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8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8일 오전 성공회대 안에 있는 성당에서 ‘고별수업’을 했다. 김소향
[현장] 신영복교수 퇴임 오늘 ‘마지막강의’서 주역 ‘석과불식’ 강조
이성적 삶과 인간적 사회로의 변혁을 꿈꿔온 숱한 젊은이들의 스승 신영복 선생이 65살 정년을 맞아 소속 대학교수로서의 ‘마지막 강의’를 마무리지었다.
통혁당 간첩단 사건으로 20년을 복역한 성공회대학교 신영복 교수(<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저자)가 8일 고별 강의를 끝으로 17년간의 교수생활을 마감했다. 20년 수감생활을 마치고 1988년 출소한 신 교수는 89년 3월 성공회대에서 첫 강의를 시작하며, 장기수에서 ‘대학교수’로서의 새 삶을 시작했다. 신 교수는 8월 정년퇴임 이후에도 명예·석좌 교수 형식으로 성공회대 교단에 남을 예정이다.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신영복 함께 읽기’ 강의는 애초 새천년관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수강 희망자가 늘면서 학교 성당으로 장소를 옮겨 공개강의 형태로 이뤄졌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이 강의에는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성공회대 교수들와 학생과 시민 등 300여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특히 고별강연에 참석한 노회찬 의원은 “신 교수님처럼 겉과 속, 말과 행동, 이론과 사상이 일치하는 ‘지행합일’을 실천하는 사람을 보지 못해 평소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은 뒤 깊은 감명을 받았고, 92년 직접 신 교수님을 찾아간 것을 계기로 인연을 맺고 있다”며 고별강연 참석 이유를 밝혔다.
희망의 언어 ‘석과불식(碩果不食)’ : 씨 과실은 먹히지 않는다
이날 강의는 <주역>의 64괘 가운데 가장 어려운 상황을 나타내는 박괘에 나오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을 주제로 삼았다. 박괘 효사에 나오는 석과는 앙상한 나뭇가지에 마지막으로 남은 과실을 뜻한다. 즉, 박괘는 세상이 온통 악으로 넘치고 단 한 개의 선만 남아 있어 그 한 개마저 악으로 전락할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상황을 말한다. 신 교수는 “씨 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며 ‘절망이 곧 희망의 기회’라고, 현재 한국 사회를 진단했다.
WTO, IMF, FTA라는 일련의 힘겨운 상황에서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있는 박괘 상황이지만, 희망을 키워내는 것이 우리의 당면과제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 우리의 상황은 얼마든지 희망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이런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내려면 자신과 사회를 되돌아볼 수 있는 ‘겨울’을 겪어야 하는데 지금이 바로 ‘겨울’, 박괘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는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상징되는 세계화의 물결로 인해 야기된 지금의 위기상황이 석과를 연상시킨다”며 “하지만 마지막 과실의 씨가 이듬해 봄에 새싹이 되어 땅을 밟고 일어서듯 진정한 희망 찾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거품이 걷히고 난 후의 우리 경제의 모습과 함께 우리의 삶을 돌이켜 봐야 한다”며 “엄청난 외세에 떠밀리고 불의의 폭력에 가위눌리며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주역>을 인용, “현재 우리는 잎사귀를 떼어 가지의 구조를 직시한 뒤 떨군 잎사귀와 나무의 뼈대를 직시해야 한다”며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겨울을 지나야 하므로, 이 위기를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희망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대학이 따뜻한 숲으로 거듭나야”
박괘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그는 ‘올바른 인재 키우기’와 ‘대학’의 체질 개선을 주문했다. “박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겨울을 지나 씨앗을 뿌리고 새로운 싹과 열매를 맺는 나무처럼 사람을 키워내야 한다”는 것인데, 그는 “씨 하나가 숲을 만들어내듯 사람들을 아름답게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설명했다. ‘석과불식’을 퇴임강연 주제로 삼은 것은 자본화된 대학사회와 보수 일변도의 국내 정치상황에 대한 신 교수의 우려를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신 교수는 물, 불, 쇠, 나무, 땅 등 5대 자원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을 기르는 것이며, 개인을 나무가 아닌 ‘숲’으로 키워야 하는데 현재 대학 및 한국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고 규정했다.
“나무는 짧고, 숲은 길다. 숲은 전체로서의 완성을 뜻하며, 나무(개인)의 결함까지도 품는다는 점에서 나무의 완성이다. 숲은 수많은 나무를 길러내는 시스템으로 한 사회의 리더나 구성원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장으로서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
즉, “현재 우리 시대의 대학은 취업과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인재 재생산 시스템에 있다”는 것이 그의 날카로운 현실 진단인 셈이다. 그는 “삶은 사람들과의 만남이고 사람의 가치를 온전하게 읽어내고 키워내는 것이 대학”이라며 “우리 대학이 우리 사회의 건강한 숲으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대학과 사회의 인식의 개선과 역할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사람과 사람 사이, 세상을 바라보는 데 있어 양심과 애정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차가운 머리(cool head)’에서 나온 이론과 각박한 언어로 비판적인 담론은 진정한 의미의 사상이 될 수 없습니다. ‘따뜻한 가슴(warm heart)’에서 나온 자신의 양심이 인간적으로 융화될 때 진정한 담론이 되고 진정한 의미의 사상이 될 수 있습니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우리 사회의 경제적 구조와 정치적 주체성, 문화적 자존을 냉정하게 직시한 다음 우리 사회의 가장 근본인 `사람'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고도 말했다.
“대학은 사람의 가치를 온전하게 읽어내고 키워가는 곳이어야”
그는 “현재 우리나라는 과정과 수단보다는 결과를 중시하고 사람을 수단으로 보는 ‘속도 중시’로 가고 있는데, 결과주의는 사회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사회 발전 과정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여러분과 함께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이란 단어를 약분하면 ‘삶’이란 단어가 되듯 “삶은 사람들과의 만남인데, 이것을 격하시키는 것은 엄청난 비극”이라며 “사람의 가치를 온전하게 읽어내고 키워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대학이자 숲이며, 이런 숲이 곳곳에 자리잡기를 간절하게 기원한다”고 10시37분께 명 강의를 마쳤다. 한편, 강의 전부터 “취재진이 많이 몰려 제대로 된 강의가 힘들 것 같다”던 그는 강의 중간에 한 라디오프로그램과의 인터뷰 내용을 끄집어내어 청중의 웃음을 유도하기도 했다. 그는 “오늘 출근하기 전 <문화방송>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며 “감회가 어떠냐고 묻길래, ‘감회야 물론 깊죠’라고 말했다”며 청중의 웃음을 유도하기도 했다. 그는 또 “종강 뒤 뭐할거냐는 질문에는 답변을 하지 않으려다가 생방송이어서 ‘어떤 형태로든지 학교 공간에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며 퇴임 이후에도 학생들을 계속 만날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신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20년간 복역한 뒤 1988년 8월15일 가석방돼 이듬해 봄부터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하며,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신 교수가 감옥에 있으면서 보낸 편지를 묶어 80년대 출간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그 사색의 깊이와 사상적 지향으로 인해, 진보 진영 안팎에 큰 울림을 던졌다. 신 교수는 출옥 후 강의를 하면서 저술과 강연도 활발히 해 <엽서>, <강의>, <더불어숲>, <나무야 나무야> 등의 책을 펴냈다. 그는 “한국사회의 진보적 담론을 생산해 왔던 성공회대가 우리 사회의 건강한 숲으로 푸르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라며 “정년을 해도 석좌교수나 명예교수로 성공회대에 남아 학생들을 가르칠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강의가 끝나자, 큰 박수 물결이 이어졌다. 강단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하는 그의 눈이 붉게 상기됐고, 이슬이 맺혔다. 수업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동안 대학 성당을 떠나지 못했다. 수업을 들은 성공회대 정보통신학부 송민희(3학년) 양은 “교수님께서 마지막 강의를 하셨다고 하니, 대단히 아쉽다”며 “교수님의 강의를 계속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신영복 교수의 ‘마지막 강의’ 에 참석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 김소향
신영복 교수의 ‘마지막 강의’에 참석해 경청하고 있는 학생들. 김소향
신영복 교수가 새해 덕담을 직접 그리고 쓴 서화, ‘석과불식(碩果不食)’
그는 “현재 우리나라는 과정과 수단보다는 결과를 중시하고 사람을 수단으로 보는 ‘속도 중시’로 가고 있는데, 결과주의는 사회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사회 발전 과정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여러분과 함께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이란 단어를 약분하면 ‘삶’이란 단어가 되듯 “삶은 사람들과의 만남인데, 이것을 격하시키는 것은 엄청난 비극”이라며 “사람의 가치를 온전하게 읽어내고 키워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대학이자 숲이며, 이런 숲이 곳곳에 자리잡기를 간절하게 기원한다”고 10시37분께 명 강의를 마쳤다. 한편, 강의 전부터 “취재진이 많이 몰려 제대로 된 강의가 힘들 것 같다”던 그는 강의 중간에 한 라디오프로그램과의 인터뷰 내용을 끄집어내어 청중의 웃음을 유도하기도 했다. 그는 “오늘 출근하기 전 <문화방송>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며 “감회가 어떠냐고 묻길래, ‘감회야 물론 깊죠’라고 말했다”며 청중의 웃음을 유도하기도 했다. 그는 또 “종강 뒤 뭐할거냐는 질문에는 답변을 하지 않으려다가 생방송이어서 ‘어떤 형태로든지 학교 공간에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며 퇴임 이후에도 학생들을 계속 만날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신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20년간 복역한 뒤 1988년 8월15일 가석방돼 이듬해 봄부터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하며,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신 교수가 감옥에 있으면서 보낸 편지를 묶어 80년대 출간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그 사색의 깊이와 사상적 지향으로 인해, 진보 진영 안팎에 큰 울림을 던졌다. 신 교수는 출옥 후 강의를 하면서 저술과 강연도 활발히 해 <엽서>, <강의>, <더불어숲>, <나무야 나무야> 등의 책을 펴냈다. 그는 “한국사회의 진보적 담론을 생산해 왔던 성공회대가 우리 사회의 건강한 숲으로 푸르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라며 “정년을 해도 석좌교수나 명예교수로 성공회대에 남아 학생들을 가르칠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강의가 끝나자, 큰 박수 물결이 이어졌다. 강단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하는 그의 눈이 붉게 상기됐고, 이슬이 맺혔다. 수업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동안 대학 성당을 떠나지 못했다. 수업을 들은 성공회대 정보통신학부 송민희(3학년) 양은 “교수님께서 마지막 강의를 하셨다고 하니, 대단히 아쉽다”며 “교수님의 강의를 계속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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