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을 소재로 다룬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관객들에게 사형제의 야만성을 설득력 있게 호소하고 있다. ⓒLJ FILM, PRIME ENTERTAINMENT
사형을 선고받고 부산구치소에서 복역 중이던 사형수가 지난 달 18일 폐암으로 사망했다. 사형수가 사형이 아닌 이유로 죽음을 맞이한 것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사형수의 ‘자연사’를 둘러싸고 사형제 존폐 여부에 대한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가운데, 때마침 불운한 사형수와 어린 시절의 성폭력이 남긴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젊은 여자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개봉되었다. 정진석 추기경이 영화를 보고나서 가진 인터뷰에서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이 한 편의 영화가 (사형제 폐지에 대해) 더욱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것처럼, 『우행시』는 관객들에게 ‘과연 사람이 어떤 이유로든 사람을 죽이는 것이 옳은 일인가’라는 질문을 자못 진지하게 던져준다. 이 영화는 최근 인기리에 상영중이어서 사형제를 둘러싼 논란이 더욱 가열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형수 출신이었던 김대중 씨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다. 재작년에 유인태 의원이 여야 의원 175명의 서명을 받아 사형제폐지특별법안을 제출했는가 하면, 최근에는 사형제 폐지에 긍정적 입장을 표명해온 전효숙 씨가 헌법재판소장에 지명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사형제를 존치하자는 목소리도 여전히 거세다. 지난 11일 CBS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45.1%가 사형제 존속에 찬성해, 폐지해야한다는 의견 33.8%를 압도했다. 사법당국 역시 사형제가 폐지되면 각종 강력범죄 발생률이 높아질 수 있다며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형은 아주 먼 옛날부터 동양과 서양에 걸쳐 두루 행해져온 형벌이다. 중국법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고려나 조선의 5형 제도-태,장,도,유,사((笞,杖,徒,流,死)-에서도, 사형은 반역죄 등 중죄를 다스리는 주요한 형벌이었다. 즉, 죄를 지은 사람을 죽임으로써 죄값을 받아내겠다는 마음가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널리 퍼져있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었던 것이다. 이 원초적인 감정을 우리는 ‘복수심’이라 부른다. 저 유명한 함무라비법전에서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여 복수심을 처벌의 가장 중요한 근거이자 이유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근대로 접어들면서 개인의 자유와 그에 따르는 책임이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 잡으면서 형벌 역시 구래의 인과응보적 복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근대의 형벌의 주목적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사회적 활동에 피해를 끼치는 범죄자를 시민사회로부터 격리하고, 교정을 통해 그들을 자유와 책임의 균형을 취할 줄 아는 근대적 인간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함이었다. 근대적 형태의 교도소가 처음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처럼 형벌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지만 사형제는 여전히 복수심에 기초한 단 하나의 예외적 형벌로 남아았고 지금까지도 여러 나라에서 지속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사실 근대적 형벌 제도가 추구하는 바와 사형은 여러 면에서 서로 부합하지 않는다. 극도로 반사회적인 범죄를 저지른 자를 영구히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싶다면 종신형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사형은 인간에 대한 교화를 포기한다는 점에서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발양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아야 한다는 근대적 휴머니즘-근대적 형벌 제도의 기본 전제가 되는-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사형제를 존치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사형이 갖는 범죄예방효과에 주목한다. 그렇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로써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는 사회는 이미 근대 이후 인간들이 꿈꾸어온 문명사회라 할 수 없다. 더구나 국제앰네스티의 보고서에 따르면 사형제 폐지와 강력범죄 발생율 사이에는 이렇다 할 상관관계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어떤 이유로든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몬다는 것은 참으로 야만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는 비난 받아 마땅하고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옳다. 그러나 사람을 죽였다는 이유로 우리도 범죄자에게 똑같이 죽음의 대가를 청구해야 하는 것일까. 만약 대다수의 사회구성원들이 그것은 정당한 요구라다고 얘기한다면, 그것은 곧, 그 사회의 구성원들 역시 누군가의 죽음을 또 다른 죽음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야생의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떤 이의 미친 칼부림으로 사람이 죽었다면 비극은 그것으로 족하다. 굳이 또 한 편의 비극을 만들 이유는 없지 않은가. 살인자를 죽인다고 죽은 자를 되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강력 범죄 발생의 원인을 찾고 치안과 교정을 강화하여 그러한 비극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제 우리 사회도 분노와 복수심을 거두고 사형제 폐지를 진지하게 논의해볼 때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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