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치금 증명서 가짜
지난 5월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귀가 번쩍 트이는 제보가 접수됐다. 내용은 국외에 있는 대우 비자금 50조원을 국내로 들여오겠다며 큰소리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당시는 횡령 및 재산 국외 밀반출 등의 혐의로 재판중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게 23조원 가량의 추징금까지 구형된 때. 더욱이 관련자 중에는 김 전 회장의 실제 사촌동생인 김아무개(59)씨도 끼어 있었다. 경찰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이 김씨 등 일당의 일부를 검거해보니 싱가폴 시티은행에 500억달러(약 50조원), 스위스 연방은행에 2억5천만달러(2500억원), 영국 바클레이즈은행에 5천만달러(500억원) 등이 들어있음을 증명하는 예치금 증명서까지 갖고 있었다. 특수수사과 쪽은 “이 돈이 진짜로 확인돼 50조원의 국부가 돌아온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냐”며 즉각 사실 확인에 나섰다. 이 돈이 실제로 존재하면 김씨 등이 받고 있는 사기 혐의도 풀릴 수 있었다.
그러나 해당 은행과 인터폴 등에서 날아온 답변은 허탈했다. 시티은행 쪽은 아예 그런 계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인했고 나머지도 모두 가짜로 판명됐다. 경찰청은 결국 14일 김씨와 함께 “ㅎ건설사를 공동으로 인수하는 데 도움을 주면 경영권과 함께 100억원을 주겠다”며 ㅅ산업개발에 접근해 3천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사기 및 사문서 위조)로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 출신 김아무개(44)씨 등 4명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비자금 가운데 1차분 1500억원을 국내로 들여오려면 국내 법인이 필요하다며 ㅅ사에 접근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경찰에서 끝까지 “실제로 해외에 비자금이 있는 줄 알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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