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대가 소장하고 있는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 배현숙 계명문화대 교수가 도쿄대의 협조를 받아 찍은 것을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가 언론에 공개했다. 환수위 제공.
서울대 ‘깜짝발표’ 어떻게 이루어졌나?
일본, 환수위 본격 문제제기하자 서울대를 파트너 삼아 “긴급 반납”
일본, 환수위 본격 문제제기하자 서울대를 파트너 삼아 “긴급 반납”
5월30일 서울대에서 ‘깜짝 발표’가 있었다.
일본 도쿄대 도서관에 소장중인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47책이 한국에 돌아온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그날은 불교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환수위) 대표단이 도쿄대 도서관장과의 ‘담판’을 위해 일본에 출국하던 날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발표에 환수위쪽도 당황했고, 국민들도 어리둥절했다. 애초 환수위와 도쿄대 도서관의 협상은 난항을 거듭하고 있어 ‘소송’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이미 환수위쪽은 일본서 재일동포 김순식, 이춘희 변호사를 선임해 놓은 상태였다. 여기에 ‘조선불교도연맹’의 지지성명,‘재일본거류민단’과의 연대, 김원웅·노회찬 의원 등 국내 정치권의 가세로 도쿄대와의 ‘일전’을 코앞에 둔 상태였다.
환수위도 몰랐던 서울대의 발표는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을까?
취재결과 서울대의 ‘반환’ 발표는 15일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환수위와의 협상이 한참 진행중인 5월15일, 도쿄대의 사토 부총장이 서울대의 정운찬 총장을 긴급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사토 부총장은 도쿄대 총장의 친서를 정 총장에서 전했다. 친서의 내용은 “〈조선왕조실록〉을 서울대학교에 기증하겠다”는 것이었다. 정 총장은 즉각 ‘태스크포스팀’의 결성을 지시했고, 이태진, 이근관 교수등이 참여한 팀이 결성됐다. 그 뒤 양국을 오가는 이메일과 팩스를 통해 의견 조율이 이루어졌고, 보름 만인 30일에 ‘깜짝발표’를 하게 된것이다.
‘환수위’ 압박에 급했던 일본, ‘기증’은 최선의 방책
일본은 그동안 ‘환수위’의 압박에도 꿈쩍하지 않더니 왜 갑자기 일을 처리했을까? ‘서울대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의 이태수 위원장(대학원장)은 “문화재 반환의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하면 예전의 외규장각도서처럼 난항이 될 수 있었다”며 “일본쪽에서도 시간을 끌면 법적 소송에 휘말리고 약탈 문화재라는 여론이 악영향을 낳을 우려 때문에 ‘기증’이란 방법을 통해 서두른것 같다”고 말했다. 오항영 국가기록원 기록관리표준설계팀장도 “약탈 문화재란 것이 일본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했다”며, “반환청구 소송에 휘말릴 경우 복잡한 외교문제로 발전하는 것을 일본이 사전에 차단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기증’이라는 방법은 일본이 선택한 가장 손쉽고 조용한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문화재를 ‘반환’해야 하는 문제는, 국제법상으로 복잡한 논의가 있어야 하고, 외규장각 도서의 사례처럼 단기간에 이루어지기 힘들다는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태수 위원장은 “반환의 경우 국제법상으로 검토할 사항이 너무 많아서, 기증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빨리 문화재를 찾아오기란 힘들다”라고 말했다.
백충현 서울대 명예교수(국제법)도 “식민지 시대 반출된 문화재 반환의 경우 현재 소유자, 반출 경위, 시점 등에 따라 복잡한 문제를 따져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불교계의 입장은 달랐다. 환수위 위원장인 정념 스님(월정사 주지)은 “그것은 서울대의 논리일뿐”이라며 “이 기회를 빌어 반출 문화재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었는데 서울대가 너무 급하게 일을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일본 오가며 환수운동 불 지핀 환수위 “우롱당했다”
불교계는 3월 3일 정념 스님(월정사 주지)과 철안 스님(봉선사 주지)을 공동 의장으로 하는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본격적인 환수 운동에 나섰다. 하지만 갑작스런 서울대의 발표에 정작 환수위는 ‘뒷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당혹한 환수위는 31일 일본 현지에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의 반환을 환영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냈다. 성명서에서는 “환영한다”며 일단 의미는 부여했지만 “〈조선왕조실록〉이 ‘불법 약탈문화재’라는 것이 입증된 상황에서 도쿄대가 제안하고 서울대가 실록을 기증형식으로 받기로 한 것은 자기 물건을 남에게 기증받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또한 “서울대는 도쿄대의 제안을 역사의식 없이 전격 수용함으로써 남북한 불교도, 일본 동포사회, 국민모두의 지지와 연대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승리’의 영광을 퇴색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금 일본에 의해 농락당하고 타협한 1965년도의 상황으로 우리역사를 후퇴시킨 것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라며 공격의 수위를 높였다.
정념 스님은 “불교계와 서울대와의 ‘자중지란’으로 비추어질까 염려스럽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대가 기존 환수위가 한 노력들과 경과들을 다 알고 있었을 텐데, 마치 ‘밀실협약’처럼 연락 한번 없이 일을 처리한 것이 모양새가 ‘부도덕’ 하다”며, “지금 일본에 가 있는 환수위 대표단은 ‘멋적은’ 상황이다. 환수위가 우롱당한 느낌”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념 스님은 또한, “이 문제는 단순히 문화재를 찾아오자는 차원이 아닌 민족정기를 되살리고, 약탈당한 문화재를 되찾아 오는 선례가 될 수 있었다”며, “2일 환수위 대표단이 귀국하면 협의후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서울대는 왜 그동안 일본에 반환 요청을 하지 않았고, 환수위 활동에 참여를 안했는지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록’ 반환 뒤 어디로? 소장 장소 놓고 서울대-불교계 줄다리기 할듯
일단 ‘오대산사고본’은 서울대쪽에 반환되게 된다. 현재 양쪽의 실무진에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중이다. 이태수 위원장은 “빠르면 6주 안에 실록이 돌아올 수 있다”며 “구체적인 방안은 협상중이지만, 비행기를 통해서 일본이 직접 가져오는 형태가 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실록이 도착하면 불교계와의 진통은 본격적으로 시작 될 가능성이 있다. 소장처를 어디로 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기존 오대산 사고본 중 27책은 아직 서울대에 있으며, 실록은 예전부터 규장각에서 관리해왔다”라는 입장이고 월정사 쪽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원래 소장처인 오대산 사고로 돌아와야 한다”라는 입장이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도 1일 “서울대가 ‘일본 쪽 에선 기증, 한국 쪽에선 환수’라는 표현 방식에 합의한 것은 약탈 문화재를 반환받을 우리의 당연한 권리를 스스로 부인한 치욕적인 일”이라고 비판하는 등 ‘실록’이 한국에 돌아와도 ‘논란’은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일본은 그동안 ‘환수위’의 압박에도 꿈쩍하지 않더니 왜 갑자기 일을 처리했을까? ‘서울대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의 이태수 위원장(대학원장)은 “문화재 반환의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하면 예전의 외규장각도서처럼 난항이 될 수 있었다”며 “일본쪽에서도 시간을 끌면 법적 소송에 휘말리고 약탈 문화재라는 여론이 악영향을 낳을 우려 때문에 ‘기증’이란 방법을 통해 서두른것 같다”고 말했다. 오항영 국가기록원 기록관리표준설계팀장도 “약탈 문화재란 것이 일본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했다”며, “반환청구 소송에 휘말릴 경우 복잡한 외교문제로 발전하는 것을 일본이 사전에 차단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기증’이라는 방법은 일본이 선택한 가장 손쉽고 조용한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원회가 5월27일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에 보내온 지지 성명서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 위원들이 15일 도쿄대에서 열린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 반환 협상에서 도쿄대 실무진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 제공 환수위원회.
일단 ‘오대산사고본’은 서울대쪽에 반환되게 된다. 현재 양쪽의 실무진에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중이다. 이태수 위원장은 “빠르면 6주 안에 실록이 돌아올 수 있다”며 “구체적인 방안은 협상중이지만, 비행기를 통해서 일본이 직접 가져오는 형태가 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실록이 도착하면 불교계와의 진통은 본격적으로 시작 될 가능성이 있다. 소장처를 어디로 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기존 오대산 사고본 중 27책은 아직 서울대에 있으며, 실록은 예전부터 규장각에서 관리해왔다”라는 입장이고 월정사 쪽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원래 소장처인 오대산 사고로 돌아와야 한다”라는 입장이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도 1일 “서울대가 ‘일본 쪽 에선 기증, 한국 쪽에선 환수’라는 표현 방식에 합의한 것은 약탈 문화재를 반환받을 우리의 당연한 권리를 스스로 부인한 치욕적인 일”이라고 비판하는 등 ‘실록’이 한국에 돌아와도 ‘논란’은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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