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보강수사 후 영장 재청구 여부 결정
현대차 비리를 수사하며 로비스트와 현대차 임원들을 잇따라 구속하거나 체포하던 검찰의 거침없는 행보가 17일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일단 제동이 걸리게 됐다.
법원은 이날 "검찰의 수사가 부실했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말했지만 "피의자의 혐의를 소명할 직접 증거는 (돈을 전달했다는) 김동훈씨의 진술밖에 없고 그것만으로는 소명이 부족하다"며 보완수사의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 법원의 영장 기각 사유는 = 서울중앙지법 이종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 사건에서 피의자의 혐의를 소명할 직접 증거는 (뇌물을 전달했다는) 김동훈씨의 진술뿐인데 그것만으로는 (범죄) 소명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 부장판사는 "피의자는 김동훈씨와 일면식도 없다고 하고 있다"며 "법원이 검찰 수사를 못 믿겠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지만 직접 진술 하나만으로 구속하기에는 위험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박상배 전 부총재와 이성근 전 산은 투자본부장(현 산은캐피탈 사장)의 뇌물 수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현대차의 `위아㈜ 채무탕감 보고서'를 간접증거로 제시했지만 법원은 이 자료는 구속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당연하게 해줘야 될 일을 돈을 주면서, 죄를 지으면서까지 부탁할 필요가 있었겠느냐"며 부채탕감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검찰과 "공식에 따라 현가할인 방식으로 할인해서 채권을 매각했다"는 변호인 주장이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봤다는 의미다.
구속의 일반적 기준이 `증거인멸 우려'와 `도주 우려'인 점을 감안하면, 법원은 박 전 부총재 등과 관련한 증거는 이미 검찰이 압수했기 때문에 인멸 우려가 적고, 김동훈씨는 이미 구속돼 말맞추기 가능성도 적다고 판단해 영장을 기각한 것이다.
◇ 빚탕감 수사 `증거보완' 필요 = 박 전 부총재 등을 구속한 뒤 당시 산업은행 총재와 자산관리공사(캠코) 및 금감원 고위 간부들을 수사하려던 검찰의 행보는 이날 영장 기각으로 일단 제동이 걸리게 됐다.
수사 착수 이후 김재록 전 인베스투스글로벌 회장, 이주은 글로비스 사장, 김동훈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를 잇따라 구속하고 현대차 이정대ㆍ김승년 부사장을 체포하는 등 `광폭 행보'를 보여온 검찰이 수사속도를 조절해야 할 입장이 된 것이다.
그간 "산업은행은 할 말이 없는 사건"이라거나 "혐의가 입증됐으니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겠느냐"며 수사 진행에 자신감을 보여왔던 검찰로서는 좀 더 신중히 자료를 검토하고 수사를 보완해야 과제를 안게 됐다.
현대차에서 41억6천만원을 받은 김동훈씨가 구체적으로 이 돈을 어떻게 썼는지 확인하기 위해 김씨의 진술 외에 다른 자료를 확보해야 하고 부채탕감의 적정성에 대한 산은측의 반박논리를 깰 근거도 찾아내야 한다.
이는 단지 박상배 전 부총재를 구속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향후 현대차 계열사 빚 탕감 의혹 사건 관련자를 기소했을 경우 무죄 판결이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전 `증거 다지기'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검찰은 이번 영장 기각으로 현대차 비리 수사 전체가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며 법원의 영장 기각 사유를 면밀히 분석한 뒤 보강조사를 거쳐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향후 `영장 2라운드'가 주목된다.
김상희 기자 lilygardener@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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