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27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기영 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 이정훈 전 중앙위원의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시민단체, ‘반미에 이용’ 공안당국 발표에 반발
‘북한 공작원 접촉 의혹 사건’과 관련해 ‘시민단체를 반미활동에 이용하려 했다’는 등의 수사내용이 국정원 등 공안당국에서 흘러나오자, 시민단체들이 “순수한 의도의 시민운동을 친북 활동과 연계시키려 한다는 의심이 든다”며 ‘음모론’을 제기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 28일 이진강씨를 구속하면서 이씨가 2002년 1월 “시민운동 속에서 김정일 장군의 향도에 따라 광범한 대중을 통일운동 주위에 망라하는 사업을 임무로 하는 조직을 만들겠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여러 시민단체들을 하나의 통일운동 단체에 합류시켜 반미·반전 운동을 벌여 나가도록 조직하겠다고 맹세했고, 이런 내용의 결의문을 출력해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다녔다는 것이다. 이씨와 장씨는 이에 따라 국내 한 환경운동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ㄱ씨를 핵심 조직원으로 포섭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국정원은 보고 있다.
장씨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일심회 사업정형보고’라는 문건에도 ㄱ씨를 이씨와 함께 일심회에서 핵심적인 구실을 하는 조직원으로 묘사했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공안당국 관계자는 “이씨 집 등에서 압수한 노트북 2대와 시디 21장, 유에스비 메모리 등 관련 증거를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씨 등의 계획이 실행에 옮겨졌는지는 확실치 않다. 수사 초기임을 감안하더라도 지금까지 구속된 5명을 제외하고는 연루 혐의가 드러난 시민단체 인사들은 아직 없는 상태다. 이 때문에 장씨가 북한 쪽에 뭔가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자기 마음대로 사실과 다른 내용을 작성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시민단체 관련 혐의 내용이 일방적으로 보도되자, 시민단체들은 이런 혐의 내용이 사실인 것처럼 호도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권정호 미군문제대책위원장은 “보수언론이 국정원에서 흘리는 걸 침소봉대해, 시민단체들의 ‘옳았던 활동’에까지 올가미를 씌우고 있다”며 “명백한 인권 유린이고 독재정부 시절의 공안정국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시민단체들은 용산 미군기지 독극물 방류 사건 등 미군기지와 관련된 환경운동마저 북한의 지령에 따른 것으로 몰고 가는 보수언론의 행태를 강하게 비난했다. 김혜애 녹색연합 정책실장은 “미군기지 관련 활동은 1996년부터 해온 것이어서 이번 사건과 시점이 다르다”며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삼진 한양대 교수(교통공학과)는 “용산 미군기지 독극물 방류사건의 경우는 나한테 직접 제보가 들어온 것으로, 친북 활동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춘천시민연대 유정배 사무국장은 “지금 거론되는 ㄱ씨는 친북 성향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전정윤 전진식 기자 ggum@hani.co.kr
전정윤 전진식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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