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사고의 실록은 1923년 간토대지진 때 모두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다가 최근 도쿄대에 47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뒤 국내에서 반환운동이 벌어졌다. 도쿄대에 보관돼 있는 오대산 사고 실록의 모습.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 제공
“조선실록 돌려받자” 시민단체·정치권 노력
“국가차원 관리” 서울대에…불교계는 허탈
“국가차원 관리” 서울대에…불교계는 허탈
조선왕조실록은 역사상 일본에 의해 두 번의 커다란 시련을 겪었다.
첫번째는 임진왜란이었다. 조선 초부터 서울과 충주, 전주, 성주 네 곳의 사고(史庫)에 보관돼 있던 실록은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 와중에 전주 사고의 실록을 제외하고 모두 불타버렸다. 전주 사고의 실록은 이순신 장군의 수군이 호남 쪽의 해안을 지킨 덕분에 살아남았다. 왜란 이후 태백산·적상산·오대산·강화 정족산의 새 사고에 보관된 실록은 모두 이 전주 사고 실록을 바탕으로 다시 인쇄한 것들이다.
실록의 두번째 시련은 1910년에 일제가 우리나라의 주권을 강탈하면서 시작됐다. 강화 정족산·태백산 사고의 실록은 규장각 도서와 함께 조선총독부로 이관됐고, 적상산 사고의 실록은 옛 황궁 장서각에 옮겨졌다. 이번에 반환되는 실록은 왜란 이후인 1606년부터 한-일 합병 직후인 1913년 데라우치 마사타케 조선총독이 도쿄대로 옮길 때까지 오대산 사고에 보관돼 왔다.
93년 만에 오대산 사고본의 실록이 돌아오게 된 것은 불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등의 노력 덕이다. 올 3월부터 불교계를 중심으로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가 구성돼 도쿄대와 협상을 벌여왔으며,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과 김원웅 열린우리당 의원 등 정치인들도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환수위는 도쿄대에 “1913년 데라우치 조선총독이 도쿄대에 기증한 오대산 사고의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왕조의 공문서이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대한민국의 국보이므로 돌려달라”고 주한 일본대사관과 도쿄대에 요청해왔다. 최근엔 “조선왕조실록의 반출은 불법이므로 반환하지 않으면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기도 했다.
도쿄대는 최근까지도 실록을 반환할 경우 일제 때의 한국 문화재 반출 전반의 문제로 번질 것을 우려해 유보적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도쿄대는 실록을 개교 60돌을 맞은 서울대에 학술 교류 명분으로 기증함으로써 이런 어려움들을 떨어냈다. 도쿄대가 서울대에 실록을 반환하기로 한 것은 서울대 규장각이 국가적 차원에서 조선왕조실록을 관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반환은 독도, 일본 역사교과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등으로 양국 관계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민간 부문에서 이뤄진 일이어서 더욱 빛난다.
한편 도쿄대가 오대산 사고본 실록을 서울대 규장각에 돌려주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불교계를 중심으로 한 환수위는 허탈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그동안 불교계와 환수위는 조선 왕조 때부터 월정사가 오대산 사고 실록의 관리를 맡아왔으므로 도쿄대가 실록을 월정사에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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