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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주민번호·이름만 알면 ‘그’로 행세할 수 있어

등록 2007-02-09 21:35

개인정보 노출 흐름도
개인정보 노출 흐름도
‘인터넷에 떠도는 개인정보 악용’ 시험해보니
휴대전화 개통·메일 확인·결제까지…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가 인터넷에 마구 흘러다니고 있다.(<한겨레> 1월29일치 1·3면) 누군가 이를 악용했을 때 그 피해가 어느 정도에 이를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겨레>는 지난 6∼7일 이틀 동안 사전 동의를 얻은 ㅇ씨의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이용해 직접 시험해 봤다.

주민번호로 휴대전화 번호·전자우편 등까지 알아내=각종 검색 사이트에서 ㅇ씨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자 주소, 휴대전화 번호, 전자우편, 학력·경력 등의 개인정보를 손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ㅇ씨가 평소 게시판 등에 남긴 글에서 정보가 수집되는 것이다.

가입한 사이트 확인 서비스 되레 정보유출 수단으로

특히 일부 사이트는 특정인이 가입한 모든 사이트의 아이디를 확인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ㅇ씨가 가입한 43개 사이트의 아이디를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자신의 개인정보가 다른 사이트에서 도용되고 있는지 확인해 보라는 뜻에서 제공되는 이 서비스가 거꾸로 정보를 유출하는 수단으로 이용된 셈이다.


신분증 없이도 휴대전화 개통=ㅇ씨 모르게 ㅇ씨 이름의 새 휴대전화를 개통하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개통 때 신분증 사본을 요구하는 통신사 대리점 등과 달리 소규모 인터넷 쇼핑몰은 “나중에 신분 확인을 보완해 달라”고 요청할 뿐, 입금을 하자 그날 바로 휴대전화를 개통·배송했다.

이에 대해 해당 통신사 고객보호팀 관계자는 “인터넷 주문으로 휴대전화를 개통할 때는 본인 확인 절차에 소홀할 수 있다”며 “사고가 발생하면 이를 개통해 준 대리점이 책임을 지게 된다”고 말했다.

명의 도용을 막으려고 정보통신부가 제공하는 ‘모바일 세이퍼’ 서비스도 무용지물이었다. 모바일 세이퍼는 새로운 휴대전화를 개통할 때 이를 명의 당사자에게 문자메시지로 알려주는 서비스인데, 취재진이 개통한 휴대전화는 새로 번호를 부여받은 게 아니라 이미 사용하던 번호에 사용자 이름만 바꾸는 방식이어서 이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았다.

주민번호와 휴대전화가 만나면 …=ㅇ씨 몰래 개통한 휴대전화를 이용하면, ㅇ씨가 가입한 사이트의 비밀번호를 재설정할 수 있었다. 비밀번호 재설정을 신청하면 사이트 관리자가 가입자 명의의 휴대전화로 인증번호를 전송하고 가입자가 이 번호를 다시 사이트에 입력해야 하는데, ㅇ씨 명의의 휴대전화로 이 인증번호를 받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재설정한 비밀번호로 ‘로그인’이 가능해지자 ㅇ씨의 전자우편 내용은 물론 ㅇ씨가 지금껏 본 영화, 사들인 물건, 그의 인간관계 등과 같은 은밀한 개인정보도 통째로 엿볼 수 있었다. 또 인터넷상에서 ㅇ씨로 활동하는 데 아무런 걸림돌도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휴대전화 소액 결제 등을 통해 금전적 피해를 끼칠 수도 있게 됐다.

여기에 이르자 ㅇ씨는 “이런 정도라니 놀랐다”며 취재 중단을 요청했다.

작년 정보침해 1만8천여건…경찰 “일손 달린다” 손놔

개인정보 도용 범죄에 속수무책=지난해 한국정보보호진흥원에 접수된 △주민등록번호 등 타인정보 도용 △개인정보 무단수집 △개인정보 무단이용·제공 등 민원은 모두 2만3000여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1만8000여건(46.4%)이 주민등록번호 등 타인정보를 훔쳐 사용한 경우였다. 이렇게 개인정보 악용이 늘자 지난해 9월 주민등록법 개정을 통해 단순한 명의 도용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지만, 경찰은 피해액이 적고 일손이 달린다는 이유로 이런 범죄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박영우 한국정보보호진흥원 팀장은 “처벌조항만으로는 타인의 개인정보 악용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인터넷에서 주민등록번호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고, 나아가 인터넷에서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한 기술적 수단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 최원형 수습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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