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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미국 대사관서 인턴 하면 6개월 무급…‘스펙’ 미끼로 횡포

등록 2023-12-22 07:00수정 2023-12-22 15:26

주한미국대사관. 연합뉴스
주한미국대사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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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해외 취업을 꿈꾸던 대학생 박아무개(22)씨는 최근 주한미국대사관 인턴 프로그램 홍보물을 보다 깜짝 놀랐다. 주 40시간씩 6개월간 일해야 하지만 ‘무급’이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인턴이 아니라 자원봉사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부터 19년째 무급 인턴을 채용 중인 주한미국대사관이 또 다시 입길에 오르고 있다. 10년 전에도 주한 외국 대사관 및 국제기구 등의 무급 인턴 채용은 스펙 쌓기를 미끼로 ‘열정페이’를 요구한다는 비판이 나왔으나, 별반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근로 내용에 따라 불법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지난 9월 국내 대학생을 대상으로 2024년 상반기 ‘해외 학생 인턴십 프로그램(FNSIP)’ 지원자를 모집해 24명을 선발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상·하반기 나눠 1년에 두차례 인턴을 뽑는다. 인턴십 프로그램에 선발된 학생들은 대사관 내부 공공외교과, 정치과, 상무부 등의 부서에 배치돼 최대 6개월 동안 무급으로 일하게 된다. 근무 시간은 하루에 8시간씩 주 40시간이지만, 학업을 병행하는 경우 더 적은 시간 일하기도 한다.

인턴(일경험 수련생)은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장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와는 구분되는 개념으로, 무급 채용이 가능하다. 다만 인턴이 실질적인 근로를 제공하는 경우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돼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무급 노동도 당연히 불법이다. 김승현 노무사(노무법인 시선)는 “(업무 시간이) 교육으로만 채워진다면 몰라도, 주어진 시간에 출근해 업무를 할당받아 일했다면 당연히 임금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주한미국대사관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에 올라온 2024년도 상반기 인턴 모집 홍보물. 주한미국대사관 인스타그램 갈무리
지난 9월 주한미국대사관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에 올라온 2024년도 상반기 인턴 모집 홍보물. 주한미국대사관 인스타그램 갈무리

주한미국대사관은 실정법에 위반되지 않는 형태로 인턴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주한미국대사관 관계자는 “미국 및 한국의 모든 노동법을 준수하고 있다”며 “모든 인턴이 적절한 멘토링과 지침을 받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하며, 모든 인턴이 대사관 업무를 보완하기 위해 고안된 다양한 특별 활동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고, 교육 및 학습 세션을 제공한다. 인턴들은 인턴십이 무급이라는 사실과 인턴십이 제공하는 혜택에 대해 온전히 인지한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대사관 업무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턴 경험이 있는 ㄱ씨는 “대사관 행사 진행, 행정 업무 등 사실상 계약직에 버금가는 일을 했다”고 밝혔다. 국제기구 등에서 일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대사관 근무 경험은 ‘스펙’으로 작용하지만, 기회 자체가 많지 않아 이에 대한 공식적인 문제제기가 나오기 어려운 구조다.

고용노동부의 ‘일경험 수련생에 대한 법적 지위 판단과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에는 △직무교육 프로그램 없이 업무상 필요에 따라 수시로 업무를 지시하거나 △상시적 또는 특정 시기에 인력이 추가로 필요한 업무 등에 근로자를 대체해 일경험 수련생을 활용하거나 △교육·훈련내용이 지나치게 단순·반복적인 것이어서 처음부터 노동력 활용에 주된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 인턴을 근로자로 봐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실질적인 근로 내용을 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라면서도 “(조사 결과) 근로자로 인정된다면 체불임금 청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각국 재외공관 중 정기적으로 무급 인턴을 채용하는 곳은 사실상 주한미국대사관이 유일하다. 주한덴마크대사관의 경우 미국처럼 1년에 두차례 인턴을 선발하는데 모두 유급이다.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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