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의원에 가면 볼 수 있는 포스터(왼쪽). 상당수 내과에는 '한약 복용시 주의하십시오'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오른쪽)
[진단] 한의사-의사협 ‘포스터 공방’ 환자는 어딜 믿어야 하나? 며칠전 어린 딸이 감기에 걸린 신아무개(30·서울 관악구 신림동)씨는 동네 내과의원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한약 복용시 주의하십시오’라는 포스터에는 처방전 없이 한약 등을 복용할 경우 간염, 심장병 및 위장병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평소에 한약을 자주 복용해온 신씨는 겁이 덜컥 났다. 놀란 신씨는 단골 한의원을 찾았다. 하지만 그 곳에는 ‘아이들 감기 한방으로 다스린다’라고 적힌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도대체 어느 병원의 말이 맞는 거죠? 우리 같은 환자는 어떤 의사의 말을 믿어야 하나요?” 신씨는 하소연했다. ‘감기’는 건강보험 급여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신씨는 감기 치료 효능을 둘러싼 한의사와 의사의 포스터 공방이 두 고소득 전문직종의 ’밥그릇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 의사집단의 다툼으로 인한 피해는 신씨와 같은 환자들 몫이다. 의학적 전문지식이 없는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들의 말을 100% 신뢰할 수밖에 없는데 양쪽이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며 다른 분야의 의료진을 비난하고 헐뜯는 상황에서는, 의사나 한의사의 진료를 받더라도 의심스럽고 혼란스럽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한의원에는 ‘아이들 감기 한방으로 다스린다’ 의원에는 ‘한약 복용시 주의…간염, 심장병 등 우려’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한 의학계와 한의학계의 힘겨루기가 재연된 것이다. 지난 93년 한약 조제권을 놓고 치열한 ’영역 다툼’을 벌였던 한의·한약학계와 의·약학계가 이번에는 한약의 감기 치료 효능을 놓고 한바탕 대결을 벌이고 있다. 다툼의 발단은 지난 1월 말 개원한의사협의회가 ‘감기치료는 한방으로’라는 주제의 워크숍을 여는 과정에서 관련 포스터를 회원들에게 배포하면서 시작했다. 한의원마다 붙은 포스터에 대해 내과의사회도 포스터로 맞섰다. 내과의사회는 ‘한약 복용으로 간염, 심장병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포스터와 ‘한방약은 효과가 없다’라는 일본 서적을 요약한 소책자를 배포, ‘반 한방’ 캠페인을 전개했다. ‘한약이냐’ ‘양약이냐’ 논쟁을 떠나 진료 영역을 둘러싸고 번번이 갈등을 빚어온 양·한방 의료계의 이번 다툼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환자’를 볼모 삼았다는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한약-양약을 둘러싼 혼란과 피해는 고스란히 의료소비자들에게 돌아간다. 의사협회, 한의사협 검찰 고발 ‘아이들 감기치료에 좋으며 부작용 없다’ 광고…“윤리적 용납 불가” 의료 소비자인 국민들의 반감과 피해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개원한의사협의회와 내과의사회 간의 다툼으로 시작된 사태는 각각 한의사들과 의사들의 대표적인 단체인 대한한의사협회와 대한의사협회간의 대결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대한의사협회는 8일 ‘아이들 감기 한방으로 다스린다’라는 제목의 포스터를 배포한 개원한의사협의회를 의료광고 주체 위반, 진료방법이나 약효 등 광고 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또 청와대와 국회, 보건복지부 등에 의료일원화대책특별위원회를 구성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하는 등 압박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의료 일원화는 사실상 한의학을 배제, 양의학계 중심으로 의료체계를 재편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개원한의사협의회도 내과개원의사회가 한약 부작용의 근거로 일본책 ‘한방약 효과 없다’를 요약 배포한 것과 관련 허위사실 유포 혐의 등으로 조만간 검찰에 고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이번 공방 이후 한의사들이 수차례 협박전화를 해왔다고 주장한 장동익 개원의사회장에 대해서도 법적 조처를 검토 중이다. 의협 쪽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한약 부작용이 명확히 입증되고 있음에도, 한의사들이 ‘까다로운 아이들 감기치료에 좋으며 부작용이 없어 임산부도 부담없이 치료가 가능하다’는 허위 사실을 광고하는 것은 도덕적·윤리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의협 관계자는 “의학적 근거가 미약한 허위, 또는 과대 광고로 국민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면서 “검증되지 않은 의학 지식이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데 대해 강력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흔히 한약이 생약제라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잘못 인식돼 있으나 실제로는 독성이 강해 잘못 복용할 경우 심각한 후유증이 생길 수 있다”면서 “이를 입증할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의사협, 의협 고발에 “몰염치 행위 즉각 중지하라” 발끈 “한의학을 이해하지 못한 편견…오진의 극치” 반면 개원한의사협의회쪽은 “의료계에서 한의사들의 영역이 확대되자 이에 위협을 느낀 의사들이 무리한 주장을 하며, 한의학을 말살하려 하고 있다”면서 “내부적으로 강경 기류가 적지 않으나 추이를 지켜본 뒤 대응 강도를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단체 관계자는 “의협과 그 산하 단체가 한의학에 대해 문외한임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정보로 국민을 기만하고 호도하고 있다”며 “일본 책 ‘한방약 효과 없다’를 요약한 자료집을 제작·배포한 대한내과의사회에 대해 허위사실 유포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겠다”며 법적 대응에 나설 뜻을 밝혔다. 또한 그동안 침묵을 지켜왔던 대한한의사협회도 8일 보도자료를 내어 의사협회가 개원한의사협의회를 불법광고 혐의로 고발하고 나선 것과 관련 “몰염치한 행위를 즉각 중지하라”고 맞섰다. 한의사협회는 “의료계의 행위는 양약과 양방 의료의 부작용을 감추고 한방의료의 발전과 세계화 노력에 대한 사실을 왜곡하기 위한 의협 차원의 발버둥”이라고 규정한 뒤 “한의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일방적 편견으로 재단하는 오진의 극치임을 지적한다”고 강조했다. 한의사협회는 이어 “우리는 왜곡된 정보를 바로하고, 오직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담당하는 의료인의 사명을 다할 것”이라면서 “한방 의료의 현실을 왜곡하고 허위정보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방해하는 어떠한 기도에도 좌시하지 않겠다”고 주장, 한의사협회의 향후 대응방안에 귀추가 모아지고 있다. 한의사협회는 이번 사태에 대해 정면대응할 방침을 내비치면서도 구체적 계획은 밝히지 않고 있지만 ‘범한의계 의권수호위원회’ 회의가 열리는 11일을 전후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하승창 처장 “전문성 무기로 소비자에 강요…의사 한의사 둘다 못믿어” 양·한방 협진을 연구·적용하고 있는 박동석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장은 “양방과 한방의학은 모두 각각의 장점과 단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양 단체에서 서로의 단점을 트집잡아 환자들에게 홍보하는 지금과 같은 대립양상은 국민을 혼란으로 빠뜨릴 수 있으며, 의료계 전반에 대한 국민불신을 가져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한방과 양방 각각의 장점을 존중하는 가운데 국민건강을 제고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나가는 것이 의료인의 바람직한 자세가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한편 하승창 ‘함께하는 시민행동’ 사무처장은 “질병치료에 있어서 서로 다른 접근법과 해법을 같고 있는 의사와 한의사가 자신들의 전문성을 무기로 소비자들에게 강요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의사와 한의사의 말 모두를 신뢰할 수 없다”며 “서로 다른 조건과 해법을 인정한 바탕 위에서 교류를 통해 진리를 찾아가는 것이 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올바른 태도”라고 꼬집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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