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가 따라간 사체발굴 현장] 피의자가 암매장 현장 지목하는 모습. 김외현 수습기자.
25일 오전 10시30분, 차창 밖 풍경으로 펼쳐지는 덕소, 팔당, 양수리, 양평, 용문산을 지나는 6번 국도가 낯설지 않다. 남한강을 따라 이어지는 이 길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우정의 추억이 녹아있을 법한 정겨운 길이다. 하지만 한 달 전 일어난 살인사건의 사체 유기 현장으로 향하는 수습기자의 여정은 예전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형사들의 승합차에 한 자리를 얻어 타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주칠 주검을 생각하니 온 몸에 힘이 들어갔다.
드러난 비극의 전말
형사들은 지난달 5일 이후 행방불명된 배아무개(43·남)씨의 주검을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배씨는 최근 교도소에서 나온 양아무개(33·남)씨를 자신의 불법 사행성 피시방의 ‘바지사장’으로 고용했고, 둘은 서울 성동구 행당동의 아파트에서 같이 살았다. 양씨가 경영을 맡은 지 엿새 만에 피시방은 경찰의 단속에 걸렸고, 배씨가 나몰라라 하는 바람에 벌금 500만원을 양씨가 고스란히 냈다고 경찰은 밝혔다. 배씨는 양씨에게 억지로 성행위도 요구했다는 게 경찰 수사결과다. 지난달 22일 새벽 2시40분께 그동안 쌓인 양씨의 모멸감이 폭발했다. 양씨는 경찰에서 자신에게 신경질을 부리는 배씨의 머리를 둔기로 내려쳐 숨지게 하고, 주검을 경기 양평군에 몰래 묻었다고 말했다. 배씨의 실종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24일 저녁 배씨의 통장에서 1800만원을 인출해 사용한 양씨를 붙잡아 범행을 모두 자백받았다고 밝혔다.
서울 성동경찰서를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채 안된 오전 11시, 피의자를 태운 선두차량이 갓길에 정차했다. 비상등을 켜고 사이렌을 울리며 도착한 차량은 모두 10대. 차에서 쏟아져나온 50여명의 사람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았다. 이번 사건 담당인 성동경찰서 강력1팀장 김성주 경감의 현장지휘에 따라 우선 버스에서 내린 의경들이 노란색 테이프로 폴리스라인을 만들었다. 이어 과학수사대 차량에서 형사들은 일회용 감식작업복 네 벌과 감식장갑, 마스크, 삽, 괭이, 호미 등을 꺼냈다. 감식작업복을 입은 형사들 뒤를 수사과장과 팀장들이 따랐고, 마지막으로 포승줄에 묶인 피의자가 등장했다. 승용차에서 내린 유족들은 울부짖으며 현장과 피의자를 가까이 볼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돌아다녔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앰뷸런스는 들것을 내려놓고 시신을 기다렸다.
20일 만에 나타난 주검
오전 11시15분, 형사 네 명이 피의자가 지목한 암매장 위치에 첫 삽질을 시작했다. “너무 세게 파면 안 돼!”, “주위를 넓게 파라고!” 몇 걸음 뒤에 물러나 마스크를 쓰고 있던 팀장들의 조언이 잇따랐다. 삽질을 한 지 10여분이 지나 50㎝ 가량 파고 들어갔을 때였다. 흙 속에서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하얀 덩어리가 부디 주검이 아니었으면 했다. 둔기로 머리를 때려 사람을 죽이고, 주검을 길가에 함부로 묻었다는 끔찍한 사건이 그저 거짓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주검이었다. 한 겨울에 땅 속에서 발견된 주검은 팬티만 걸친 차림이었다. “어흐흐, 어허으으..” 그때까지만 해도 침착하던 배씨의 형이 발굴과정을 보다말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두 손에는 수갑을 채이고, 온몸에는 포승에 묶인 채 고개를 들지 못하는 양씨를 향해 형은 바닥의 흙을 한줌 집어던지며 전라도 사투리가 섞인 욕을 해댔다. “니가 그러고도 사람이여! 옷도 안 입히고 이렇게 묻어버렸어라! XX야!” 배씨의 고모는 어느새 의경들이 지키고 있던 노란색 폴리스라인을 넘어와 피의자를 발로 차려 했다. 경찰들이 말리자 고모는 다시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아버렸다. 감식작업복의 형사들이 조심스러운 삽질을 계속했다. 땅을 파는 것이 아니라 흙을 긁어냈다. 삽으로 긁을 수 없는 부분은 호미를 썼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손으로 흙을 털어냈다. 결국 주검은 땅에 묻힌 지 한 달 만에 빛을 접하게 됐다. “이렇게 찾았으니 다행이지” 11시37분 주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겨울날씨 탓에 주검은 훼손되지 않았다. 야구방망이에 맞았다는 머리엔 헝겊이 감겨 있었다. 경찰은 양씨를 주검 앞으로 데려왔다. “당신이 묻은 시체가 맞소?” “...” 자신이 묻은 상태로 발견된 주검을 바라보며 얼어있는 피의자가 대답하지 않자, 김 경감은 자신의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맞냐니까! 똑바로 대답 안 해!” 그러자 얼어붙은 양씨가 “네!”라고 소리쳤다. 경찰은 증거 보존을 위해 숨진 배씨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했다. 모든 발굴과정은 비디오카메라로 기록되기도 했다. 촬영이 끝나자 주검에는 하얀 천이 덮였다. 길게 늘인 두 가닥 천으로 시신의 아래를 받쳐 구덩이에서 들어냈다. 들것에 실어 비닐로 묶은 뒤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앰뷸런스에 실었다. 주검은 유족이 원하는 대로 ㅅ병원으로 옮겨져 의사의 검안을 받은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부검을 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11시50분. 주검이 있던 구덩이의 크기를 확인한 경찰은 다시 구덩이를 메우기 시작했다. 감식작업복을 벗어던진 형사들의 움직임은 발굴 때보다 훨씬 빨랐다. 삽으로 겨울 땅을 파헤친 지 40여분 만에 다시 흙이 덮이면서 발굴 과정은 마무리됐다. “그래도 이렇게 찾았으니 다행이지.” 김 경감이 말했다. “밤새 조사해서 우리 팀원들 다들 피곤하죠. 그래도 오늘 병원에 검안도 가봐야 하고, 영장 신청도 해야 됩니다. 바쁘네요.” 김 경감은 양씨와 함께 황급히 경찰차에 올라탔다. 김외현 수습기자 oscar@hani.co.kr
오전 11시15분, 형사 네 명이 피의자가 지목한 암매장 위치에 첫 삽질을 시작했다. “너무 세게 파면 안 돼!”, “주위를 넓게 파라고!” 몇 걸음 뒤에 물러나 마스크를 쓰고 있던 팀장들의 조언이 잇따랐다. 삽질을 한 지 10여분이 지나 50㎝ 가량 파고 들어갔을 때였다. 흙 속에서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하얀 덩어리가 부디 주검이 아니었으면 했다. 둔기로 머리를 때려 사람을 죽이고, 주검을 길가에 함부로 묻었다는 끔찍한 사건이 그저 거짓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주검이었다. 한 겨울에 땅 속에서 발견된 주검은 팬티만 걸친 차림이었다. “어흐흐, 어허으으..” 그때까지만 해도 침착하던 배씨의 형이 발굴과정을 보다말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두 손에는 수갑을 채이고, 온몸에는 포승에 묶인 채 고개를 들지 못하는 양씨를 향해 형은 바닥의 흙을 한줌 집어던지며 전라도 사투리가 섞인 욕을 해댔다. “니가 그러고도 사람이여! 옷도 안 입히고 이렇게 묻어버렸어라! XX야!” 배씨의 고모는 어느새 의경들이 지키고 있던 노란색 폴리스라인을 넘어와 피의자를 발로 차려 했다. 경찰들이 말리자 고모는 다시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아버렸다. 감식작업복의 형사들이 조심스러운 삽질을 계속했다. 땅을 파는 것이 아니라 흙을 긁어냈다. 삽으로 긁을 수 없는 부분은 호미를 썼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손으로 흙을 털어냈다. 결국 주검은 땅에 묻힌 지 한 달 만에 빛을 접하게 됐다. “이렇게 찾았으니 다행이지” 11시37분 주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겨울날씨 탓에 주검은 훼손되지 않았다. 야구방망이에 맞았다는 머리엔 헝겊이 감겨 있었다. 경찰은 양씨를 주검 앞으로 데려왔다. “당신이 묻은 시체가 맞소?” “...” 자신이 묻은 상태로 발견된 주검을 바라보며 얼어있는 피의자가 대답하지 않자, 김 경감은 자신의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맞냐니까! 똑바로 대답 안 해!” 그러자 얼어붙은 양씨가 “네!”라고 소리쳤다. 경찰은 증거 보존을 위해 숨진 배씨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했다. 모든 발굴과정은 비디오카메라로 기록되기도 했다. 촬영이 끝나자 주검에는 하얀 천이 덮였다. 길게 늘인 두 가닥 천으로 시신의 아래를 받쳐 구덩이에서 들어냈다. 들것에 실어 비닐로 묶은 뒤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앰뷸런스에 실었다. 주검은 유족이 원하는 대로 ㅅ병원으로 옮겨져 의사의 검안을 받은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부검을 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11시50분. 주검이 있던 구덩이의 크기를 확인한 경찰은 다시 구덩이를 메우기 시작했다. 감식작업복을 벗어던진 형사들의 움직임은 발굴 때보다 훨씬 빨랐다. 삽으로 겨울 땅을 파헤친 지 40여분 만에 다시 흙이 덮이면서 발굴 과정은 마무리됐다. “그래도 이렇게 찾았으니 다행이지.” 김 경감이 말했다. “밤새 조사해서 우리 팀원들 다들 피곤하죠. 그래도 오늘 병원에 검안도 가봐야 하고, 영장 신청도 해야 됩니다. 바쁘네요.” 김 경감은 양씨와 함께 황급히 경찰차에 올라탔다. 김외현 수습기자 oscar@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