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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아시아나 ‘비상착륙 성공’ 강조 원인 은폐 의혹

등록 2006-06-21 07:02수정 2006-06-21 07:23

9일 경기 안양 상공에서 벼락에 맞아 앞부분이 통째로 떨어져 나간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모습.(사진 = 연합뉴스)
9일 경기 안양 상공에서 벼락에 맞아 앞부분이 통째로 떨어져 나간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모습.(사진 = 연합뉴스)
비구름속 항공기 사고 진실은?
회사쪽 사고 시각·장소 등 발표 오락가락
지난 9일 아시아나 8942편이 우박을 맞은 뒤 비상 착륙한 사고는 나쁜 기상상황에 조종사의 부적절한 회피비행까지 겹쳐 일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8942편은 강한 ‘적란운(소낙비구름)대’ 속에서 우박을 맞을 당시 평소보다 60노트(시속 111㎞) 이상 빠른 320노트(시속 593㎞)로 비행한 것으로 확인돼, 속도를 높여 비행한 이유에도 의문이 쏠리고 있다.

또 아시아나항공은 그동안 “갑작스런 우박에 기체가 파손됐다”며 사고 원인과 경위를 공개하지 않은 채 비상착륙에 성공한 사실과 조종사 표창 계획만을 대대적으로 홍보해 사고 원인을 덮고 넘어가려 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비상 상황 속에서 과속?=지난 17일 <한겨레> 취재진에 의해 사고 당시 8942편의 최고 속도가 320노트에 이른 사실이 드러나자, 아시아나항공은 “사고와 함께 전자제어장치가 고장나는 바람에 사고 직후 속도가 높아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아시아나 쪽은 20일 이런 해명을 번복하며 “320노트로 운항하다 사고가 났다”고 뒤늦게 시인했다. 대신 아시아나 쪽은 “통상 착륙할 때 300노트 정도의 속도를 유지한다”며 “필요한 경우 관제소에 요구해 빠른 속도로 운항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운항지침서인 ‘젭슨 매뉴얼’에는 통상 2만1천피트 이하에서는 250노트 이하의 속도로 운항하도록 돼 있다. 또 이와는 별도로 사고가 김포 관제구역 50마일(90㎞) 안에 들어가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250노트 이하로 운항해야 한다. 제주~김포 노선을 운항해본 아시아나의 한 조종사는 “당시 김포공항이 가장 바쁜 시간대였고 소낙비구름(적란운)이 낀 상황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320노트는 납득할 수 없는 속도”라고 말했다. 또다른 조종사는 “320노트로 운항하다가 소낙비구름을 만났다면 우박에 맞지 않았더라도 기체에 엄청난 무리가 생긴다”며 ‘과속에 따른 사고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사고 기종으로는 3만피트 상공에서도 300노트 정도로 최고 속도를 낸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의 한 조종사는 “조종사가 사고 지점에서 이렇게 높은 속도를 낸 것은 적란운대의 비상상황을 서둘러 벗어나려 했던 게 아닌가 추정된다”며 “비상상황에선 오히려 속도를 250노트 이하로 내려서 운행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소낙비구름 속으로 운항?=아시아나항공과 사고 조종사는 사고 당시 기상 레이더를 통해 소낙비구름대를 발견한 뒤 오른쪽으로 충분히 회피비행했는데도 갑자가 우박이 쏟아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겨레> 취재진이 아시아나항공에서 제공한 해당 노선의 정규 항로와 사고 항공기의 항적도, 기상청에서 입수한 오후 5시30분·40분·50분과 오후 6시의 사고 상공(1만피트)의 구름 사진 등을 종합해본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이 결과를 보면, 사고 항공기는 애초의 오산 부근이 아닌 일죽 부근에서 소낙비구름을 만난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조종사가 처음부터 소낙비구름 속으로 운항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뜻한다.


같은 날 불과 5분 뒤에 사고 항공기와 같은 항로를 운항하다가 소낙비구름을 피해 왼쪽으로 회피비행했던 조종사는 “정규 항로상에 소낙비구름이 너무 크게 나타나 북동쪽으로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며 “이 때문에 관제소의 승인을 얻어 왼쪽(북서쪽)으로 회피비행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항공기뿐 아니라, 사고 전후로 제주~김포 간을 운항한 항공기 4대 모두가 소낙비구름을 피해 왼쪽으로 회피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표 참조)


이에 대해 아시아나항공은 “적란운대와 10~20마일 떨어져 회피비행하는 것은 항로운항 중일 때이며 사고가 발생한 지점은 활주로에 접근하는 단계여서 항로를 크게 변경할 수 없었다”며 “더구나 주변에 비행금지구역과 다른 비행기들이 운항 중이어서 충분히 회피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사고 항공기의 기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분명히 소낙비구름을 회피했는데 갑자기 비구름이 나타나 1분도 안 되는 사이에 우박이 쏟아졌다”고 밝혔으나, 이는 애초 아시아나항공이 내놓은 홍보자료의 내용과는 상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1일 아시아나항공이 언론사에 보낸 보도자료를 보면 “(승무원이) 기장으로부터 ‘심한 요동’ 사인을 받고 착석 안내방송 실시…잠시 후 심한 기체 동요와 함께 항공기 외부에서 비와 우박”이라고 돼 있다. 이는 예상치 못한 우박이 갑자기 쏟아진 것이 아니며, 기장이 사전에 나쁜 기상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재명 임인택 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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