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통신망에 수뇌부 성토 줄이어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앞장서 주장하면서 검찰이 요구하는 수사 관행을 거부해온 일선 경찰서장이 한직으로 인사 발령된 일로 경찰 내부 통신망이 들끓고 있다.
지난 26일 이택순 경찰청장이 황운하 총경(경찰대 1기)을 대전 서부경찰서장에서 경찰종합학교 총무과장으로 전보 발령낸 뒤 28일까지 경찰 내부 통신망에는 500건 이상의 글이 올라왔다. 대부분은 이 청장 등 경찰 수뇌부를 강력하게 성토하는 내용이다. 일부 글은 거친 표현을 써가며 수뇌부를 비난해, 경찰청 지식관리계에서 삭제하는 촌극까지 빚어지고 있다.
좌천된 황 총경은 올해 3월까지 경찰청 수사권조정팀장을 맡았다. 대전 서부경찰서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피의자 구속 전 검찰청사 인치’ 요구를 거부하는 등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검찰의 요구에 맞서왔다. 황 총경은 지난 24일에도 경찰 내부 통신망에 ‘법원-검찰-변협’의 갈등과 관련해 검찰을 다시 한번 비판하면서 수사권 조정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 청장은 그 뒤 기자간담회에서 황 총경의 문제제기 방식에 부정적인 의견을 밝힌 뒤 황 총경을 전보 조처했다.
이를 두고 한 경찰관은 경찰 내부 통신망에서 “검찰에 대한 경찰청의 공식 항복선언”이라며 “지금 경찰이 이 모양 이 꼴인 것은 전적으로 경찰 스스로의 잘못”이라고 성토했다. 또다른 경찰관은 “지역 치안을 책임지는 자리에서 법적 검토 뒤 정식 의견을 제시한 것인데, 잘했다고는 못할망정 제일 믿을 만한 장수를 쫓아내다니…”라며 한탄했다. 일부 경찰은 통신망에 사망을 뜻하는 검은 리본(▶◀)까지 띄워가며 수뇌부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일선 경찰관 수십명은 30일 오후 3시 인천 부평의 경찰종합학교로 황 총경을 위로차 방문할 예정이다.
그러나 경찰청의 한 치안감은 “수사권은 수사권이고, 서장으로서 자리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하는 때는 자리를 옮길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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