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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월드컵, 소줏집과 맥줏집의 엇갈린 승패

등록 2006-06-15 18:06수정 2006-06-15 22:46

13일 한국과 토고전의 예선전이 열린 날 서울 구로동의 퓨전선술집 가쓰오랑에서는 수십명의 ‘붉은 악마’가 모여 맥주 등을 마시며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사진 : 가쓰오랑 제공
13일 한국과 토고전의 예선전이 열린 날 서울 구로동의 퓨전선술집 가쓰오랑에서는 수십명의 ‘붉은 악마’가 모여 맥주 등을 마시며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사진 : 가쓰오랑 제공
한국-토고전 열린 13일 치킨과 맥주 많이 팔렸다
“이번 월드컵은 어디서 구경하는 게 좋을까. 광화문이나 상암월드컵 경기장도 좋은데, 이 나이에 핫팬츠, 웃통 벗고 버스 위에 올라가기는 좀 그렇고…. 품위있으면서 즐겁게 축구를 즐기려면?”

온 국민의 축제. 독일월드컵 개막으로 대박을 누리는 곳이 어디일까. 단연 치킨집과 맥주집이다. 초여름 더위에 시달리다가 시원한 맥주가 생각나는 저녁, 온 나라는 ‘월드컵 즐기기 모드’로 바뀐다. 한낮의 더위를 식히고, 휴식을 즐기기에, 또 응원으로 마른 목을 축이기에 맥주는 좋은 동반자다. 적당한 취기 속에, 사람들과 어울려 월드컵을 봐야 즐겁다는 사람도 많다.

월드컵으로 승패만 엇갈린 게 아니다. 취급 주류와 안주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음식점들의 희비도 엇갈렸다. 지난 13일 밤 10시 한국-토고전 때 치킨집은 특수를 누렸는가 하면, 고기집과 식당의 매출표는 울상을 지었다.

◇ 13일 밤 호프집 잡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힘들었다’

한국과 토고전이 열리는 13일 밤 이아무개(33·서울시 구로동)씨는 퇴근 후 부인과 딸, 옆집에 사는 김아무개씨 가족과 함께 집을 나섰다. “동네 호프집에서 맥주 마시며 월드컵 경기를 보자”고 한 달 전부터 약속한 터였다. 퇴근 길에 보니 집 근처 곱창집과 삼겹살집, 횟집 등은 한산했다. 응원장소를 잡는 일이 쉬울 것 같았다. 이씨가 처음 생각한 곳은 대림역 인근에 줄지어 선 마늘치킨점이었다. 업소는 6곳이었지만, 매장 앞에 넓은 공간이 마련돼 있고 월드컵을 맞아 일찌감치 업소마다 50인치 이상의 대형 텔레비전과 간이테이블을 설치해놓았다. 시원한 맥주와 치킨은 물론, 게다가 적잖은 인파와 함께 응원할 생각을 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딱 그때까지였다. 웃음과 기대는 이내 사라졌다. 업소들이 들어선 입구는 이미 200여명이 몰려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고, 모든 업소의 테이블은 만원이었다. 어떤 업소는 임시방편으로 실내에 있는 테이블과 의자를 내어 발길을 돌리는 손님들을 잡았다. 일행은 발을 돌려 갈 만한 곳을 찾아야 했다. 웬만한 호프집은 이미 손님이 들어차 있었다.


반면, 삼겹살집이나 횟집, 순대국집 등은 평소보다 한산했다. 이들 역시 매장 밖에 대형 텔레비전과 간이테이블을 설치, 손님맞이에 나섰지만 찾는 발길은 오히려 준 느낌이었다.

“그런데 월드컵 볼 때는 왜 삼겹살보다 치킨을 찾을까? 소주 대신 맥주를 찾는 이유는 뭘까? 더워서, 맥주가 부담이 없어서, 삼겹살 굽고 축구를 보기엔 귀찮잖서?…” 이씨는 궁금해졌다.

13일 한국과 토고전의 예선전이 열린 날 서울 구로동의 퓨전선술집 가쓰오랑에서는 수십명의 ‘붉은 악마’가 모여 맥주 등을 마시며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사진 : 가쓰오랑 제공
13일 한국과 토고전의 예선전이 열린 날 서울 구로동의 퓨전선술집 가쓰오랑에서는 수십명의 ‘붉은 악마’가 모여 맥주 등을 마시며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사진 : 가쓰오랑 제공
◇ “시원하고, 부담없고, 무엇보다 응원하는 재미가 있으니까”

“축구를 볼 때는 맥주가 제격이죠. 골을 넣을 때, 공을 빼앗거나 빼앗겼을 때, 코너킥이나 프리킥이 주어졌을 때, 쏜살같이 공을 몰고 전진할 때마다 ‘건배’를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술 취하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서울 구로동 이아무개씨·34)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 노래나 구호도 외치고 파도도 타고… 응원하는 재미가 있잖아요. 고깃집 같은 곳은 젊은 사람보다 어르신들이 선호하다 보니 응원할 때는 더욱 꺼려지게 돼요. 또 늦은 밤 삼겹살을 구워먹는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고요.”(서울 개봉동 최아무개군·21)

치킨집이나 호프집을 찾는 이유는 다양했다. 무엇보다 월드컵 기간이 무더위가 기승인 ‘여름’이라는 계절적 요인을 빼놓을 수 없다. 보편적으로 겨울엔 삼겹살과 소주가, 여름엔 치킨과 맥주가 잘 팔린다. 소나무한의원 원장 이기홍 한의사는 “한의학적으로 맥주의 원료인 보리는 가을에 씨를 뿌려 겨울을 나는 식품으로 차가운 땅의 기운을 받고 자라기 때문에 차가운 음식으로 본다”며 “무더운 여름에 맥주를 즐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소주는 증류한 술이여서 열이 많이 나 겨울에 마시기에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이유는 더 있다. 시원하고, 간단한 안주만 놓고도 부담없이 마실 수 있으며, 취할 우려가 적다는 점이다. 토고전 때 맥주를 마셨다는 이수미(33)씨는 “술을 평소에 잘 못하는데, 응원하면서 맥주를 마시면 취기도 쉽게 가시고 무엇보다 갈증을 풀 수 있다”며 “무엇보다 경기를 보며 순간순간마다 건배를 외칠 수 있어 좋다”고 설명했다.

ㄱ퓨전선술집 염동춘 과장은 “월드컵이 더운 기간에 열리고, 경기에 집중하거나 대화·응원을 할 때, 이겼을 때 다같이 어울려 마실 수 있는 맥주를 많이 찾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반면, 소주파 장동욱(34·서울시 중구 신당동)씨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우리나라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시원한 구석이 없고, 시름뿐인데 한국과 토고전이 열릴 때는 태극전사의 선전과 함께 근심걱정이 시원하게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맥주를 마셨다”며 “시원한 맥주 한 잔처럼 태극전사가 16강에 진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 “월드컵 한국-토고전 열린 13일 밤 치킨·호프집 대박”

13일 구로동의 한 맥주집 B호프는 월드컵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이날 매장 밖에 52인치 텔레비전과 25개의 간이테이블을 마련한 이 업소는 경기 직전 사람이 몰리면서 매장 안에 있던 테이블과 의자를 밖으로 빼 손님을 맞아야 했다. 한산한 주변의 순대국집에서 간이테이블을 조달하기도 했다. 이 곳에는 100여명이 몰려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이 호프집 장영애 사장은 “월드컵 기간에 매출이 조금 늘었는데, 토고전 때는 특히 평상시보다 매출이 두배 이상 올랐다”며 싱글벙글해 했다.

퓨전주점도 상황은 마찬가지. 매장 앞에 대형 텔레비전과 간이 테이블 마련한 이 곳은 한국전이 열리는 시간 동안 술을 무료로 제공했다. 추첨을 통해 시계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펼쳐서인지 지난 13일 평상시보다 2배가 넘는 매출을 올렸다. 무료술 제공을 감안해도 30%가 늘어난 것이다. 염동춘 과장은 “고기만 팔았다면 매출이 오히려 감소했을 것이지만 맥주를 중심으로 튀김류 판매가 호조를 보였다”며 “평상시 소주 70병, 맥주 4만cc 정도가 나갔는데, 이날은 소주 100여병, 맥주 12만cc가 나가 맥주 판매만 3배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이 술집은 한국전 무료술 제공 이벤트 외에 16강·8강·4강 진출시 지갑, 디지털카메라, 냉장고 등의 경품을 내걸을 경품으로 내걸어 판매 호조 분위기를 이어갈 계획이다.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의 한 치킨집 김정우 사장도 “닭 공급하는 사람에게 치킨집마다 닭이 동났다고 들었다”며 “닭이 평소보다 30~40% 많이 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월드컵 응원 열기보다 계절적 이유 때문에 맥주를 많이 찾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서울시 구로동 전통음식점인 대원정은 한국-토고전이 열린 13일 매장 앞에 대형 프로젝트를 설치해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해 효과를 톡톡히 봤다. 김미영 기자
서울시 구로동 전통음식점인 대원정은 한국-토고전이 열린 13일 매장 앞에 대형 프로젝트를 설치해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해 효과를 톡톡히 봤다. 김미영 기자
◇ 고깃집, 횟집, 곱창·족발집 등은 ‘울상’

고기나 회, 곱창이나 족발, 감자탕 집 등 전통적으로 소주와 함께 식사대용으로 즐겨 찾던 식당들은 월드컵 특수를 비켜갔다. 경기가 저녁식사 시간이 지난 10시에 열리는 데다 ‘폭음’보다는 ‘간단한 한잔’을 찾는 고객들의 성향 때문이었다.

족발과 순대국으로 이름난 공덕시장 입구의 상가들은 매일 저녁 인파로 가득하지만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동안은 평소와 달리 ‘빈 테이블’이었다. 한 빈대떡집 종업원은 “경기 시작 전 튀김 포장 판매가 조금 이뤄지고, 병맥주가 간간히 나갔지만, 매출의 2/3가 떨어졌다”며 “식사시간이 지났고, 대부분 가족이나 친구 단위로 광화문으로 나갔거나 호프집을 찾는 손님이 늘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 족발집 종업원도 “전반적으로 판매량이 줄었고, 경기시간에는 손님의 발길이 아예 뚝 끊어졌다”며 “족발이나 삼겹살, 빈대떡 등은 식사 차원에서 배불리 먹는 경향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평소 곱창 마니아들이 몰리는 대림역 인근 곱창구이집도 마찬가지였다. 종업원은 “이날 매출이 50%나 줄었다”며 “월드컵이 우리에겐 오히려 쥐약”이라고 말했다.

‘월드컵 특수’를 미리 준비한 일부 식당들은 꼭 업종을 탓하지 않았다. 구로동 한 삼겹살집 김태영 사장은 “대형 텔레비전의 구비 여부에 따라 명암이 엇갈렸던 것 같다”며 “이 때문인지 우리 업소는 매출 타격이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삼겹살은 구워 먹어야 하기 때문에 경기에 집중할 수 없고, 소주가 쉽게 취하는 술이어서 축구경기 때 많이 찾지 않는다”며 “그러나 업주들이 어떻게 월드컵 특수를 대비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달려있는 것 같다”고 조언했다.

◇ “13일 맥주와 치킨 판매량 평균 30~50% 가량 늘어나”

구로동의 S순대국집 주인도 “애초 월드컵 장사를 포기했지만, 뒤늦게 야외에 텔레비전을 설치하고 간이테이블을 놓았더니, 응원장소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찾아와 경기를 보고 갔다”며 “타격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인근의 D유황오리고기·사철탕 전문식당도 야외에 경기를 시청할 수 있는 대형 프로젝트를 설치한 결과 오히려 매출이 상승하는 효과를 봤다.

치킨집이나 맥주집이라도 해도 규모가 작거나 가게 바깥에 텔레비전과 간이테이블을 설치하지 않은 곳은 기대만큼 월드컵 특수를 누리지 못했다. 공덕동의 o치킨점은 “실내에 테이블이 4개뿐이어서 매출이 크게 늘지 않았다”며 “치킨 포장 손님이 많아 30% 가량 매출 상승이 있었지만, 맥주 소비는 다른 날과 차이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맥주와 치킨 판매량에서도 월드컵 ‘비공식 안주와 술’의 쏠림 현상은 확인된다. 하루 평균 30만~35만 상자(1상자 500mL 20병)꼴로 판매되던 하이트맥주는 이날 50만 상자가 팔려 주문을 맞추기 힘들 정도였다. 한국치킨외식산업협회에 따르면 13일 전국의 치킨 판매는 평소보다 1.5배 가량 많은 187만여 마리에 이른다.

월드컵 한국-토고 경기가 있던 날 식당마다 업종에 따라 매출 희비는 엇갈렸지만, 극적 역전승을 거둔 한국팀은 모두에게 ‘기쁨’이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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