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 형식은 `윈-윈' 해법…비정치적 교류협력 사례로 주목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이 일본으로 넘어간지 93년만에 `기증' 형식으로 한국에 돌아오는 것은 한국측의 꾸준한 노력과 일본측의 성의가 빚어낸 `윈-윈'(win-win) 해법으로 풀이된다.
관동대지진으로 1923년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던 오대산 사고본 중 47책이 일본 도쿄(東京)대학 귀중서고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부터 우리나라 불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등은 이를 돌려받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왔다.
올 3월 불교계를 중심으로 출범한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는 실록 환수를 위해 도쿄대와 수차례 협상 테이블에 앉았으며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과 김원웅 열린우리당 의원 등도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이들의 노력을 통해 도쿄대는 한국측의 절실한 입장을 확인했으나 최근까지도 "문부과학성, 문화재청, 외무성 등 관계당국과 협의하는데 상당한 시일이 요구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히는 데 그쳤었다.
도쿄대가 신중한 태도를 취했던 것은 한국측 압력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줄 경우 일본 내 우익 세력이 강력 반발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환수위가 1913년 이뤄진 조선왕조실록 반출이 국제법상 불법이었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반환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소송도 불사한다"는 방침을 밝혀 도쿄대로서는 큰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자칫 일제 강점기에 대규모로 이뤄진 문화재 반출의 국제법상 적법성 여부에 대한 논란이 빚어져 심각한 외교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쿄대의 이런 고민은 마침 개교 60주년을 맞은 서울대가 양국의 대표적 국립대 간 학술교류협력 차원에서 고문서를 기증받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일본 정부의 정책에 따라 2004년 법인화된 도쿄대가 학교 자산에 대한 권리를 갖게 돼 일본 정부의 정치적 부담이 덜어진 점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됐다.
서울대 관계자는 "양교 간 협력사업을 통해 정치적 부담을 덜면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 냈다"며 "적극적인 학술교류를 약속한 양교 총장님들의 합의가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동안 실록 반환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 온 불교계와 환수위측은 조선왕조 시절 월정사가 오대산 사고(史庫) 관리를 맡아 왔다는 점을 근거로 "반환되는 실록은 서울대 규장각이 아니라 월정사가 소장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독도 문제,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문제 등으로 양국의 정치적 관계가 경색된 상태에서 이뤄진 이번 반환은 한일 양국이 최근 수년간 꾸준히 추진해온 `비정치적' 교류협력의 결실로 평가된다.
백충현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는 30일 "문화재 반환에는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 방식이 있고 기증도 그 중 하나"라며 "도쿄대가 힘든 결심을 했으며 우리측도 성숙하고 차분한 자세로 남은 절차를 무리없이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법 전문가로 문화재 반환에 폭넓게 관여해 온 그는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문화재를 돌려주려는 상대편을 곤란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입증하기 어려운 일방적 주장을 내세우거나 정치선동이나 국민감정을 앞세우면 될 일도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임화섭 홍제성 기자 jsa@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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