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공공연한 비밀’…도매상·유통업체 안가려
부족 품목 집중…“어획고 뻔한데 고의성 확실”
부족 품목 집중…“어획고 뻔한데 고의성 확실”
수산물의 원산지 조작은 수산물 유통업계 종사자들에게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수산업협동조합 등 국내 유수의 수산물유통업체들에 대한 이번 경찰 수사도 원산지 문제로 시비가 붙은 유명 수산업체 두 곳이 다른 업체들을 고발하면서 불거진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과 수산물 유통업계 종사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원산지가 변조되어 학교급식용으로 납품된 수산물들은 동태, 북어채, 백새우살, 적새우살 등 주로 국내 어획고가 부족한 품목들이다. 원산지 조작은 대개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진다.
첫번째는 외국의 생산자로부터 수산물을 구입한 1차 도매상인 수입·납품업자들이 수협 등 2차 대형 유통업체들에 공급할 때 원산지를 거짓 기재하거나 외국산과 국산을 8:2 정도의 비율로 섞는 것이다. 현재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수협중앙회 등 유통업체들은 원산지 위반이 모두 이 단계에서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들은 몰랐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번에 수사를 받은 수입·납품업자들은 “일부 수산물은 국내 생산량이 매우 적기 때문에 수협 등 유통업체에서 건네받을 때 이미 외국산임을 알고 있다”고 진술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뿐만 아니라 업계에선 수협 등 유통업체들이 학교 등 소비자들에게 납품하기 전에도 원산지를 변조할 수 있으며 상당수는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되기 직전 변조하기도 한다고 말하고 있다.
경찰 역시 수협 등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원산지 변조에는 이들 대형 유통업체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가세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수산물 전문 유통업체들이 가짜 국산을 식별하지 못한 채 속아서 산 뒤 이를 소비자에게 다시 납품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수협과 계약을 맺어 일선 학교에 납품했던 한 영업점장도 “명란젓 같은 품목은 어획량이 대단히 적어 대중적인 학교급식용으로는 적당하지 않다”며 “국내 어획고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수협이 국내산 명란젓이란 이름으로 외국산을 다량 공급했다면, 원산지 변조를 방조했거나 일부러 모른 척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사실은 일선 학교에 공급된 급식용 식재료의 문제점이 생생히 담겨 있는 클레임(시정요청) 일지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수협은 2004년 국내산 꼬막살을 주문했다가 일본산을 납품받은 안양 ㅂ중학교로부터 “수협이 원산지를 속일 수 있느냐”는 항의를 받은 일도 있다. 또 북어채의 원산지를 임의로 변경해 납품했다가 성남의 ㄱ초등학교에 사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사유서 제출은 보통 계약 파기의 전 단계다.
한 유통업자는 “경찰이 2004년 이후 위반 사례에 대해서만 수사를 하고 있지만, 실제 원산지 조작이 훨씬 활발했던 때는 2000~2003년”이라고 말했다. 경찰 수사의 폭과 깊이가 모두 확대되어야 한다는 지적인 셈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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