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범죄자 현황
‘통역’ 지원 허술…‘자기변호’ 어려움
지난달 25일 오후 1시30분께 서울 용산경찰서 형사계. 이집트 국적의 새리 자카리아 아브드 엘 코데르 엘 맨시(27)가 절도 혐의로 붙잡혀 왔다. 우리말을 전혀 할 줄 모르는 그를 돕기 위해 하니 압둘 하킴(33) 등 친구 셋이 경찰서로 달려왔다. 하지만 친구들도 우리말에 서툴렀다. 새리는 계속 “나는 훔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친구들이 대강 읽어주는 피의자 신문조서에 날인을 했다. 새리는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할 수 없었다.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이 늘면서 외국인 관련 범죄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으나(그래프 참조), 수사과정에서 이들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지원은 허술하다.
형사소송법은 “외국인 등의 진술에는 통역인으로 하여금 통역하게 하여야 한다”며 전문통역 서비스에 대한 의무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통역인들이 영어·일어·중국어 등 주요 외국어에 집중돼 있어 나머지 언어를 쓰는 경우는 제때 통역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 경찰서의 폭력팀 형사는 “제3세계 출신 외국인의 경우 어쩔 수 없이 피의자의 친구나 아는 사람 등을 불러야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이 전국적으로 확보한 통역인은 경찰관 887명, 전·의경 291명, 민간인 통역사 2035명 등 모두 3213명이지만 이 가운데 73.5%가 영어·일어·중국어 통역인이고, 나머지 849명이 프랑스어·독일어를 비롯한 27개 언어를 통역한다. 히브리어를 구사하는 이는 민간인 쪽에 단 1명이 있을 뿐이다.
통역비가 시간당 2만5천~3만원 정도에 그쳐, 전문 통역사들이 선뜻 나서지 않는 경향도 보인다.
또 관행을 이유로 관련 규정을 무시하는 일도 잦다. 경찰청 범죄수사규칙은 전문 통역인이 아닌, 피의자의 친구나 친척 등에게는 통역을 시키지 못하도록 하고 있으나, 일선에서는 “피의자들이 한국 경찰이 부른 통역인에게는 진술을 거부하기도 한다”는 등의 이유로 손쉽게 친구나 친척을 부르기도 한다. 이런 경우 전문적인 통역이 이뤄지지 않아 되레 피의자가 손해를 보기도 한다.
경찰서 형사계 등에서 조사를 받으며 어려움을 겪는 이는 외국인뿐만이 아니다.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어려운 언어장애인들도 원활한 조사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 시내 경찰서에서 수화통역을 하고 있는 강아무개(39)씨는 “통역사가 늦게 도착하면 경찰이 조사가 가능한 쪽의 이야기만 먼저 듣는 바람에 장애인 쪽에 이미 선입견을 갖고 조사하는 경우가 많다”며 “경찰이 수화통역사에게 어떻게 연락을 취할지 모를 때도 많다”고 말했다.
경찰은 장애인협회 등과 연계된 수화통역 지원센터를 전국에 96곳 확보했으나, 실제 활용할 수 있는 수화통역사가 몇 명인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의 윤성혜 인권보호계장은 “지난해 9월 일선 경찰서 실태를 파악해보니, 수화통역인들에게 수사 참고인 수준의 교통비만 지급하는 경우가 있어 시간당 2만5천∼3만원씩 지급하라고 시정을 권고했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지난해 1억원에 불과했던 외국어·수화 통역 예산을 올해 4억원으로 대폭 늘렸다고 밝혔다. 경찰청 외사국의 한 관계자는 “통역은 어차피 경찰, 검찰, 법원, 교도행정까지 연관된 문제인 만큼, 이들 기관이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동희 경찰대 교수(법학)는 “강력범죄 가운데 외국인 피의자 비율이 30%에 이를 정도로 일찌감치 이런 문제를 겪은 일본에서는 나라별로 연수도 보내는 등 통역요원을 양성해 자체 인력이 확보돼 있다”며 “박사과정을 마치는 등 검증을 거친 유학생들을 외부 전문가로 활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종휘 김기태 기자 symbio@hani.co.kr
경찰청은 지난해 1억원에 불과했던 외국어·수화 통역 예산을 올해 4억원으로 대폭 늘렸다고 밝혔다. 경찰청 외사국의 한 관계자는 “통역은 어차피 경찰, 검찰, 법원, 교도행정까지 연관된 문제인 만큼, 이들 기관이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동희 경찰대 교수(법학)는 “강력범죄 가운데 외국인 피의자 비율이 30%에 이를 정도로 일찌감치 이런 문제를 겪은 일본에서는 나라별로 연수도 보내는 등 통역요원을 양성해 자체 인력이 확보돼 있다”며 “박사과정을 마치는 등 검증을 거친 유학생들을 외부 전문가로 활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종휘 김기태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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