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허아무개(47)씨는 결혼 중개 앱에서 만난 김아무개(59)씨와 올해 말 결혼을 약속했다. 허씨는 김씨가 권유한 투자에 3천만원을 보냈지만, 곧장 연락이 두절됐다. 어렵게 재혼을 결심했지만 허망하게 돈까지 뜯겨 충격을 받은 허씨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다.
허씨 피해 사례처럼 소셜미디어나 만남 앱 등을 통해 이성에게 접근해 호감을 얻은 뒤 돈을 뜯어내는 ‘로맨스 스캠’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김씨를 사기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라고 14일 밝혔다.
경찰과 허씨 설명 등을 종합하면, 허씨는 지난 9월 말 한 결혼 중개 앱에서 김씨를 알게 됐다. 이후 김씨를 만나면서 허씨는 재혼 결심을 굳혀갔다. 허씨는 김씨가 자신을 부동산 컨설팅 및 임대업, 인테리어 업계 종사자라고 소개하며 관련 명함을 건네고, 등기부등본과 법인 사업자 통장 등을 보여주며 나름의 입증도 한 까닭이다.
허씨는 “신분에 대한 확신도 줬고, 삼성동에 있는 집도 한달 정도 수리하면 12월 말에 들어올 수 있다며 올해 안에 결혼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약 한달 만에 허씨로부터 깊은 신뢰를 얻은 김씨는 갑자기 투자금을 요구했다. 지난 10월 말 공매 물건이 많이 나왔다며 3천만원을 투자하면, 며칠 뒤 돌려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 뒤로 연락이 끊겼다. 충격을 받은 허씨는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허씨가 가입한 결혼 중개 앱은 본인인증을 해 부정 사용자는 막지만, 이들의 직장 및 자산 등 신원 검증은 별도로 하지 않아 통상의 만남(데이팅)앱과 차별점이 없었다.
로맨스 스캠 수법은 널리 알려졌지만,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김씨 사례처럼 자신의 재산 관련 자료까지 보여주며 믿을 만하게 행동하는 등 로맨스 스캠 수법도 ‘진화’하는 탓이다. 국가정보원은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국정원111콜센터에 접수된 로맨스 스캠 신고만 111건으로, 이중 확인된 피해 금액만 약 48억6천만원이라고 밝혔다. 피해 금액은 2018년(약 9억3천만원)보다 5.2배나 급증한 규모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앱 자체의 인증 절차를 더 강화해야 한다”면서도 “사기를 당했을 경우 앱 업체한테 책임을 묻기는 어려우니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알게 된지 얼마 안됐는데) 돈을 요구하는 것은 그 관계가 위험해질 것이란 징후”라며 “어떤 상황이라도 돈을 요구하는 순간 관계는 끝났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정봉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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