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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사이 뉴스가 386간첩단 사건으로 도배질되고 있다. 언론들은 앞다투어 실제적 정황에 대한 분석과 비판은 없이 간첩단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다는 식으로 호들갑 떨기에 바쁘다. 졸지에 민주노동당은 하루 아침에 조선노동당의 하부조직으로 매도되고 386정치인들로 대표되는 현정부 인사들에게까지 여파가 미치는 모양이다. 혹자는 이제 우리 국민들이 해묵은 색깔논쟁에 성숙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붉은 낙인의 맹위앞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른바 386 간첩단 사건역시나 역대 여느 간첩단 사건과 같이 허술한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이제 간첩단사건의 자중지란에서 헤어나 냉철히 사건을 돌아볼 일이다. 어설픈 고정간첩 장민호 사실 이번 사건의 핵심인물은 국정원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장민호라는 고정간첩이다. 3번이나 북한을 방문하여 조선노동당에 가입하였고 충성맹세를 했다는 것이다. 하여 간첩단 사건의 전모가 대부분 장씨의 진술에 의존하고 있다. 그는 81년 대학에 입학하여 82년 미국으로 건너갔고 거기에서 친북교포를 만나 고정간첩 활동을 하였다고하나 이제 20살인 대학 2학년생이 많은 의협심을 가졌을 수는 있으나 당시 민주화운동에 대한 체계적인 안목이나 지도를 행사하기에는 사실 어설픈 나이이다.
그의 대학동문들은 사실 당시 장씨는 오히려 학생운동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고 증언한다. 별다른 관심도 없던 이가 어느날 하루 아침에 애국투사로 돌변하여 수 십년간 남한의 민주화운동을 지도한다는 것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런 의혹은 장씨의 연행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장씨는 연행되어 국정원의 조사를 받자 마자 48시간도 안되어 혐의의 일부분을 시인하고 영장 실질심사도 포기했다. 남한의 민주화 운동을 지도한다는 고정간첩이 체포하자마자 자신의 혐의를 당장 시인하고 가장 기본적인 절차인 영장실질심사마저도 포기하였다는 것은 이해가지 않는 일이다. 정말 간첩이라면 최소한 아니라고 반박하고 주장해야 옳지 않겠는가. 영장실질심사라도 하여 구속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렇게 해야하지 않겠는가. 또한 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인 최씨가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있을 때 장씨는 최씨는 이른바 자신이 조직한 일심회의 성원이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아니 어느 간첩이 자신의 조직원의 이름과 소속을 그리도 쉽게 밝히는가. 초등학교 애들의 의리도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런 인사들을 접촉하여 왔을까. 물론 이런 사람들을 만나고 접촉한 것과 지령을 내린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조사가 있어야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누구를 지도할만한 경륜과 능력도 갖추지 못했으며 미국에서 어설프게 귀동냥으로 주워들은 지식과 인맥을 이용해 자신의 소영웅심리에서 이런 접촉을 시도해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듯 하다. 386간첩단은 왜 모였는가 이번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사람들의 경력을 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모두 소위 명문대 출신이며 졸업후에는 IT계통의 개인사업이나 학원운영에 나섰다는 것이다. 아마 이만하면 짐작컨대 꽤 많은 재정적 부도 축적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들이 한 때 민주화 운동의 선두에 있었으며 소위 운동권들도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의 이들의 행적은 사실 올바른 운동인사들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겉으로는 중소기업의 대표이사나 대기업의 촉망받는 인재이면서 속으로는 운동권들을 후원하고 지령해왔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보이게는 그닥 그렇게 훌륭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와 대학을 다니며 운동에 헌신했던 사람들의 상당수는 여전히 사회의 각계각층의 분야에서 자신의 안락은 멀리한채 최소한의 생계대책도 없이 민초들의 아픔을 함께 하기위해 애써왔는데 반해 그들은 한 때 민주화운동에 투신하기는 했으나 지금은 그저 개인의 안위와 경제적 부의 획득을 위해 사업에 나선 사람들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민주투사를 부르짖었으나 지금은 신자유주의의 나팔수가 된 열린우리당 인사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다. 강남일대에서 논술학원을 주름잡고 있는 유명스타강사들의 경력에도 386운동권의 딱지가 붙어 있듯이 말이다. 나야말로 그들에게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는가 물어보고 싶다. 예전에 사회운동에 참여했던 추억과 향수만으로 현재의 사회운동을 이끌어가지는 못한다고 본다. 그들이 만약 사회적인 직위는 남들이 부러워할 전문직 고소득 계층에 있지만 아직도 자신이 한국사회운동을 지도하고 있다고 여긴다면 이는 엄청난 착각일 수 밖에 없다고 오히려 이야기해주고 싶다. 허술한 증거품 또한 국정원이 그동안 추적하였다는 장씨의 행적과 증거품들도 의문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국정원은 장씨가 지난 80년대부터 3차례나 걸쳐 방북하였고 베이징 주재 북한 공작원을 만났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국정원은 이런 고정간첩의 행적을 적어도 20년가까이 추적해왔다는 말이되는데 그동안 3차례나 걸친 북한 방문 사실과 이정훈씨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과의접촉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까지 증거가 불충분하였다는 이유를 들며 수사발표를 미루다 지금에 와서 발표하게 되었는가. 과연 그동안은 증거가 불충분하였는가. 아니다. 국정원은 중국에서 북한 인사를 만나는 현장의 사진까지도 촬영하는 치밀함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고정간첩의 활동을 방기한 국정원의 직무유기란 말인가. 또한 국정원이 입수하였다는 이른바 장민호 리스트도 문제이다. 동네 반상회도 아닌데 어느 간첩이 자신이 접촉하는 인사들의 명단을 고스란히 수첩에 적어놓고 조직표를 알아서 그려준다는 말인가. 실명과 직책을 거론하여 적은 것부터가 고정간첩이라고 하기에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또한 간첩죄의 주요한 행적으로 일컬어지는 것을 보자. 이정훈씨는 서울시당의 동향을 이진강씨는 시민단체의 동향등을 보고하였고 하는데 이정훈씨가 보고하였다는 서울시당의 동향이란 시민사회단체의 동향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들 단체들의 동향이란 인터넷의 홈페이지를 들어가면 회의록까지 볼 수 있도록 친절히 보고되어 있는데 이보다 자세한 무엇을 보고한단 말인가. 북한이 고정간첩을 통해 일개 시당의 활동에 관여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납득가지 않는다. 더구나 내가 아는 바로는 실제 서울시당은 북한과 별로 친하지 않은 활동을 한 이른바 좌파활동가들로 구성되었었다. 또한 남한내 주한미군철수 방안에 대한 논의와 지령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야말로 웃지못할 코메디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주한미군철수를 할 수있단 말인가. 그 방법을 아는 사람이 도대체 있는가. 알면 좀 알려달라. 당장에 무슨 방도가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라 이것이야말로 그동안 주권의식을 회복하여 한국사회가 이만큼이라도 나아지도록 노력해온 우리 국민들의 노력에 대한 모독행위이다. 한국 국민들은 북한의 지령이 없이는 주한미군철수 주장도 할 수 없다는 말인가. 정치권의 동향이라는 것도 이해가지 않는다. 그들만이 알 수 있는 정치권의 동향이란 것이 과연 있을 수 있는가. 물론 있다 해도 그것은 3류 정치신문 기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너무나 흔하디 흔한 비평들일뿐이며 무슨 국가기밀일 가능성은 더더욱 없어 보인다. 여전히 족쇄에 매여있는 우리들 ‘간첩’ 정말 무서운 말이다. 특히나 한국에서의 간첩은 다른 나라의 간첩과는 다르다. 미해군의 군사기밀을 유출했다하여 미국에서 옥살이를 한 로버트 김을 떠올릴 때 생각나는 간첩과 386간첩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바로 북한의 존재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실체와 진실은 조사를 통해 밝혀지게 되겠지만 그 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간첩이라는 이 주홍글씨의 공포앞에 휘청이고 있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진보정당이라고 이야기하는 민주노동당 내부에서도 반국가활동을 했다면 국가보안법이 아닌 다른 법으로라도 처벌해야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가 나오겠는가. 국감조사를 보면 94년까지도 한국에서 간첩을 북에 파견하였다고 한다. 한국전쟁이후 북에 파견하였다가 실종된 공작원은 1만여명에 이른다. 미국은 독재정권 시절 CIA지부를 주한미대사관에 두어 한국내 정치동향을 파악하고 실제로 이를 떡주무듯이 움직여온 장본인이었고 IMF경제 위기 이후에는 미재무국과 IMF의 관리들을 우리나라 재정경제부에 상주시키며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모든 것을 간섭하여 조정하였었다. 또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던 김대중정부시절의 임동원특사 역시나 사실 간첩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번 사건과 이를 단순비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간첩’ ‘지령’ ‘배후조종’ 이라는 섬뜩한 단어들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는다면 우리들의 생각또한 국가보안법의 족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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