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전 세종시 어진중학교의 눈 쌓인 운동장 위에 그려진 그림. 한국화와 민화를 그리는 유기준 작가와 친구들이 그렸다. 유기준 작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갈무리
“(크리스마스 이브에)아파트 위에서 내려다보니 학교 운동장이 도화지처럼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내일 눈 오면 그림을 그려보면 좋겠다’,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했는데 진짜 눈이 와서…”
성탄절인 지난 25일 오전 세종시 어진중학교의 눈 쌓인 운동장 위에 대형 용 그림과 영어로 ‘해피 뉴 이어 2024’라는 글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내린 눈이 쌓인 운동장을 도화지 삼아 그린 것으로 ‘연하장’을 연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지난 25일 오전 세종시 어진중학교의 눈 쌓인 운동장 위에 유기준 작가와 친구들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 유기준 작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갈무리
이날 오전 지역 커뮤니티에 운동장 사진이 공유되기 시작하며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린 사람 능력자다” “누군가의 노력 덕분에 따뜻한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보내게 됐다” “금손이시네요. 재능으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등 많은 이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작품의 주인공이 누군지 궁금해했다.
운동장 위의 그림은 한국화와 민화를 그리는 유기준(48) 작가와 친구들의 작품이었다. 운동장에 그린 용그림 밑에 쓰인 ‘묘금도(卯金刀)’는 유 작가가 작품 활동을 할 때 닉네임처럼 붙이는 표현이다. 유 작가는 26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화제가 될 줄 몰라 아직도 어리둥절 하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는 25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도 운동장을 촬영한 사진과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올렸다.
지난 24일 오전 세종시 어진중학교의 눈 쌓인 운동장 위에 그려진 그림. 유기준 작가 친구가 그렸다.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 세종시닷컴 갈무리
‘용 그림 연하장’은 24일 어진중학교 옆 아파트에 사는 유 작가의 친구가 학교 운동장에 재미로 ‘메리 크리스마스 2023’이라고 삽으로 글자를 남기면서 시작됐다. 전북 전주에 거주하는 유 작가는 1년에 한 번 연말에 친구들과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올해도 24일 세종시의 친구 집에서 모임을 가졌고, 아파트에서 중학교 운동장을 내려다보던 유 작가와 2명의 친구는 “내일 눈이 오면 운동장을 도화지 삼아 다시 그려보자”라고 뜻을 모았다.
“친구가 ‘네가 작가니 눈 오면 좀 다른 걸 그려봐라’라고 해서 제가 (2024년은 용의 해이니)‘용의 기운으로 용 한번 그려볼까’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했어요. 눈이 와야지 그리려고 했는데 다음날(25일) 진짜 눈이 왔더라고요.”
성탄절 오전 유 작가와 친구 2명은 학교로 가 삽과 싸리비로 약 1시간20분에 걸쳐 작품을 완성했다. 유 작가가 용 그림을 그리고, 친구들이 글자를 맡았다.
해당 중학교에서도 그림이 화제가 되자 유 작가에게 “학생들 졸업 시즌인데 영상을 졸업식에 사용해볼까 생각 중이다. 학생들에게 좋은 선물이 된 것 같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전해왔다고 한다.
유 작가는 “그동안은 명절이나, 연말연시에 간단하게 끄적끄적 그려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를 드렸는데, 이번에 눈 위에다 그린 그림을 캡처해서 보내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작업을 하기도 했다. 다들 좋아해 주셔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과 그림을 보신 분 모두 내년에 좋은 일만 있었으면 한다”고 새해 인사를 전했다.
이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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