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글을 훔쳐 자기가 쓴 글인 것처럼 소셜미디어에 게시할 때 원작자의 사회적 평판 등을 침해할 위험이 있다면 명예훼손에 따른 저작권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송아무개씨에게 벌금 1천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상고 기각으로 확정했다고 22일 밝혔다. 송씨는 2015년부터 약 3년6개월 동안 기계항공 공학 박사인 피해자가 작성한 글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페이스북에 47회 게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송씨가 무단 복제와 저작자 허위표시, 저작인격권 침해 등 총 3개의 위반 행위로 저작권법을 어겼다고 봤다.
송씨는 피해자의 글을 복사해 소장하고 있다가 피해자가 페이스북 계정을 닫은 뒤 이를 자신이 쓴 글인 것처럼 게시했다. 이러한 글에 “항상 박식하신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등의 칭찬 댓글이 달리자 송씨는 “과분한 칭찬입니다” “쑥스럽습니다” 등의 답글을 달기도 했다.
1심은 벌금 700만원을, 2심은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다. 무단 복제와 저작자 허위표시는 1·2심 모두 유죄가 선고됐으나, 저작인격권 침해 부분에서 판단이 갈렸다. 저작인격권 침해죄는 저작권 침해 행위가 원작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인정되는데, 1심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봤다. 2심은 저작인격권 침해까지 유죄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해 2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게시한 저작물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마치 피고인의 저작물처럼 인식될 수 있어, 피해자로서는 진정한 저작자가 맞는지, 기존 저작물을 통해 얻은 사회적 평판이 과연 정당하게 형성된 것인지 의심의 대상이 될 위험이 있다”며 “피고인은 피해자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해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가 침해될 위험을 야기함으로써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저작인격권 침해로 인한 저작권법 위반죄의 판단 기준으로 ‘해당 행위로 저작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침해할 위험이 있는지’를 봐야 한다고 제시했다. 침해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침해행위의 내용과 방식, 침해의 정도, 저작자의 저작물 등 객관적인 제반 사정에 비춰 저작자의 사회적 명예를 침해할 만한 행위인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저작인격권 침해로 인한 저작권법 위반죄의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한 첫 대법원 판결”이라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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