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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대 대학원생이 지도교수로부터 폭언을 들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해당 교수는 진상조사 과정에서 ‘부모가 (정신과) 약을 챙겨 먹였으면 안 죽었을 것’ 등의 발언을 해 유족이 반발하고 있다.
동생 잃고 죄책감에 오빠도…신고 철회한 유족의 심정
25일 한겨레 취재 결과, 지난 1월 중순 숭실대 박사연구생 ㄱ(24)씨가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ㄱ씨는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 참가하는 학부생들의 인솔 업무를 맡는 과정에서 지도교수 ㄴ씨로부터 폭언을 들었다. 숭실대 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ㄴ교수는 학부생들이 보는 앞에서 ㄱ씨에게 “바보냐” “너 때문에 (행사) 망쳤다” 등 고성을 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유족은 ㄱ씨가 현지에 있을 때부터 “죽을죄를 진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자책했고, 귀국한 뒤 병원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따른 망상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ㄱ씨는 귀국 며칠 뒤인 지난 1월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은 지난 2월 학교 인권위원회에 사건을 신고했다. 숭실대 학사부총장이 위원장을 맡는 이 기구는 교내 인권침해 사건 조사를 전담하는 기구다. 조사 과정에서 ㄴ교수는 “(정신과) 약을 먹었으면 안 죽는다. 부모의 엄청난 잘못이다”라며 자신의 책임을 부인했다고 한다.
조사가 진행되던 중 ㄱ씨 오빠마저 동생 사망에 따른 죄책감 탓에 스스로 목숨을 끊자 유족이 ‘더 이상 조사는 의미 없다’며 신고를 철회했다. 하지만 학교 인권위는 사안이 엄중하다고 판단해 직권조사를 이어갔고, ㄱ씨에 대한 ㄴ교수의 폭언과 사건 발생 뒤 ㄴ교수의 피해학생 부모를 향한 2차 가해성 발언 등을 모두 인정해 교내 교원 징계위원회에 중징계 의결을 요구했다. 학교 인권위는 징계 주체가 될 순 없지만 징계 수위를 정해 징계를 요구할 수 있다. 인권위는 ㄴ교수에게 8시간짜리 인권감수성 교육 프로그램 이수 명령도 내렸다.
그러나 지난달 13일 숭실대 교원 징계위원회는 ㄴ교수에게 경징계에 해당하는 ‘견책’ 처분을 의결했다. ㄱ씨의 죽음에 ㄴ교수의 직접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유족은 ㄴ교수가 교내 교수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지위를 갖고 있는 점이 징계 수위를 낮추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의심하고 있다.
한겨레는 문자, 전화, 이메일 등으로 ㄴ교수에게 연락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숭실대 관계자는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ㄴ교수를) 중징계 해야 한다는 의견도 강했지만, 징계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관철되지 않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