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발족에 앞서 지난달 중순 진행된 재난참사피해자연대 총회 사진. 4.16재단 제공
“미안합니다.” 지난 2017년 4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미수습자 가족 허영주(46)씨를 꼭 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허씨는 그 따뜻함을 아직 잊을 수 없다. “자신들이 3년을 싸웠는데도 똑같은 고통을 겪는 걸 보니 속상하고 미안하다 하더라고요. 다른 참사 유족들을 만나도 마찬가지예요. 그게 우리가 모인 이유예요.”
한국 사회에서 지난 30여년간 발생한 8개의 대형 참사 피해자들이 한마음으로 모였다. 오는 16일 공식 발족하는 ‘재난참사피해자연대’는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1995년), 씨랜드청소년수련원 화재 참사(1999년),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1999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2003년), 가습기살균제 참사(2011년), 공주사대부고 병영체험학습 참사(2013년), 세월호 참사(2014년),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2017년) 등 8개 참사 피해자들이 최초로 만든 연대 단체다. 14일 한겨레는 8개 참사 피해자들에게 연대를 결심한 이유를 들었다.
지난 12일 경기 안산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종기 재난참사피해자연대 대표(협의회 운영위원장)가 세월호 선체 도면을 가리키고 있다. 김가윤 기자
연대 결성 전부터 대형 참사 피해자들은 다른 참사가 발생하면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가장 먼저 달려가곤 했다. 삼풍백화점 참사 피해자인 손영수씨(참사피해자연대 감사·76)는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참사가 발생하자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해서” 허리 디스크를 앓는 와중에도 달려가 위로를 전했다. 인현동 화재 참사 피해자 이재원씨(운영위원·70)는 대형 화재가 있을 때면 현장에 가서 피해자들에게 ‘도울 일이 없는지’를 물었다.
피해자들은 30년 전 삼풍백화점 참사와 1년 전 이태원 참사까지 정부 대응과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고 느낀다. 국가는 피해자들을 돌보지 않았고 흩어지게 했다. 참사의 진상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은 없었다. 참사의 흔적을 지우거나 축소하려는 시도도 보였다.
매년 열리는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추모식에 경찰이 배치되기 시작한 모습. 추모공원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과 유가족들의 충돌을 우려한 조치였다. 윤석기씨 제공
공주사대부고 참사 피해자 이후식씨(제2부대표·56)는 “당시 사고 경위나 정부 대응까지 챙긴다는 건 꿈도 못 꿨다. 그새 초동 수사가 부실하게 진행됐고 진상이 가려졌다”며 “그후 1인 시위를 시작했고 오랜 기간 싸워오게 됐다”고 회상했다. 대구지하철 참사 피해자 윤석기씨(제1부대표·57)도 “참사 직후 전동차가 치워지고 현장이 청소됐다. 옛날엔 국가가 하라는 대로 다 했다. 수습 과정에 피해자들이 참여할 권리는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진상이 왜곡되더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참사 피해자들의 행동과 목소리는 분명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 허영주씨는 “스텔라데이지호 참사에선 중앙재난대책본부도 설치하지 않고 부처끼리 ‘떠넘기기’ 하는 게 문제였는데, 이후 발생한 헝가리 유람선 침몰 참사에선 정부가 곧장 중대본을 설치하고 외교부 장관이 적극 대응했다”며 “그게 당연한 거였다. 관련 피해자들은 거리를 헤매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큰 위안을 얻는다”고 했다.
지난 10월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기도회에 세월호 참사 유가족 등이 모여 연대하는 모습. 4.16재단 제공
참사 피해자들의 목표는 ‘더는 어떤 참사 피해자도 거리로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지난 12일 경기 안산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종기 재난참사피해자연대 대표(58)는 “참사의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으면 같은 참사가 대물림처럼 반복되더라”며 “피해자들도 참사를 기억하는 게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내가 겪은 걸 다른 사람이 겪지 않게끔 해야 하는 게 맞는 일이다”라고 힘줘 말했다.
피해자들은 연대체가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곳이 되길 바라고 있다. 씨랜드청소년수련원 참사 피해자 고석씨(운영위원·60)는 “경황이 없는 피해자들에겐 도움이 절실하다. 수년간 겪어온 일들을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민수연씨(사무처장·55)는 “참사연대가 ‘곁’을 내어주며 시행착오를 덜 겪도록 하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해 3월 정부·가해기업·조정위를 규탄하는 단식 농성 기자회견 당시 사진. 민수연씨 제공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24주기를 맞아 새롭게 단장한 추모비. 이재원씨 제공
김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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