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저녁 서울 대학로 낙산공원에서 여성환경연대가 서울시와 함께 마련한 야외 캔들 나이트 행사에서 어린이들이 촛불 주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성환경연대 제공
전등 끄고 문명의 플러그 뽑고 한달에 한번쯤 ‘느림의 실천’
은은한 불빛아래 가족과 대화 숨가쁜 삶 되돌아보는 시간도
은은한 불빛아래 가족과 대화 숨가쁜 삶 되돌아보는 시간도
[미래를 여는 실천 ‘대안생활백서’] ⑧ 서서히 번지는 ‘캔들나이트’ 운동
주부 이우선(37)씨는 한달에 서너차례씩 촛불을 켜고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준다. 자연에 최대한 가까운 불빛 속에서 고즈넉한 엄마의 음성에 귀 기울이다 아이들은 평화롭게 잠이 든다. 이씨는 “발달이 느리던 막내가 지금은 학교에서도 잘 따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위에도 열심히 촛불켜기를 권하고 있다.
한달에 한번이라도 텔레비전과 컴퓨터 따위 전기제품들의 플러그를 모두 뽑고 집안의 전깃불도 끄고 몇 개의 촛불로만 저녁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은 어둠이고 반은 빛인 공간에서 이들은 가족들끼리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식사를 한다. 혼자인 이들은 촛불 아래서 책을 읽거나 오래간만에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촛불을 바라보며 바쁘게 살아온 지난 몇 주간의 일상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여성환경연대가 제안한 ‘촛불켜기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어느덧 1500여명에 이르고 있다. 여성환경연대는 지난해 여름 “문명의 플러그를 뽑고 잠시나마 기계화된 세계와 연결고리를 끊음으로써 자연의 시간과 속도에 스스로의 삶을 조화시키자”는 뜻에서 이 운동을 시작했다.
촛불켜기 운동은 지난 2001년 미국 조지 부시 정권의 핵발전 위주 에너지 정책에 항의하는 뜻으로 벌어진 ‘자주정전 운동’이 그 시초인데, 그 뒤 일본 시민단체들이 ‘캔들 나이트’라는 이름을 붙여 환경과 평화, 자기 성찰의 가치를 담은 생활운동으로 확산시켰다. 지난해엔 일본 도쿄타워와 오사카성 등 3만3559개 시설의 불을 끄도록 했고, 최근에는 정부와 기업들의 호응으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서윤아(25·회사원)씨도 이런 ‘느림의 가치’에 공감해 지난겨울부터 한달에 한번씩 촛불을 켜고 음악을 듣거나 명상을 하거나 편지·일기를 쓴다. “바쁘게 쫓겨 살던 일상을 잠깐 멈추는 시간”이라고 한다. 친구들과 직접 초를 만들어 은은한 저녁을 함께 지내기도 한다.
운동에 동참하는 가게들도 늘고 있다. 서울 삼청동의 문향재를 시작으로 대학로의 마리안느 카페, 평촌의 문화살롱 라우리안 등이 ‘촛불켜는 가게’라는 이름으로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 촛불을 켜고 손님을 맞는다.
여성환경연대의 박은진 활동가는 “이 운동이 비록 에너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 차원에서 시작됐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의 여유 없이 경쟁 사회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자기성찰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촛불켜기 운동과 촛불켜는 가게들 이야기, 매달 마지막 주에 진행되는 촛불켜기 행사 정보 등은 여성환경연대 홈페이지(www.ecofem.or.kr)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가오는 한가윗날 저녁, 집안의 플러그를 뽑고 촛불을 켠 다음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오순도순 모여 앉아 그동안 감춰뒀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는 건 어떨까? 아마도 달이 훨씬 밝을 것이다. 박용현 기자, 조양호 함께하는시민행동 기획실장 piao@hani.co.kr
여성환경연대의 박은진 활동가는 “이 운동이 비록 에너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 차원에서 시작됐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의 여유 없이 경쟁 사회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자기성찰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촛불켜기 운동과 촛불켜는 가게들 이야기, 매달 마지막 주에 진행되는 촛불켜기 행사 정보 등은 여성환경연대 홈페이지(www.ecofem.or.kr)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가오는 한가윗날 저녁, 집안의 플러그를 뽑고 촛불을 켠 다음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오순도순 모여 앉아 그동안 감춰뒀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는 건 어떨까? 아마도 달이 훨씬 밝을 것이다. 박용현 기자, 조양호 함께하는시민행동 기획실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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