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서 텔레비전을 치우고 대신 책장을 가득 들여놓은 김순영씨(가운데)가 아들 서윤호(왼쪽)·윤하와 함께 책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미래를 여는 실천 대안생활백서] ⑨ 거실을 서재로 바꾼 윤호네
책이 빽빽한 서가와 고풍스런 책상을 갖춘 서재는 집 넓은 사람만의 특권이 아니다. 한 질씩 구입해 책장 한 번 넘기지 않은 채 반짝이는 서가 유리문 안에 모셔두는 호사스런 서재는 아니어도, 어느 집에나 훌륭한 서재를 만들 넉넉한 공간이 존재한다. 흔히 텔레비전이 주인 노릇을 하는 거실이 그곳이다.
경기 과천시에 사는 서진석(41)·김순영(41)씨 부부는 4년 전 거실에서 텔레비전과 소파를 추방했다. 대신 베란다 쪽을 뺀 세 벽면을 서가로 만들었다. 거실 한가운데 따뜻한 느낌이 나는 큰 나무탁자와 등받이 의자를 놓자, 텔레비전 소리만 가득하던 거실은 단번에 아늑한 서재가 됐다. 부부가 워낙 책을 좋아하는 탓도 있지만, 윤호(10)·윤하(7) 두 아들이 자라면서 책과 친해지게 해주자는 게 부부의 육아 지론이기 때문이었다.
윤호·윤하 생각하는 힘 ‘쑥쑥’ “논술 걱정 안해” 이웃 동참도
“손 닿는 곳에 책이 있으니까 애들도 자연스럽게 책을 읽어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잠들기 전 30분씩이라도 꼬박꼬박 읽고, 외출할 때도 꼭 책을 챙겨 나간다니까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도 별로 안 찾고요.”
김씨의 자랑이 아니라도, 냉장고 문에 붙은 독후감·글짓기 상장 10여장은 윤호의 독서 ‘내공’을 짐작하게 한다. 추석 연휴 내내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윤하도 만만찮다.
아이들 책과 친하게 해주고자 4년전 TV 치우고 책으로 ‘도배’
“책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렀으면 좋겠다”는 부부의 바람대로, 아이들은 단순히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내 이름은 김이박현우>를 읽고선 입양아 문제에 관심을 보이고, <쌀뱅이를 아시나요>를 읽고선 혼혈아도 자신들과 똑같은 어린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과학·역사책을 특히 좋아하는 윤호는 책을 덮은 뒤 궁금한 게 생기면 관련된 다른 책을 스스로 찾아 읽기도 한다.
“실제로 볼 수 없는 걸 마음껏 상상할 수 있고, 아는 것도 많아지니까 책 읽는 게 재밌어요. 수업시간에 발표도 많이 할 수 있고, 괜히 공부 잘하는 기분도 들고….”
윤호가 쑥스러운 듯 웃는다. 네 식구가 여행을 갈 때도 윤호는 안내자 몫을 톡톡히 한다. 추석을 앞두고 나흘 동안 경주 여행을 하기로 결정한 두달 전부터 윤호는 아빠와 함께 경주의 문화유산과 역사에 관한 책 10여권을 읽었다. 덕분에 엄마와 윤하에게 다보탑·무영탑에 얽힌 전설과 김유신이 누구인지를 멋지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돌아본 경주는 윤호·윤하에게 ‘살아 숨쉬는 신라’일 것이라고 김씨는 생각한다.
“윤호네는 논술 걱정 안한다”는 소문이 나서였을까. 이들 부부가 유난스럽다고 생각하던 이웃들도 거실을 바꾸기 시작했다. 아이들 친구네 여섯 집이 거실에 책을 들여놨다. 한 집은 윤하네처럼 텔레비전까지 완전히 치웠다. 하지만 김씨가 거실을 서재로 바꾼 뒤 느낀 가장 큰 행복은 온 식구가 둘러앉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식구들 함께 둘러앉아 책읽고 두런두런 얘기도…멋지죠?
“함께 둘러앉아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어요. 소파에 일렬로 앉아 텔레비전만 쳐다보는 보통의 거실에선 힘든 일이죠. 독서가 일상이 되고 책이 식구들을 끈끈히 이어주는 일, 멋지지 않나요?”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