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사면 대상자
비리 정치·경제인 434명 면죄부…노동운동가등 한명도 없어
‘사면권 남용·형평성 어긋’ 지적
‘사면권 남용·형평성 어긋’ 지적
정부는 9일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과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등 비리 혐의로 처벌받은 정치인과 경제인 등 434명을 12일자로 특별 사면과 감형, 복권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권단체 등에서 사면을 요구한 양심수는 단 한명도 포함되지 않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면 대상에는 박용성 전 두산 회장을 비롯해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 장세주 전 동국제강 회장 등 160명의 경제인이 포함됐다. 김성호 법무부 장관은 “관행적·구조적인 부패구조에서 잘못을 저질렀으나 이미 상당한 처벌을 받은 기업인들한테 재기의 기회를 줘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해 사면을 실시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17조원에 이르는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은 사면 대상에서 빠졌다. 박용성 전 회장과 함께 두산그룹 분식회계와 비자금 조성 사건으로 기소된 박용오 전 회장은 대법원 상고로 형이 확정되지 않아 제외됐다.
정부는 또 김대중 전 대통령 측근인 박지원 전 장관과 권노갑 전 고문, 강신성일 전 한나라당 의원 등에 대해서는 징역형을 면제하는 특별사면을 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집행유예가 확정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 설훈 전 민주당 의원은 형선고 실효와 함께 특별복권돼 정치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과 가까운 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과 박연차 태광실업 사장,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은 제외됐다.
이번 사면으로 △경제인 160명 △공직자 37명 △정치인 7명 △16대 대선 선거사범 223명 △경인여대 학내분규 관련 7명 등 모두 434명이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박성희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간사는 “노동운동을 하다 처벌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양심수 95명을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시켜달라고 청와대와 법무부에 명단을 건넸지만 단 한명도 포함되지 않았다”며 “사회적 통합을 목적으로 하는 사면이 정치적으로 남용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제앰네스티가 최근 양심수로 선정한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도 민주노동당 등의 요청에도 제외됐다.
한나라당 유기준 대변인은 “애초 예상보다 훨씬 큰 규모의 사면·복권은 사법권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 국민정서에도 반하는 것”이라며 “정치공작에 대한 국민의 염증을 감안하면 이런 식의 기획사면은 더이상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이상열 대변인도 “외환위기를 가져온 주범들에 대한 면죄부이며, 정략적 사면이어서 유감스럽다”고 밝혔고,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은 “임기를 1년 남긴 정권이 사면권을 남발한 것으로, 돈있고 권력있는 사람들에게만 법적 혜택이 집중된 ‘유전무죄 무전유죄식’ 사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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