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림 연루 이수길 박사 손배소 준비
“언론 ‘받아쓰기’ 말고 제대로 취재를” 일갈
“언론 ‘받아쓰기’ 말고 제대로 취재를” 일갈
“북한은 물론 북한대사관 한 번 가본 적 없는데 간첩이라뇨? 이제 국가가 제가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 합니다.”
1960년대 재독 유학생 및 지식인이 북한 공작원 노릇을 했다는 이른바 ‘동백림사건’에 엮여 옥고를 치른 바 있는 이수길(78) 박사의 오른쪽 아래 눈꺼풀은 주기적으로 떨고 있었다. 59년 독일에 유학 가 한국 간호원들의 독일 취업도 주도한 이 박사는 67년 어느날 중앙정보부 요원들의 협박에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남산 대공분실에서 야전용 발전기 양쪽 단자가 발가락에 끼워진 채 전기고문을 당했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은 왼쪽 다리가 반응을 하지 않자 수사관들은 발전기를 더 빨리 돌렸다. 하지만 열흘에 걸친 고문도 그의 입에서 “내가 간첩이오”라는 거짓 증언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이 박사는 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 사건 뒤 3년 동안은 수면제 없이 잠을 자지 못했고, 십수년 뒤부터는 고문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마저 쓰지 못한다고 휠체어에 기댄 채 말했다. 그는 지난 1월 국정원 과거사진상규명위가 이 사건의 실체를 상당 부분 밝혔다면서도 “당시 간호사로 독일에 갔다 사건에 연루돼 고생한 뒤 한국에 오지도 않고 한국 사람도 만나지 않고 지내고 있는 피추자씨 등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 5명도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변호인단을 구성하고 있다며 배상금의 일부는 기자협회와 한독친선협회 등에 기부할 계획임을 밝혔다. 그는 또 “간첩단 사건 같은 경우는 언론이 정부 발표를 그대로 베끼지 말고 자체적으로 취재한 뒤 생각하는 바 그대로 보도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언론보도의 신중을 당부했다. 이 박사는 머지않아 한국에 영구귀국할 방침이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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