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몰 값 내맘대로 주문’ 프로그램 개발 수백만원 챙겨
웹브라우저를 개발하는 전문 프로그래머 이아무개(35)씨는 지난해 7월께 인터넷 쇼핑몰 사이트를 분석하다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건을 살 때 쇼핑몰과 결제대행사로 보내는 가격 정보를 마음대로 조작해도 쇼핑몰 쪽에서는 이를 모른 채 물건을 보내오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씨가 1만5천원짜리 기저귀를 사면서 자신이 개발한 해킹 프로그램을 통해 1500원이란 값을 적어넣었지만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쇼핑몰은 고객이 보낸 주문정보와 결제대행사가 보내온 승인정보만 일치하면 실제 물건 값이 얼마인지 확인해보지 않고 배송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이씨는 각종 화장품, 약품, 향수 등 비교적 싼 물건을 실제 가격의 10%만 주고 사기 시작했다. 나중엔 진공청소기, 차량용 내비게이터, 개인정보단말기(PDA), 하드디스크·램과 같은 컴퓨터 부품 등 몇십만원대의 물건을 몇천원에 사들였다. 이 가운데 일부는 인터넷 경매사이트에서 되팔아 300여만원의 현금도 챙겼다.
나름대로 조심성도 발휘했다. 대개 쇼핑몰 한 곳에서는 물건 한 개만 샀다. 하지만 꼬리가 길었다. 실제 물건 값과 주문 정보에 차이가 너무 큰 것을 발견한 한 쇼핑몰에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이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14일 이런 방법으로 1년6개월 동안 네이트, 예스24, 엘지생활건강 등 45개 쇼핑몰 업체에서 600여만원어치의 물건을 값싸게 사들인 혐의(컴퓨터 사용 사기 등)로 이씨를 구속했다. 사이버센터의 정석화 수사3팀장은 “물품 가격과 결제 금액을 비교·검증하는 기능을 강화하고 가격 정보를 암호화하는 등 쇼핑몰의 주문·결제 프로그램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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