋은 각도의 ‘그림’을 얻고자 서로 밀고 밀리는 취재경쟁을 벌였다.
소 본부장의 ‘기자회견’은 30분가량 진행됐다. 그러나 시작한 지 10분쯤 되면서부터 몇몇 기자들은 이 치열한 취재 경쟁의 원통을 탈출해 전화를 걸고 있었다.
“지금 정다빈씨의 자살에 대해서 의혹이 남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캐스팅된 드라마가 한 편 있었답니다.” “남자친구가 있는지 몰랐답니다.” “소용환 본부장이요. 소, 용, 환!” 아직 진행중인 인터뷰를 벌써부터 데스크에 전달하고 있는 이 사람들의 정체는 인터넷 연예매체 기자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소 본부장이 자리를 떠나자마자 포털을 검색해보니 벌써부터 소 본부장의 인터뷰 기사가 현장사진과 함께 올라와 있었다. 2. 사실 공개에 주저하는 사람들 누구도 이같은 기자들의 취재 경쟁에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최초 발견자인 남자친구 이강희씨가 경찰 조사를 마치고 나올 때, 경찰은 점퍼의 모자를 푹 눌러쓴 이씨를 데리고 나오며 “이 사람은 다른 사건 관련자에요”라고 소리쳤다. 기자들은 아랑곳 않고 그를 막아서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질문을 던졌다. 길지 않은 경찰서 로비를 통과해 입구의 차량에 탑승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약 3분. 평소 같으면 30초도 걸리지 않았을 거리였지만, 취재진과의 실랑이에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었다. 처음 시신이 안치되었던 서울의료원 장례식장 현황판에는 분명 27살 여성의 주검이 도착했다고 기록돼 있었다. 다만 이름은 ‘미상’이라고만 기재되어 있었고, 나이와 디오에이(DOA, Dead on Arrival, 즉 사망 상태로 병원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표시)만이 정다빈씨 시신의 안치를 짐작하게 했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전혀 확인을 해주려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몰라요. 저 사람 누군지 아직 이름도 안 나왔어요. 이름을 몰라서 안 적은 겁니다. 나가주세요.” 하지만 경찰이 안치장소는 서울의료원임을 이미 공언한 터라 기자들은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으로 시신을 옮기기 위해 유족 가운데 정씨의 작은 아버지 등 친지들이 병원을 찾았을 때, 친지들은 스스로를 “다른 사람”이라고 얘기하며 황급히 카메라들을 피했다. 결연한 표정 속에서 유족임을 짐작하긴 했지만, 떠나고 난 뒤에야 소속사 관계자들로부터 그 사실을 확인했다. 시신을 옮길 때도 마찬가지였다. 병원에서는 아직 옮기지 않고 있다고 하는 가운데, 매니저는 유족들이 다녀갔을 때 요청해서 이미 옮겼다고 했고, 겨울바람 쌩쌩 부는 바깥에서 차가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은 아직 나간 차가 없다고 했고, 유족들은 또 이미 옮겼다고 했다. 결국 처음에 옮기겠다고 했던 시간을 두 시간도 훌쩍 넘겨서야 시신이 이미 옮겨졌다는 것을 병원 쪽에서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었다. 그 때 다시 보니 현황판의 이름이 지워져 있었다. 3. 설, 설, 설 아무도 이렇게 사실 확인을 해주지 않으려 하니, 온갖 추측과 오보가 난무했다. 이날 오전, 경찰은 이미 짧은 브리핑을 통해 당시 조사받고 있는 사람이 최초 발견자이자 신고자이며, 고인의 남자친구라고 확인해준 상태였다. 경찰이 더 이상 기자들의 질문에 응하지 않고 있을 무렵, 한 무리의 인터넷 연예매체 기자들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그나마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소속사 매니저와 이야기를 시작했고, 한 기자가 “안에 조사받는 게 남자친구 맞습니까?”라고 물었다. 당황했는지 매니저는 “남자친구 아닙니다. 그냥 아는 동생입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뒤 인터넷에 올라온 한 연예매체의 기사는 ‘같이 있었던 남자, 남자친구 아닐 가능성’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아산병원에 빈소가 마련되고, 유족들은 아산병원에 가 있는 상황에서 소속사의 매니저가 발인 시간 및 장소에 대해 알려주었다. 발인 장소는 성남화장터가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한 인터넷 연예매체 기자가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더니, 매니저가 나간 뒤 기자들에게 추가 설명을 해주었다. “지금 기사가 벽제화장터로 올라가 있어요. 정정을 해야 되는데, 일단 다들 그렇게 아세요.” 시신이 옮겨지는 과정을 기다리는 동안 기자들 가운데 쏟아지던 이야기도 가관이었다. 저마다의 소식통을 인용하며, 시신이 이미 나갔다, 아직 안 나갔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나마 가장 신뢰할 만한 소식통은 한 명이 병원내를 주시하고, 다른 기자가 시신이 도착할 아산병원 앞에서 차량이 들어오길 기다리는 매체였다. 반면, 최고의 억측은 ‘과학수사대가 도착해서 현재 이 안에서 부검 중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일부 기자들은 또 각자의 데스크에 전화로 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 같았으나 기사화되지는 않았다. 이런 설들은 어떻게 생산되고 있었을까. 이날 아침 기자들이 경찰서에 모여 있었던 때로 돌아가 보자.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은 남자친구 이씨가 나가고 나서, 문 걸어 잠근 폭력팀 사무실. “그 남자친구 학교가 어딥니까? 명지대 아니에요, 명지대?”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수첩을 꺼내들고 펜으로 명지대를 받아적었다. 그러나 철창 너머의 경찰관들이 “그거 알아서 뭐하려고요”라며 아무 반응이 없자 소리 높여 질문을 했던 기자가 읊조렸다. “아닌가보네, 찍어 봤는데.” 4. 기사의 생산 한 인터넷 매체 기자는 “하루에 기사를 열 개, 스무 개 올리는 데 안 힘들겠어요? 틀리고 고치고 그러면 자존심 상처도 입고 속상하죠. 이 바닥이 그래요”라고 말했다. 잡지사 기자 출신으로 연예매체로 옮겨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그는 취재에 열심이었다. 옆에서 전화 통화하는 내용은 굳이 엿듣지 않아도 그냥 들렸다. 서울의료원에서 그는 데스크와 연신 통화를 하며 하나둘 소식을 전달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지금 여기서 얘기 나온 게, 검찰 쪽에서 (부검을 위해) 재조사 안 하는 걸로 결정됐대요. 기사에 넣어주세요.” 그러나 10분쯤 뒤에는 “그거(부검을 위한 재조사 결정) 기사에서 빼주세요. 확인 안 된대요.” 이 과정에서 그가 정보를 들은 것은 경쟁사 인터넷매체 기자를 통해서였다. 사실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기사에 넣었다가, 경찰 쪽에서 확인을 해주지 않자 부랴부랴 삭제를 요청한 듯했다. 언뜻 들리는 뜬소문이 사실로 둔갑하는 것은 순간이었다. “(시신이 서울의료원에서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겨갔다는) 기사는 완성됐죠? 앰뷸런스 떠날 때 제가 전화할게요. 그 때 바로 (인터넷에) 올리면 될 것 같아요.” 속보 전쟁의 대미였다. 정씨의 시신을 싣는 앰뷸런스가 바퀴를 떼는 순간, 인터넷상의 각종 포털에는 속보가 뜨게 되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포털사이트에 뜬 기사는 또하나의 사실확인 절차였다. 매니저는 기자와 따로 가진 대화 도중에 ‘유족들이 공개되기를 원치 않았다’는 이유로 시신을 이미 빈소가 마련된 병원으로 옮겼다고 했다. 이 얘기를 모여 있는 다른 기자들에게 전했더니, 그들은 역으로 “그 내용 기사 났어요(인터넷에 떴어요)?”라고 물어왔다. 그리고 또 다른 몇몇은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 기사를 검색했다. 이렇게 기사 생산이 소문에 의해 이루어지다보니, 누군가 한 사람이 무언가 취재를 시작하면 모두가 우루루 달려가서 무슨 얘기인가 들어보려는 군중심리가 작동했다. 10일 서울의료원에 남녀 한 쌍이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로비에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기에 기자 한 명이 다가가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 했다. 그러자 기자들이 한두 명씩 모여들더니, 나중엔 우루루 모여들어 기자회견을 방불케했다. 하지만 이들의 정체는 유가족을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는 한 납골당 영업직원들이었다. 이들은 시신을 화장한다는 사실이 결정되자 금방 자리를 떴다. 5. ‘밥 먹고 합시다’의 위험 점심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진전이 없어, 다른 회사의 지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 달라고 해놓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샌드위치 가게에서 샌드위치 두 개를 기다리는데 ‘빨리 오라’는 연락이 왔다. 황급히 돌아왔는데, 잠시 자리를 비운 10분도 안 되는 사이에 ‘태풍’이 두 번 몰아치고 지나갔다고 했다. 탤런트 이재황과 이혜미가 빈소가 차려진 것으로 잘못 알고 이 병원으로 왔었던 것이다. 기자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취재했고,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지만 인터뷰도 했다고 했다. 그 뒤로는 잠시도 자리를 비울 엄두를 못 내고 계속 지키고 있었다. 대신 저녁은 통닭을 주문해 먹었다. 그런데 다른 기자들은 과연 밥은 먹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닭다리를 들고 있는 기자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그들의 시선이 못내 부담스러웠다. 김외현 수습기자 oscar@hani.co.kr
“캐스팅된 드라마가 한 편 있었답니다.” “남자친구가 있는지 몰랐답니다.” “소용환 본부장이요. 소, 용, 환!” 아직 진행중인 인터뷰를 벌써부터 데스크에 전달하고 있는 이 사람들의 정체는 인터넷 연예매체 기자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소 본부장이 자리를 떠나자마자 포털을 검색해보니 벌써부터 소 본부장의 인터뷰 기사가 현장사진과 함께 올라와 있었다. 2. 사실 공개에 주저하는 사람들 누구도 이같은 기자들의 취재 경쟁에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최초 발견자인 남자친구 이강희씨가 경찰 조사를 마치고 나올 때, 경찰은 점퍼의 모자를 푹 눌러쓴 이씨를 데리고 나오며 “이 사람은 다른 사건 관련자에요”라고 소리쳤다. 기자들은 아랑곳 않고 그를 막아서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질문을 던졌다. 길지 않은 경찰서 로비를 통과해 입구의 차량에 탑승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약 3분. 평소 같으면 30초도 걸리지 않았을 거리였지만, 취재진과의 실랑이에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었다. 처음 시신이 안치되었던 서울의료원 장례식장 현황판에는 분명 27살 여성의 주검이 도착했다고 기록돼 있었다. 다만 이름은 ‘미상’이라고만 기재되어 있었고, 나이와 디오에이(DOA, Dead on Arrival, 즉 사망 상태로 병원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표시)만이 정다빈씨 시신의 안치를 짐작하게 했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전혀 확인을 해주려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몰라요. 저 사람 누군지 아직 이름도 안 나왔어요. 이름을 몰라서 안 적은 겁니다. 나가주세요.” 하지만 경찰이 안치장소는 서울의료원임을 이미 공언한 터라 기자들은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으로 시신을 옮기기 위해 유족 가운데 정씨의 작은 아버지 등 친지들이 병원을 찾았을 때, 친지들은 스스로를 “다른 사람”이라고 얘기하며 황급히 카메라들을 피했다. 결연한 표정 속에서 유족임을 짐작하긴 했지만, 떠나고 난 뒤에야 소속사 관계자들로부터 그 사실을 확인했다. 시신을 옮길 때도 마찬가지였다. 병원에서는 아직 옮기지 않고 있다고 하는 가운데, 매니저는 유족들이 다녀갔을 때 요청해서 이미 옮겼다고 했고, 겨울바람 쌩쌩 부는 바깥에서 차가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은 아직 나간 차가 없다고 했고, 유족들은 또 이미 옮겼다고 했다. 결국 처음에 옮기겠다고 했던 시간을 두 시간도 훌쩍 넘겨서야 시신이 이미 옮겨졌다는 것을 병원 쪽에서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었다. 그 때 다시 보니 현황판의 이름이 지워져 있었다. 3. 설, 설, 설 아무도 이렇게 사실 확인을 해주지 않으려 하니, 온갖 추측과 오보가 난무했다. 이날 오전, 경찰은 이미 짧은 브리핑을 통해 당시 조사받고 있는 사람이 최초 발견자이자 신고자이며, 고인의 남자친구라고 확인해준 상태였다. 경찰이 더 이상 기자들의 질문에 응하지 않고 있을 무렵, 한 무리의 인터넷 연예매체 기자들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그나마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소속사 매니저와 이야기를 시작했고, 한 기자가 “안에 조사받는 게 남자친구 맞습니까?”라고 물었다. 당황했는지 매니저는 “남자친구 아닙니다. 그냥 아는 동생입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뒤 인터넷에 올라온 한 연예매체의 기사는 ‘같이 있었던 남자, 남자친구 아닐 가능성’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아산병원에 빈소가 마련되고, 유족들은 아산병원에 가 있는 상황에서 소속사의 매니저가 발인 시간 및 장소에 대해 알려주었다. 발인 장소는 성남화장터가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한 인터넷 연예매체 기자가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더니, 매니저가 나간 뒤 기자들에게 추가 설명을 해주었다. “지금 기사가 벽제화장터로 올라가 있어요. 정정을 해야 되는데, 일단 다들 그렇게 아세요.” 시신이 옮겨지는 과정을 기다리는 동안 기자들 가운데 쏟아지던 이야기도 가관이었다. 저마다의 소식통을 인용하며, 시신이 이미 나갔다, 아직 안 나갔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나마 가장 신뢰할 만한 소식통은 한 명이 병원내를 주시하고, 다른 기자가 시신이 도착할 아산병원 앞에서 차량이 들어오길 기다리는 매체였다. 반면, 최고의 억측은 ‘과학수사대가 도착해서 현재 이 안에서 부검 중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일부 기자들은 또 각자의 데스크에 전화로 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 같았으나 기사화되지는 않았다. 이런 설들은 어떻게 생산되고 있었을까. 이날 아침 기자들이 경찰서에 모여 있었던 때로 돌아가 보자.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은 남자친구 이씨가 나가고 나서, 문 걸어 잠근 폭력팀 사무실. “그 남자친구 학교가 어딥니까? 명지대 아니에요, 명지대?”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수첩을 꺼내들고 펜으로 명지대를 받아적었다. 그러나 철창 너머의 경찰관들이 “그거 알아서 뭐하려고요”라며 아무 반응이 없자 소리 높여 질문을 했던 기자가 읊조렸다. “아닌가보네, 찍어 봤는데.” 4. 기사의 생산 한 인터넷 매체 기자는 “하루에 기사를 열 개, 스무 개 올리는 데 안 힘들겠어요? 틀리고 고치고 그러면 자존심 상처도 입고 속상하죠. 이 바닥이 그래요”라고 말했다. 잡지사 기자 출신으로 연예매체로 옮겨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그는 취재에 열심이었다. 옆에서 전화 통화하는 내용은 굳이 엿듣지 않아도 그냥 들렸다. 서울의료원에서 그는 데스크와 연신 통화를 하며 하나둘 소식을 전달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지금 여기서 얘기 나온 게, 검찰 쪽에서 (부검을 위해) 재조사 안 하는 걸로 결정됐대요. 기사에 넣어주세요.” 그러나 10분쯤 뒤에는 “그거(부검을 위한 재조사 결정) 기사에서 빼주세요. 확인 안 된대요.” 이 과정에서 그가 정보를 들은 것은 경쟁사 인터넷매체 기자를 통해서였다. 사실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기사에 넣었다가, 경찰 쪽에서 확인을 해주지 않자 부랴부랴 삭제를 요청한 듯했다. 언뜻 들리는 뜬소문이 사실로 둔갑하는 것은 순간이었다. “(시신이 서울의료원에서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겨갔다는) 기사는 완성됐죠? 앰뷸런스 떠날 때 제가 전화할게요. 그 때 바로 (인터넷에) 올리면 될 것 같아요.” 속보 전쟁의 대미였다. 정씨의 시신을 싣는 앰뷸런스가 바퀴를 떼는 순간, 인터넷상의 각종 포털에는 속보가 뜨게 되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포털사이트에 뜬 기사는 또하나의 사실확인 절차였다. 매니저는 기자와 따로 가진 대화 도중에 ‘유족들이 공개되기를 원치 않았다’는 이유로 시신을 이미 빈소가 마련된 병원으로 옮겼다고 했다. 이 얘기를 모여 있는 다른 기자들에게 전했더니, 그들은 역으로 “그 내용 기사 났어요(인터넷에 떴어요)?”라고 물어왔다. 그리고 또 다른 몇몇은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 기사를 검색했다. 이렇게 기사 생산이 소문에 의해 이루어지다보니, 누군가 한 사람이 무언가 취재를 시작하면 모두가 우루루 달려가서 무슨 얘기인가 들어보려는 군중심리가 작동했다. 10일 서울의료원에 남녀 한 쌍이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로비에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기에 기자 한 명이 다가가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 했다. 그러자 기자들이 한두 명씩 모여들더니, 나중엔 우루루 모여들어 기자회견을 방불케했다. 하지만 이들의 정체는 유가족을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는 한 납골당 영업직원들이었다. 이들은 시신을 화장한다는 사실이 결정되자 금방 자리를 떴다. 5. ‘밥 먹고 합시다’의 위험 점심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진전이 없어, 다른 회사의 지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 달라고 해놓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샌드위치 가게에서 샌드위치 두 개를 기다리는데 ‘빨리 오라’는 연락이 왔다. 황급히 돌아왔는데, 잠시 자리를 비운 10분도 안 되는 사이에 ‘태풍’이 두 번 몰아치고 지나갔다고 했다. 탤런트 이재황과 이혜미가 빈소가 차려진 것으로 잘못 알고 이 병원으로 왔었던 것이다. 기자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취재했고,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지만 인터뷰도 했다고 했다. 그 뒤로는 잠시도 자리를 비울 엄두를 못 내고 계속 지키고 있었다. 대신 저녁은 통닭을 주문해 먹었다. 그런데 다른 기자들은 과연 밥은 먹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닭다리를 들고 있는 기자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그들의 시선이 못내 부담스러웠다. 김외현 수습기자 oscar@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