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재래시장, 싸고 신선하고 ‘덤’도 있어요

등록 2006-09-25 19:49수정 2006-09-26 15:06

20년차 주부 김근순씨가 지난 23일 오후 “조금 불편하지만 운동도 되고 사람살이도 느낄 수 있다”며 대형마트 대신 재래시장인 서울 용산구 원효로2동 용문시장을 찾아 추석상에 올릴 고사리 등을 사고 있다. 이정아 기자 <A href=”mailto:leej@hani.co.kr”>leej@hani.co.kr</A>
20년차 주부 김근순씨가 지난 23일 오후 “조금 불편하지만 운동도 되고 사람살이도 느낄 수 있다”며 대형마트 대신 재래시장인 서울 용산구 원효로2동 용문시장을 찾아 추석상에 올릴 고사리 등을 사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꽈리고추·애호박·삼겹살…장바구니 세개 채워도
7만원도 채 안돼 마트가면 10만원 넘을텐데…
이웃들 소식도 전해듣고
조금 불편해도 시장가는게 ‘현명한 선택’ 아니겠어요?
[미래를 여는 실천 대안생활백서]
⑥ 주부 김근순씨가 재래시장 가는 이유

지난 23일 오후, 20년차 주부 김근순(46·서울 효창동)씨가 이웃 친구들과 약속한 ‘삼겹살 파티’를 준비하러 집을 나선다. 인근엔 대형마트가 두곳이나 있지만, 김씨가 향한 곳은 걸어서 20분 거리인 용문시장.

멸치와 함께 볶을 꽈리고추(2천원)와 전을 부칠 애호박 하나(1천원)를 사고 골목을 돌아서니 빨간 고구마가 1㎏에 3천원이다. 돈을 건네받은 가게 주인은 “맛탕 해 먹으면 달고 맛있다”며 웃음을 되돌려준다. 허리가 거의 직각으로 굽은 79살 할머니의 야채가게에선 깐 쪽파 한 줌을 1천원에 산다. 세 식구가 먹기엔 너무 많은 양을 한묶음으로 파는 마트에선 살 수 없는 ‘한 줌’이다. 오징어볶음을 좋아하는 남편과 아들 생각에 생선가게에서 오징어 4마리를 4천원에 산다. 일본식 주점을 한다는 한 아주머니가 생선을 고르다 말고 “이 집 생선은 웬만한 도매시장보다 싱싱하고 값도 싸다”고 거든다.

사실 김씨가 재래시장을 찾은 지는 1년밖에 안 된다. 결혼한 뒤 지난해까지 동네에서 18평짜리 슈퍼마켓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수입이 월세 65만원도 벅찰 지경에 이르렀고, 건강마저 나빠져 가게 문을 닫았다. “그 뒤로 멋모르고 마트를 이용했다”는 김씨는 “갈 때마다 자동차를 타고 가서 10만원어치도 넘게 사오는데, 기름값은 기름값대로 들고, 필요없는 것을 샀다가 못 먹고 버리는 것도 많고, 쓰레기 늘어나고, 오가는 동안 매연 만드니 환경오염까지 시키는 일을 이젠 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삼겹살 파티의 주인공 흑돼지 삼겹살 닷근은 10년 넘게 단골인 정육점에서 4만2200원에 산다. 남편과 함께 정육점을 운영하는 박선옥(37)씨가 “언니, 뭐 하시는데 이렇게 많이 사가?”라고 인사를 건넨다. 파채 세 봉지를 덤으로 넣어주던 박씨는 “마트가 들어서면서 수입이 3분의 1가량 줄었다”면서도 “한식조리사 자격증이 있는 남편의 불고기 손맛을 좋아하는 손님들이 적지 않다”고 자랑한다.

김씨는 이어 야채가게에서 700원짜리 파 한단을 고른다. 20년 단골이라는 한 할머니는 “시장이 조금 멀긴 해도 사람 사는 맛이 나고 누구네 집 아들·딸이 결혼한다는 소식도 전해듣는 사랑방 같은 곳”이라며 “한강로3가 집에서 버스로 30분이 걸리는 길을 마다지 않는다”고 한다.

이 할머니처럼, 대형마트가 ‘사람 사는 맛’을 앗아가고 있다는 생각은 미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월마트 반대운동은 14년째 이어지며 300여곳에서 새로 할인점이 들어서는 걸 막아냈다. 이 운동을 이끄는 앨 노먼은 “대형마트는 마을 고유의 지역색을 없애고,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노조 결성까지 막고 있다”고 비판한다. 우리나라에도 ‘안티이마트운동본부’가 강원 태백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고, 지역 시민단체들이 할인마트 반대운동이나 재래시장 이용 캠페인 등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은 별다른 성과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소비로 삶의 철학을 드러내는 길은 그만큼 멀어 보인다.


이날 김씨가 집에서 가져온 장바구니 세 개를 채운 먹거리는 모두 6만8900원어치. 삼겹살 값을 빼면, 추석 때 쓰려고 미리 산 말린 고사리(5000원)와 황태포(4000원) 값을 합쳐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 장을 볼 때 쓰는 돈과 비슷하다. 김씨는 “조금 불편해도, 이웃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고, 20분 거리니 운동도 되고, 경제적으로도 환경 보호에도 도움이 되니 시장이 ‘현명한 선택’ 아니겠냐”며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어느새 다가온 추석. 김씨는 다음주께 나머지 제수용품을 사러 다시 용문시장을 찾을 것이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재래시장 되살리려면 대형마트 규제 먼저해야

외국, 공청회·정부허가 필요 한국은 등록하면 개설 가능

중소기업청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05년 기준으로 전국의 재래시장은 1660곳, 이곳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은 39만명이다. 2004년에 비해 판매액은 8.7%가 줄어든 32조7천억원으로 추산된다. 반면 대형마트의 지난해 점포 수는 307곳, 매출액은 23조5921억원이다. 이들은 해마다 10~20%씩 고속 성장을 하고 있다.

정부는 2004년 ‘재래시장 육성을 위한 특별법’을 마련하고, 지난해 시장지원센터를 여는 등 2002년부터 재래시장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 큰 효과는 못 보고 있다. 지난 5월 중소기업청은 앞으로 3년 동안 4678억원을 들여 재래시장 시설 개선과 경영 현대화를 뼈대로 하는 ‘재래시장 활성화 종합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쿠폰제 실시, 상인대학 설치, 아케이드·주차장 설치 등이 이 계획에 따라 추진된다.

하지만 재래시장이 되살아나려면 무엇보다 직접적인 대형마트 규제 장치들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에서 대형마트를 개설하려면 3천㎡ 이하는 사업자 등록, 그 이상은 관할 구청에 등록만 하면 된다. 하지만 프랑스는 1973년 제정된 루아예법에 따라 점포 면적 3천㎡, 매장 면적 1500㎡ 이상을 증설할 때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프랑스의 까르푸가 다른 다국적 대형마트들보다 훨씬 이른 1969년부터 외국으로 진출한 것은 이 법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일본에서도 1천㎡ 이상 규모의 점포를 낼 때는 신설 계획을 공표하고 공청회를 열어야 한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지난 6월 대형 할인점 건설 전에 주민 공청회 등을 거치도록 하고 인구당 점포 수·면적을 제한하는 ‘지역유통산업 균형발전특별법’을 발의했다. 열린우리당 이상민 의원 역시 24시간 영업 제한과 지방자치단체장의 개설허가 등을 내용으로 한 ‘대규모 점포 영업조정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해 둔 상태다. 조혜정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단독] 윤석열, 검찰 조사 출석거부 사유 “변호사 선임 안 끝나” 1.

[단독] 윤석열, 검찰 조사 출석거부 사유 “변호사 선임 안 끝나”

‘윤석열 내란수괴’ 증거 뚜렷…계속 출석 불응 땐 체포영장 전망 2.

‘윤석열 내란수괴’ 증거 뚜렷…계속 출석 불응 땐 체포영장 전망

‘윤석열 계엄이 통치행위인가’ 헌재 결론, 내년 2월 내 나올 듯 3.

‘윤석열 계엄이 통치행위인가’ 헌재 결론, 내년 2월 내 나올 듯

헌재 ‘9인 완전체’ 되면 진보4-중도보수3-보수2 재편 4.

헌재 ‘9인 완전체’ 되면 진보4-중도보수3-보수2 재편

김용현, 찾다찾다 전광훈 변호인 ‘SOS’…내란 변론 꺼리는 로펌들 5.

김용현, 찾다찾다 전광훈 변호인 ‘SOS’…내란 변론 꺼리는 로펌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