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분’ 시야 가리지마라?
의원·장관들 승용차 조수석 10대중2대 머리 지지대 없어
정치인·기업체 임원 등 이른바 ‘높은 분’들은 ‘아랫사람’ 자리인 승용차 조수석의 머리 지지대를 빼놓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뒷좌석의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5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한명숙 국무총리 국정연설 때 모여든 국회의원과 장관들의 승용차를 <한겨레>가 직접 조사해 보니, 차량 87대 가운데 19대(21.8%)가 조수석의 머리 지지대를 부착하지 않거나 접어 놓았다. 이 중 3대의 승용차에는 머리 지지대 없이 비서가 조수석에 타고 있는 모습이 목격됐다.
한 의원 비서관은 “시야 확보를 위해 머리 지지대를 빼고 다니는 의원들을 많이 봤다”며 “사람이 타면 목받침대를 다시 끼워 넣는다고 하지만, 장거리라면 몰라도 짧은 거리를 움직이거나 의원들이 급히 움직일 경우엔 머리 지지대를 끼울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한 자동차 회사 홍보실에서 근무하는 김아무개(25)씨도 “키가 작은 임원들 중에 앞이 안 보여 답답하다며 머리 지지대를 빼달라고 하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머리 지지대는 목을 쉬게 하는 기능만 하는 게 아니라, 교통사고 때 머리가 뒤로 넘어가 목뼈가 크게 다치는 것을 막는 필수 안전장치다. 이를 빼놓고 있으면 작은 사고라도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홍승준 박사는 “목 부위는 근육이나 인대가 약해 머리 지지대가 없으면 경미한 추돌사고에도 심각한 장애를 입을 위험이 크다”며 “미국은 8㎝까지 머리 지지대를 높이도록 자동차 안전기준까지 바꿨다”고 말했다.
실제 보험개발원이 2004년 발표한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교통사고 가운데 목 부위 부상이 가장 많은 비율(54%)을 차지하고 있다. 이재명 기자, 노현웅 정옥재 수습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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