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단’ 규명에 주력…압수문건 해독여부가 관건
민주노동당 전ㆍ현직 간부와 386세대 운동권 출신이 연루된 `일심회'에 대한 공안당국의 수사가 가속화되고 가담자들에 대한 행적이 속속 드러나면서 이번 사건이 대규모 `간첩단 사건'으로 비화될지 주목된다.
공안당국은 북한 노동당에 입당해 대외연락부로부터 `지하당을 조직하라'는 지령을 받아 정보 수집 활동을 한 혐의로 사업가 장민호(미국명 마이클 장.44)씨와 그가 포섭한 인물들을 최근 줄줄이 구속하는 등 수사 성과를 내고 있다.
공안당국은 아직 이들에게 국가보안법상 회합ㆍ통신 등 혐의만 적용하고 `간첩'으로 단정하지 않았지만 압수물 분석 등을 통해 이들이 국가기밀을 탐지ㆍ수집해 북한 공작원에게 전달한 증거가 포착된다면 수사 대상과 범위는 급격히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이 386세대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과 광범위하게 교류해온 것으로 알려진 데다 공안당국이 대공 용의점이 있는 다른 조직도 수사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도는 점을 감안하면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문민정부 이후 최대 `공안정국'이 형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심회…`지인 통해 포섭' = 공안당국은 핵심 인물인 장씨가 지인들을 포섭하는 식으로 조직을 확대하며 각종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장씨는 우선 고교 2년 후배인 손정목(42)씨와 자신이 운영하던 IT(정보통신) 업체 임원 이진강(43)씨를 포섭해 일심회 조직의 기반을 닦은 뒤 여권인사 A씨의 소개로 민노당 전 중앙위원인 이정훈(43)씨를 차례로 포섭했다.
1989년 밀입북해 공작원 교육을 받고 남한으로 돌아온 장씨가 1997~2001년 지인들을 중심으로 조직의 기반을 닦은 후 서서히 정치권에 접근해 정보를 수집하고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하달할 수 있는 인맥을 형성했다는 게 공안당국의 전언이다.
공안당국은 28일 추가 구속된 민노당 사무부총장 최기영(41)씨의 경우 일심회에 미리 가입해 있던 손씨로부터 대미ㆍ대북ㆍ남북 관계 등에 관한 사상교육을 받은 후 일심회에 들어가 손씨를 경유해 장씨에게 각종 정보를 제공하거나 수행할 임무를 지시받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공안당국의 수사는 일심회 조직원들이 386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과 자주 접촉하며 정보를 수집해 장씨에게 넘겨줬을 뿐 아니라 정치권 및 시민단체 인사 등을 추가로 조직원으로 끌어들이려 했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고 있다.
◇동향 파악, 포섭…`체계적 역할 분담' = 공안당국은 일심회 조직원들이 시민ㆍ사회단체 동향 분석, 조직원 포섭 등의 역할을 체계적으로 분담해 활동했던 것으로 보고 이 부분의 진실을 캐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장씨가 일심회 조직의 총괄 역할을 했고 손씨는 조직원 연락, 이진강씨는 시민단체 동향 파악 및 포섭, 이정훈씨는 정당 동향 파악 등의 업무를 나눠 맡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공안당국의 수사력은 최씨가 사무부총장이라는 민노당 내 지위를 이용해 민노당과 다른 정당 및 행정부 주요 인사 동향, 주요 당직자 인물 분석 등을 파악해 손씨에게 넘겨줬는 지 등을 밝히는 데 모아지고 있다.
이진강씨가 시민단체 동향을 파악하고 인맥을 활용해 조직원을 확보하는 역할을 했는지 등도 핵심 수사 분야다.
이들은 장씨로부터 `윤광웅 국방부 장관 해임결의안 무산 경위 파악',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노당이라도 열린우리당에 표를 몰아줘 한나라당 당선을 막는 방안', `환경문제를 끌어들여 시민단체를 반미투쟁에 끌어들이는 방안' 등 조직원별로 상당히 구체적인 임무를 지시 받았다는 게 공안당국의 설명이다.
이들이 분석해 보고한 자료는 정당 동향 및 주요 당직자 인물 분석, 주요 정당인 및 시민단체 핵심 인사 포섭 계획, 핵실험 이후 각계 동향 및 시민단체 움직임 등인 것으로 공안당국은 의심하고 있다.
◇암호문 해독이 수사 성패 결정 = 공안당국은 장씨가 암호로 작성했다는 대북 보고문을 해독하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장씨의 집과 사무실에서 압수해 온 컴퓨터와 USB(저장장치) 등에서 다량의 암호화된 대북 보고 문건을 찾아내 그 내용을 해독 중인 공안당국이 암호 풀기에 성공한다면 장씨를 비롯한 조직원들의 보고가 실제로 북한에 전달됐는지 여부가 확인될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장씨 등이 북한의 지령대로 중요 정보를 확보해 보고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일심회 조직원으로 지목된 피의자들의 `간첩' 혐의를 입증하는 것은 물론, 수사 범위가 급격히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공안당국이 암호해독기 등을 동원했음에도 간첩 혐의를 뒷받침할 어떤 물증도 찾아내지 못한다면 정치권이나 국민으로부터 `신공안정국'을 조장했다는 비난과 함께 엄청난 역풍을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문건의 해독 및 그 문건에 실린 내용에 따라 이번 수사가 `단발성'에 그칠 지, 아니면 386세대 출신 정치인이나 시민단체 인사 등으로 확대될 지가 가려진다는 점에서 당분간 공안당국의 수사력은 문서 작성에 동원된 암호를 푸는 데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심규석 기자 ks@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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