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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모르는데 어떻게 신청해요…장애인 복지시설 3%만 ‘보호구역’

등록 2023-12-13 06:00수정 2023-12-14 02:48

‘셀프 신청’해야 하는데 홍보 부족으로 인지도 낮아
5일 오후 서울 관악구 봉천동 관악구 장애인종합복지관 주변 장애인 보호구역에 차들이 줄지어 불법주차된 모습. 김채운 기자
5일 오후 서울 관악구 봉천동 관악구 장애인종합복지관 주변 장애인 보호구역에 차들이 줄지어 불법주차된 모습. 김채운 기자

시각장애인 안태현(50)씨는 지난 9월 송파구에 있는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을 나서다 아찔한 일을 겪었다. 지나가던 차량이 안씨의 왼팔을 치고 지나간 것이다. 안씨는 “차가 조용히 다가와 오는지도 몰랐다”며 “평소에도 복지관 주변에 인도가 없어 노심초사하며 다녔는데,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고 말했다.

안씨 사례처럼 장애인들은 교통사고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지만, 거주시설을 포함한 복지관 등 전체 장애인 복지시설 중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장애인 보호구역이 주변에 지정된 곳은 전체 시설 중 3%에 불과하다. 장애인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려면 ‘셀프 신청’해야 하는데, 홍보 부족으로 이를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안씨가 다니는 복지관도 지난 8월에야 장애인 보호구역 지정을 신청해 현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12일 보건복지부와 경찰청 자료를 보면, 전국 장애인 복지시설 3925곳(지난해 말 기준) 중 주변에 장애인 보호구역이 지정된 곳은 올해 6월 기준 123곳으로 전체 시설의 3.1%에 그쳤다. 서울 시내 장애인 보호구역은 올해 추가로 지정된 4곳을 포함해도 총 14곳으로, 서울시 전체 장애인 복지시설의 2.2% 수준이다. 2021년 기준 유치원·초등학교 등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 지정 비율이 84.4%에 이르는 것과 대조적이다.

서울 강남구 수서동 강남세움복지관에 설치된 장애인 보호구역 표지. 김채운 기자
서울 강남구 수서동 강남세움복지관에 설치된 장애인 보호구역 표지. 김채운 기자

‘장애인 보호구역’ 제도는 장애인 시설 주변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2011년 도입됐다. 도로교통법상 장애인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차량 통행속도를 시속 30㎞로 제한하고, 교통안전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 본래 장애인 거주시설만 보호구역 지정 대상이었으나, 법 개정으로 지난해 4월부터 직업 재활시설 등을 포함한 모든 장애인 복지시설이 대상이 됐다.

문제는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려면 시설 쪽이 알아서 신청해야 한다는 점이다. 법 시행 10년이 넘도록 이를 모르는 곳이 많다. 서울의 한 발달장애인 거주시설 소속 사회복지사는 “장애인 보호구역이라는 제도를 처음 들어본다”며 “시나 구에서 관련 공문을 받은 적도 없는데, 그런 제도가 있는 게 맞는다면 홍보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동작구에 있는 서울시립남부장애인종합복지관 관계자도 “지난해 법이 개정됐다는 정보를 구의원이 알려줘 보호구역을 신청할 수 있었다”며 “구청에서 시설이 보호구역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신청 없이도) 선제적으로 보호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더라도 곧장 시설 주변이 안전해지는 것도 아니다. 한겨레가 서울 시내 장애인 보호구역 14곳을 지난달 16일부터 지난 5일까지 직접 살펴보니, 안전사고 위험 요소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불법주정차한 차량은 14곳 중 9곳에서 발견됐고, 정문 앞 인도에 방호 울타리가 없는 곳은 9곳, 도로가 적색으로 포장돼 있지 않은 곳도 5곳이었다.

지난 5일 오후, 올해 장애인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서울 관악구 은천동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으로 한 시각장애인이 보호자와 함께 들어서고 있다. 김채운 기자
지난 5일 오후, 올해 장애인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서울 관악구 은천동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으로 한 시각장애인이 보호자와 함께 들어서고 있다. 김채운 기자

과속 차량을 잡아내는 단속카메라도 찾아보기 힘들다. 경찰청 자료를 보면 올해 10월 기준 단속카메라가 설치된 장애인 보호구역은 전국에 10곳뿐이었다. 서울에는 하나도 없다. 잇따른 어린이 교통사고로 법이 강화돼 2020년부터 단속카메라 설치가 의무화된 스쿨존과 달리, 장애인 보호구역엔 설치 의무가 없는 탓이다.

올해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서울 은평구 빛나눔보호작업장 관계자는 “근무하는 발달장애인들이 차도로 갑자기 뛰쳐나갈까 봐 늘 관리한다”며 “속도 제한이 생겼지만 여전히 밤에는 차들이 빠르게 달린다. 단속카메라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리어 프리’(무장애 설계) 연구자인 배융호 한국환경건축연구원 이사는 “장애인 보호구역의 가장 큰 과제는 주변 차량 속도를 줄이는 것”이라며 “장애 학생이 많이 다니는 중고등학교·대학교 등은 (초등학교가 아니라서) 스쿨존도 아니고, (복지시설이 아니라서) 장애인 보호구역 지정 대상도 아니다. 사각지대다”라고 말했다.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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