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조사기간 연장 보고받고 재보고 요구
조사관 징계를 둘러싸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내부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현장에 가지도 않은 채 허위로 출장보고서를 썼다며 해임이 청구됐지만 징계위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위원장이 해당 조사관 수사의뢰를 검토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ㄱ조사관은 지난해 여당 추천 위원들이 일부 희생자를 ‘부역자’로 몰아 진실규명 결정을 보류한 ‘영천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사건’(영천 사건) 등을 담당해 ‘표적 감사’ 논란도 일었다.
17일 김민형 진실화해위 운영지원과장은 한겨레에 “ㄱ조사관의 출장보고가 실제 출장 결과와 달라 허위공문서 작성 가능성을 높게 본다”며 “이는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민간위원 과반이 참여한 징계위에서 해임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재심사 청구’ 등 불복 수단을 검토하는 동시에 외부 수사기관에도 해당 사안을 넘기겠다는 뜻이다.
ㄱ조사관은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 일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ㄱ조사관의 사정을 잘 아는 ㄴ조사관은 한겨레에 “‘허위’라 함은 조사를 안 하고도 했다는 이야기인데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모든 조사보고서에 사건 신청인의 도장 또는 지장이 다 찍혀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지 상황에 따라 출장 지역 순서가 바뀔 수 있다. 다만 사후에라도 바로잡지 않은 것은 실수”라고 덧붙였다. ㄱ조사관은 5회의 출장에서 44건의 오기재(잘못 적음) 지적을 받았다. 징계위가 정직 1개월 중징계 결정을 한 점에 비춰보면 ‘현장에 가지도 않았다’는 주장보다는 ㄱ조사관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징계를 ㄱ조사관이 속한 조사1국의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 사건에 대한 탄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또 다른 ㄷ조사관은 한겨레에 “영천은 여당 추천 위원들이 이념 프레임을 씌운 곳인데 (이번 징계로) 지난해 여름부터 보류돼온 영천과 진도를 비롯한 그 밖의 사건들도 언제 진실규명안이 상정될지 모르게 됐다”며 “올 스톱 분위기다. (한국전쟁기 사건을 다루는) ‘조사1국은 망했다’는 자조가 나오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런 갈등이 진실화해위의 활동기간 연장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진실화해위는 오는 5월 활동기간이 종료된다. 오는 2월까지는 기간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기간 연장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재보고하라’며 한차례 결정을 미룬 것으로 확인됐다.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은 지난 9일 한겨레에 “연장 쪽으로 긍정 검토 중”이라면서도 “보고를 드렸는데 ‘자세히 다시 보고해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기간 연장은 한차례(1년)에 한해 위원회가 결정할 수 있지만, 예산 확보 등 현실적인 이유로 대통령 동의가 필요하다.
진실화해위에서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 사건의 진실규명률은 지난해 11월 30일 기준 12.9%(9957건 중 1286건)에 불과하다. 진실규명과 불능, 각하 등 사건 처리가 종결된 사건은 3545건으로 처리율은 35.6%다. 진실화해위 내부에서는 남은 사건이 많아 조사기간 연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