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들
상계동 ‘야생화 할아버지’ 지승일씨
상계동 ‘야생화 할아버지’ 지승일씨
솎아내고 물주고 화단가꾸기 7년
큰까치수염 등 수십종 자태
어린이·주민 자연공부 ‘뿌듯’서울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입구 미주 동방벽운아파트 111동은 야생화 꽃밭에 둘러싸여 있다. 화초를사열해놓은 듯 정돈된 일반 아파트 조경과 사뭇 다르다. 길이가 70m 가량 되는 아파트 화단에는 큰까치 수염, 산꿩의 다리, 자주달개비 등과 같은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야생화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고 있다. 모든 꽃들 앞에는 제각각 이름이 적힌 작은 팻말이 꽂혀 있다. 수십여 종의 야생화들은 철을 달리하며 삭막한 아파트 단지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고 있었다. 산도 들도 아닌 아파트 화단을 야생화 화단으로 가꾼 건 바로 이 아파트 주민 지승일(65)씨다. 지씨는 1999년 10월에 이 아파트로 이사온 뒤부터 화단을 가꾸기 시작했다. 당시 아파트 화단에는 나무 몇 그루와 듬성듬성한 잔디뿐이었다. 건물과 산에 둘러싸여 있어 햇빛을 보지 못한 잔디는 자라지 못하고 죽어서 보기가 흉했다. 그는 이 화단에 적응력이 강한 야생화를 옮겨 심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파트 주민들 몰래 숨어서 했다. “자기 집 앞 화단에 다른 사람이 와서 무언가를 심어 놓으면 이상하게 보거나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지요.” 그는 매일 아침 조용조용 잡초를 솎아내고 수락산에서 직접 길어온 약수로 물을 줬다. 생선뼈, 야채찌꺼기로 만든 퇴비를 주며 야생화 가꾸기에 공을 들였다. 이렇게 야생화 화단을 가꾼 지 어느새 7년. 주민들은 이제 그를 ‘야생화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얼마 전 한 이웃이 “아저씨가 계셔서 꽃들이 환하게 웃으며 반가워하는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며 뿌듯해했다. 그는 “이웃 주민들에게 야생화에 대해 설명을 해주다 보니까 자연히 얘기할 기회도 생겨 더욱 친해지는 것 같다”며 환히 웃었다. 같은 동에 사는 양승백(9)군은 야생화가 맺어준 지씨의 둘도 없는 친구다. 식물학 박사가 꿈이라는 양군은 야생화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거나 새로 알게 된 것이 생기면 어김없이 야생화 할아버지를 찾는다. “꽃 속으로 개미가 풍덩 빠지는 게 보이지? 벌과 개미가 좋아하는 향기를 가졌다고 해서 이 꽃 이름은 벌개미취란다.” 지씨가 설명하자 양군은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벌개미취를 골똘히 쳐다본다. 지씨의 야생화 사랑은 산을 통해서였다. 등산광인 그는 34년 동안 교사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주말과 방학이면 어김없이 산을 찾았다. 산을 오르내리며 곳곳에 숨어 있던 야생화가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수십 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햇빛과 물을 주었을 때 꽃이 활짝 피어나는 과정이 가르치는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과 똑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대상이 스스로 발전한다는 점에서 교육과 야생화 기르기는 서로 통하지요. 야생화를 기르며 저 스스로도 많이 배우고 있는 셈입니다.” 지씨의 야생화 사랑은 은은한 향기를 풍겼다. 글·사진 이정애 기자, 이용주 인턴기자(서울대 정치 4) hongbyul@hani.co.kr
큰까치수염 등 수십종 자태
어린이·주민 자연공부 ‘뿌듯’서울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입구 미주 동방벽운아파트 111동은 야생화 꽃밭에 둘러싸여 있다. 화초를사열해놓은 듯 정돈된 일반 아파트 조경과 사뭇 다르다. 길이가 70m 가량 되는 아파트 화단에는 큰까치 수염, 산꿩의 다리, 자주달개비 등과 같은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야생화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고 있다. 모든 꽃들 앞에는 제각각 이름이 적힌 작은 팻말이 꽂혀 있다. 수십여 종의 야생화들은 철을 달리하며 삭막한 아파트 단지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고 있었다. 산도 들도 아닌 아파트 화단을 야생화 화단으로 가꾼 건 바로 이 아파트 주민 지승일(65)씨다. 지씨는 1999년 10월에 이 아파트로 이사온 뒤부터 화단을 가꾸기 시작했다. 당시 아파트 화단에는 나무 몇 그루와 듬성듬성한 잔디뿐이었다. 건물과 산에 둘러싸여 있어 햇빛을 보지 못한 잔디는 자라지 못하고 죽어서 보기가 흉했다. 그는 이 화단에 적응력이 강한 야생화를 옮겨 심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파트 주민들 몰래 숨어서 했다. “자기 집 앞 화단에 다른 사람이 와서 무언가를 심어 놓으면 이상하게 보거나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지요.” 그는 매일 아침 조용조용 잡초를 솎아내고 수락산에서 직접 길어온 약수로 물을 줬다. 생선뼈, 야채찌꺼기로 만든 퇴비를 주며 야생화 가꾸기에 공을 들였다. 이렇게 야생화 화단을 가꾼 지 어느새 7년. 주민들은 이제 그를 ‘야생화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얼마 전 한 이웃이 “아저씨가 계셔서 꽃들이 환하게 웃으며 반가워하는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며 뿌듯해했다. 그는 “이웃 주민들에게 야생화에 대해 설명을 해주다 보니까 자연히 얘기할 기회도 생겨 더욱 친해지는 것 같다”며 환히 웃었다. 같은 동에 사는 양승백(9)군은 야생화가 맺어준 지씨의 둘도 없는 친구다. 식물학 박사가 꿈이라는 양군은 야생화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거나 새로 알게 된 것이 생기면 어김없이 야생화 할아버지를 찾는다. “꽃 속으로 개미가 풍덩 빠지는 게 보이지? 벌과 개미가 좋아하는 향기를 가졌다고 해서 이 꽃 이름은 벌개미취란다.” 지씨가 설명하자 양군은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벌개미취를 골똘히 쳐다본다. 지씨의 야생화 사랑은 산을 통해서였다. 등산광인 그는 34년 동안 교사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주말과 방학이면 어김없이 산을 찾았다. 산을 오르내리며 곳곳에 숨어 있던 야생화가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수십 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햇빛과 물을 주었을 때 꽃이 활짝 피어나는 과정이 가르치는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과 똑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대상이 스스로 발전한다는 점에서 교육과 야생화 기르기는 서로 통하지요. 야생화를 기르며 저 스스로도 많이 배우고 있는 셈입니다.” 지씨의 야생화 사랑은 은은한 향기를 풍겼다. 글·사진 이정애 기자, 이용주 인턴기자(서울대 정치 4) hongbyu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