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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투쟁이자 격려… 공동체 발전시킨 ‘엄마들의 대화’

등록 2024-01-08 19:19

[신년 기획] 사람과 사람 잇는 대구 안심마을 ③

아띠 도서관의 설립과 운영 과정은 각별히 여성 주민들이 마을공동체를 이루는 주체로 전면에 등장하는 계기였다. 여기서 여성 주민은 곧 ‘엄마’다. 성별 이분법이 아니라, 수행적인 소임을 이르는 표현이다.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전 연세대 교수, 선흘 볍씨마을 주민)은 ‘신기방기한 동네가게 안심협동조합’(2023)에서 “마을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마을에 작동하는 원리가 얼마나 모성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며 “마을은 무엇보다 ‘모성적 사유’가 꿈틀대는, 삶이 회복되는 곳”이라고 했다.

안심마을은 때로 학술적 연구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역사회 공동체 중심으로서의 작은도서관’(이성신·성희자·이세나, 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49권 1호, 2018)이라는 논문은 아띠 도서관을 연구 주제로 삼았다. 보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여성들의 노력이 육아공동체를 통해 강한 유대관계로 이어지고,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새롭게 나타나는 필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공동체가 더욱 확장·발전하면서, 지역에서 여성들의 역할이 커지는 흐름을 짚는다. 논문은 “여성들은 도서관에서 ‘내 이야기’를 나누며 동질감을 키웠으며, 도서관은 마을 여성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의미를 갖게 됐다”며, 그 과정을 거치며 여성들이 “주부, 엄마의 역할에서 나아가 마을에서 주민의 역할로 사회적 주체로서의 활동을 경험”했다고 분석했다.

대구 동구 율하동 ‘마을학교 둥지 사회적협동조합’. 안영춘 기자

‘여성 정체성의 정치에서 아고니즘 정치로’(김문정, 한국여성학 31권 4호, 2015)는 ‘마을학교 둥지 사회적협동조합’(둥지)의 당시 학부모와 교사 14명 가운데 10명을 인터뷰했다. 여성 8명, 남성 2명이었다. “아고니즘은 상호 투쟁적이면서 동시에 상호 격려적인 관계다. 그 관계는 직접적인 상호충돌로 각자가 모두 무력화되는 관계가 아니라 영원히 서로를 자극하는 관계”라고 논문은 설명한다. 또 “특정 이슈마다 모든 측면에서 논쟁하고 설득하는 토론방식”을 ‘아고니즘 정치’의 행태로 꼽는다. 갈등은 적대가 아닌 부단한 소통을 통해 공동체의 실천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된다.

둥지는 한사랑 어린이집과 아띠 도서관의 경험을 공유한 여성들이 주도해 설립했음에도, 발달장애아·비장애아 엄마의 차이를 비롯해 생각과 경험의 차이가 겹겹이 감지됐다. 여성들은 그 차이를 묻어두지 않고 드러낸다. 차이의 본질이 무엇인지,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지, 그럼에도 그 안에서 공통되는 것은 무엇인지 확인할 때까지 대화를 이어간다. 논문은 둥지 여성들의 아고니즘 정치가 점차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으며 전체 네트워크로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그 자장의 중심으로 남성(아빠)들도 차츰 이끌려 들어간다.

“마을에 사는 아빠들은 ‘진화’ 중이다. 승자독식에 약육강식이 아닌 상호 협력과 동고동락의 세계를 경험하면서 사냥꾼의 세계에서 돌보는 자의 세계로 들어갈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제사나 재산상속이라는 가부장적 제도와는 무관하게 다음 세대와 연결된 연대적 존재로서의 감각을 회복하려는 다정하고 겸손한 사냥꾼들의 출현을 기대하게 되는 지점이다.”(조한혜정, 같은 책)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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