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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성전환자 호적정정 허가 의미와 파장

등록 2006-06-22 16:47

`사회적 성' 법적 효력 부여…초기 혼란 불가피

대법원이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을 거부하고 남성으로 성 전환 수술을 한 여성의 호적정정 신청을 허가한 것은 사회적 성(젠더ㆍGender)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법률적 판단 기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성전환자의 호적상 성별 변경 신청은 그동안 대법원 판례가 없어 1, 2심에서 재판장에 따라 수용되거나 기각됐고, 개별 사건의 결론과 판단 근거에 따라 논란이 계속됐으나 앞으론 이런 문제점이 사라지게 됐다.

◇ 성전환자도 헌법상 행복추구권 갖고 있다 =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결정은 질서유지나 공공복리에 어긋나지 않는 한 성전환자도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향유하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헌법 정신에 따른 것이다.

성 역할이 변하고 있고 이른바 `사회적 성'을 의미하는 `젠더'의 개념이 이미 자리잡은 현실을 사법부가 인정하고, 성적 소수자들에게 평범한 이성애자들과 공존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해준 셈이다.

재판부는 "출생시에는 그 사람의 정신적, 사회적 성을 인지할 수 없으므로 통념상 생물학적 성에 따라 법률적 성이 평가되지만 이후 한결같이 생물학적 성에 불일치감과 위화감을 갖고 반대 성에 귀속감을 느끼면서 신체적, 사회적 영역에서 전환된 성 역할을 수행한다면 전환된 성이 성전환자의 법률적 성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며 출생 후 스스로 판단해 갖게 되는 사회적 성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어 국민의 신분 관계를 빠짐없이 기재하는 호적의 기재 사항 중 진정한 신분 관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게 있다면 이를 반영해야 한다며 성별도 정정할 수 있는 요소로 판단했다.

현행 호적법은 `호적의 기재가 법률상 허용될 수 없는 것 또는 그 기재에 착오 나 빠진 게 있다고 인정한 때에는 이해관계인은 그 호적이 있는 곳을 관할하는 가정 법원의 허가를 얻어 호적 정정을 신청할 수 있다'고 돼있다.


유럽에서는 스웨덴(1972년)이 일찌감치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을 입법으로 허용했고 다른 국가들은 판례로 이를 인정했으며, 영국도 가장 최근인 2004년 입법을 통해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일본 역시 2003년 7월 `성 동일성 장애자의 성별의 취급의 특례에 관한 법률'을 제정, 이듬해부터 시행했다.

법적 안정성을 지향하는 보수적 성향의 대법원이 영국, 일본에 이어 성전환자의 법적 성(性)을 고칠 수 있도록 허용함에 따라 우리나라도 유럽의 여러 국가와 일본에 이어 성전환자의 호적정정을 허가하는 국가가 됐다.

재판부는 "성적 소수자인 성전환자가 주변의 멸시와 신분상의 불이익에서 벗어나 온전한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여져 정상적으로 직업을 갖고 사회활동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의미를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나아가 기존의 일부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성전환자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소수자에게 우리 사회에서 이해와 관용이 싹트는 계기로서 기능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 성 전환전 법적 효력 유지…당분간 혼란 불가피 = 성전환자가 호적에 기재된 성을 법원의 허가를 받아 바꿨더라도 이전 성(性)으로서 갖고 있던 권리와 의무는 그대로 유지된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은 남성이 성을 전환해 여성으로 호적을 고치더라도 결혼한 여성이나 자식들과 법률적 관계는 여전히 `남편'이고 `아버지'인 것이다.

재판부는 "호적 정정 허가는 성전환에 따라 법률적으로 새로이 평가받게 된 현재의 진정한 성별을 확인하는 취지의 결정이므로 기존의 신분 관계, 권리의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외국으로 떠났던 남편이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성이 돼서 2년만에 돌아오는 장면이 담겨있던 영화『내 어머니의 모든 것』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상황에 대법원은 기존의 신분 관계는 그대로 유지된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성전환자가 호적정정을 신청하더라도 모두 허가할 수는 없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타고난 신체적 성에 혐오감을 느끼고 반대의 성에 귀속감이 있으면서 정신과적으로 성전환증 진단을 받아 치료를 한 뒤에도 계속 반대의 성에 맞춰 신체적,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때만 성전환자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법원이 이번에 성전환자의 호적정정 신청을 받아들였더라도 의학적으로 명백히 성전환증이 인정되지 않는 사람이 성전환 수술을 받아 반대의 성을 지니게 됐다면 이는 개인의 `실수'이지 호적 변경 허가 대상은 아니다.

재판부가 비록 엄격히 선을 긋긴 했지만 성전환증 진단이 어려운 데다 성전환을 통해 반대 성을 갖게 된 이후 법률적 의무, 권리 관계에서 어떤 변수가 생길지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라 당분간 혼란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호적상 성을 바뀐 성전환자와 결혼했을 때 성 전환전 가족이 있다면 상속, 재산 분할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만 18세 이전 성 전환을 했다면 국방의 의무는 어떻게 할 것인지도 현재로서는 논란이 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올 1월 9일 확정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에서 성전환 수술에도 국민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을 제시한 적도 있어, 대법원의 이번 결정 취지에 비춰 후속 입법 여부도 주목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미성년자가 성전환증 진단을 받고 호적까지 바꿀 가능성을 극히 낮지만 병역법 문제는 면제 요건을 두는 등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광철 기자 minor@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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