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문 발표 왜?
잇단 비리에 충격…개혁추진 가속도 낼듯
이용훈 대법원장이 16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것은 취임 뒤 일관되게 추진했던 사법개혁이 자칫 좌초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대법원장은 지난해 9월 취임식 때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사법부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인권보장의 최후 보루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한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며 사법부 수장으로서는 처음으로 법원의 과거사에 대해 사과했다. 그는 권위주의 시절인 1972~87년 사이에 이뤄진 시국·공안사건 판결자료를 수집해 분석하도록 지시하는 등 과거사 청산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 대법원장은 또 정해진 서열에 따라 대법관을 제청하던 기존 관행을 깨고 박시환 전 변호사를 대법관으로 임명 제청하는 등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를 시도했다. 이런 조처들은 모두 일선 고위 법관들의 강한 반발을 샀으나 이 대법원장은 뚝심있게 밀어붙였다.
이 대법원장은 또 지난 2월 박용오, 박용성 두산그룹 총수 일가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을 공개적으로 질타하는 등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엄단을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직 고법 부장판사가 법조브로커한테서 사건 청탁과 함께 거액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는 최악의 법조비리가 터진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이 대법원장이 받은 충격은 무척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 대법원장은 법조브로커 사건에 앞서 터진 군산지원 사건에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군산지원의 젊은 판사들이 피고인의 동생한테서 골프 접대를 받고, 일부 판사는 그가 소유한 아파트에 싼 값으로 전세를 사는 등의 행동은 법관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 대법원장은 이 사건들을 면밀히 검토한 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 안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 대법원장의 사법개혁 조처가 더욱 강하게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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