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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안생활백서] 30살 기자의 80살 할머니 체험

등록 2006-10-19 18:05수정 2006-10-19 18:31

<한겨레>조혜정 기자가 19일 개소한 서울 용산구 효창동 노인생애체험센터에서 노인들의 불편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팔 모래주머니, 귀마개, 잘 안보이는 안경 등을 착용한 채 걷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한겨레>조혜정 기자가 19일 개소한 서울 용산구 효창동 노인생애체험센터에서 노인들의 불편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팔 모래주머니, 귀마개, 잘 안보이는 안경 등을 착용한 채 걷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눈 앞은 뿌옇고 다리는 ‘후들후들’
계단 오르다 기우뚱 “아이고”
말소리는 희미하고, 시야는 좁고 뿌옇다. 감각이 둔해진 손으로 그러잡은 지팡이는 뻑뻑한 무릎과 무거운 다리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다. 한 발 내딛기도 힘든 몸은 ‘혹시나 넘어질까’ 하는 옅은 공포로 더 움츠러든다. 기어이, 몸은 미처 못 본 계단에서 중심을 잃는다. 팔·다리 모래주머니와 팔·손가락·무릎·등에 댄 억제대, 특수안경과 귀마개는 기자의 몸에 순식간에 50년 시간을 보태버렸다.

<한겨레>조혜정 기자가 19일 개소한 서울 용산구 효창동 노인생애체험센터에서 노인들의 불편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팔 모래주머니, 귀마개, 잘 안보이는 안경 등을 착용한 채 세수하는 모습을 해 보이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한겨레>조혜정 기자가 19일 개소한 서울 용산구 효창동 노인생애체험센터에서 노인들의 불편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팔 모래주머니, 귀마개, 잘 안보이는 안경 등을 착용한 채 세수하는 모습을 해 보이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서울 효창동에 19일 문을 연 노인생애체험센터는 현관·주방·욕실·계단 등으로 꾸며진 20평 남짓한 공간을 몇 가지 장비를 걸치고 2시간 남짓 돌아보면서 80살 노인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노인이 아닌 사람이 직접 ‘노인 체험’을 해 봄으로써 노인들을 이해해 보자는 취지다. 등 굽은 우리 ‘할매’를 사랑하지만 그 굽은 등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지 못했던 기자는 이날 등 굽은 ‘할매’가 됐다.

말소리는 아득하게 들리고 특수안경 끼니 온통 답답
혼자 신발 벗기조차 힘들어
2시간 ‘할매’ 돼서야 느꼈다…그들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한겨레>조혜정 기자가 욕조에 들어가 목욕하는 모습을 해 보이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한겨레>조혜정 기자가 욕조에 들어가 목욕하는 모습을 해 보이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시력이 점점 나빠져 결국 실명에 이를 수도 있는 ‘황반변성’을 체험할 수 있는 특수안경은 시종일관 답답했다. 전기밥솥·세탁기 등 가전제품 표시창에 쓰인 작은 글씨는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다.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사용의 편의성을 더 높였다”는 전자제품 판매업체의 광고 문구들은, 적어도 노인과는 무관해 보였다.

이선희 사회복지사가 팔을 부축하는데도, 척추 하나하나를 찍어누르는 듯한 등쪽 억제대와 양쪽 발목에 매단 1㎏짜리 모래주머니 탓에 발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장갑과 손가락 억제대 때문에 둔해진 손의 감각은 지팡이를 제대로 짚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혼자 신발을 신고 벗기도 쉽지 않았다. 욕조에 들어가는 일은 아무리 보조 손잡이가 있어도 너무나 난도 높은 과제였다. 층계를 오르내리거나 의자에 앉고 설 때에도 “아이고” 소리가 절로 터져나왔다.

불편해진 몸을 김혜정 사회복지사가 미는 휠체어에 실었다. 한결 낫다고 생각한 찰나, 주방 개수대 위에 매달린 찬장에도, 가스레인지 뒷줄에도 손이 닿지 않음을 깨달아야 했다. 욕실 세면대는 너무 높아 수도꼭지를 열기도 힘들다. 이쯤 되니 ‘내겐 아무렇지 않고, 너무 당연한 생활환경이 노인에겐 혼자서는 도저히 몸을 가눌 수도 없는 생활환경’이라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했다. 그건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장애인에게도 똑같이 해당하는 일이다.


노인생애체험센터에서는 누워 용변을 보고 샤워까지 할 수 있는 수백만원짜리 침대나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고가의 주방·욕실 가구가 아니라도, ‘노인에게도 자연스런 생활환경’을 만들 아이디어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신발장밖에 없는 현관에 의자를 두면 신발을 갈아신기 편하고, 욕조 머리맡에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편안히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다. 화상 위험이 높은 가스레인지 대신 전기레인지를 이용하면 노인뿐만 아니라 어린이나 장애인들에게도 안전해 보인다. 또 문 손잡이를 원형이 아닌 막대형으로 바꾸면 문을 여는 데 힘이 덜 든다.

<한겨레>조혜정 기자가 19일 개소한 서울 용산구 효창동 노인생애체험센터에서 노인들의 불편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팔 모래주머니, 귀마개, 잘 안보이는 안경 등을 착용한 채 걷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한겨레>조혜정 기자가 19일 개소한 서울 용산구 효창동 노인생애체험센터에서 노인들의 불편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팔 모래주머니, 귀마개, 잘 안보이는 안경 등을 착용한 채 걷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노인체험은 경기 성남시 분당 서울대병원, 한림대 고령사회교육센터 등에서도 해 볼 수 있다. 굳이 체험센터를 찾지 않아도 안경에 노란 셀로판지를 붙이고 밥을 먹어 보거나, 귀마개를 끼고 가족과 대화를 해 보면 노인이 느끼는 불편을 ‘쉽게’ 경험할 수 있다.

노인체험 취재를 마치고 나서는 길, “체험센터가 문을 연다고 해 일부러 찾아왔다”는 70대 후반 어르신 3명이 말을 건넸다. “우리도 젊을 땐 ‘지팡이 짚고 왜 저러고 사나’ 싶었어. 그런데 살다 보니 우리가 벌써 그 지팡이 짚은 노인이더라고. 젊은 사람들이 좀 많이들 경험하고 느껴 보면 좋겠다 싶어. 허허허….”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 기사와 관련한 제안이나 실천 경험, 소감 등을 ‘대안생활백서’ 홈페이지(wwww.action.or.kr/home/lifeidea)에 올릴 수 있습니다.

<한겨레>조혜정 기자가 19일 개소한 서울 용산구 효창동 노인생애체험센터에서 노인들의 불편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팔 모래주머니, 귀마개, 잘 안보이는 안경 등을 착용한 채 걷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한겨레>조혜정 기자가 19일 개소한 서울 용산구 효창동 노인생애체험센터에서 노인들의 불편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팔 모래주머니, 귀마개, 잘 안보이는 안경 등을 착용한 채 걷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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