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인제군 원대리에 조성된 ‘채종원’. 가운데 선을 기준으로 벌목이 이뤄진 왼쪽이 채종원이다. 류석우 기자
밑동만 남은 굴참나무에 날이 박혔다. 쓰임을 다한 쇠붙이는 녹이 슬었다. 코르크 마개 원료로 쓰이는 두꺼운 수피에 꽂혀 1년 넘게 눈비를 맞았을 터다. 비슷한 처지의 소나무, 물박달나무 밑동들이 옆에 늘어섰다.
바둑판 위에 올려진 흰 돌처럼 밑동마다 눈이 소복이 쌓였다. 초록색 나무로 겹겹이 둘러싸인 산속 한가운데 이곳만 하얗다. 그 사이사이에 새로운 생명이 들어섰다.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에 조성된 자작나무 ‘후계림'이다.
“60년도 못 사는 자작나무 위해 몇백 년 숲을…”
원대리 원대봉 자락엔 1989년부터 1996년까지 138헥타르(㏊) 규모로 조성된 자작나무숲이 있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하얀색 수피를 뽐내는 이 숲을 보러 연간 수십만 명이 원대리를 찾는다. 특히 겨울철 흰 눈으로 덮인 자작나무숲은 절경이다. 남한에 자생하는 종이 아니어서 인위적으로 만든 조림이다. 그래서 자작나무숲을 본 이들은 그 이국적인 신비로움에 감탄한다. <닥터 지바고> 같은 외국 명화에도 종종 등장한다.
그러나 수명이 길지 않다. 평균 40~50년으로 알려져 있다. 1989년부터 심어진 것을 고려하면 이제 끝을 바라보는 나이인 셈이다. 산림청은 후계림을 조성하기로 했다. 2021~2022년에 걸쳐 지금의 자작나무숲 인근 두 곳에 후계림을 만들었다. 각각 4.9㏊ 규모, 합치면 약 10㏊다. 축구장 14개가 들어갈 만한 면적에 자작나무를 심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천연림을 베어냈다. 조용하게 사업을 진행한 탓에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벌목되고 남은 굴참나무 밑동에 녹슨 날이 박혀 있다. 류석우 기자
<한겨레21>은 2023년 11월28일 후계림이 조성된 원대리를 찾았다.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 빽빽한 나무들 사이 작은 임도를 따라 한참 들어갔다. 사람 키를 아득히 뛰어넘는 나무로 한낮에도 어두웠다.
30여 분 지났을까. 울창한 숲이 이어지다 공터가 나타나며 주변이 갑자기 밝아졌다. 후계림이 조성된 지역만 포격을 받은 듯 황폐화한 것처럼 보였다. 칼로 경계선을 그은 듯 양옆으로 울창한 참나무와 소나무들이 둘러쌌다. 대비됐다.
“여기가 원래 참나무나 소나무가 우거졌던 곳이에요. 봄에는 나물도 나고 지역 주민들도 나물 캐러 자주 왔는데 자작나무 심겠다고 아름드리나무를 다 잘라버렸어요. 몇백 년 걸려서 만들어진 숲이잖아요. 60년도 못 사는 자작나무숲 만들기 위해 이 좋은 숲을 베어버리고 자작나무를 심는 게 맞나요?” 함께 현장을 찾은 원대리 주민 이광열(55)씨가 말했다.
산림청과 지방자치단체로선 이미 전국적으로 이름난 자작나무숲을 유지해야 한다. 산림청 인제국유림관리소 관계자는 <한겨레21>에 “원대리 자작나무숲이 (조성된 지) 30년이 지났기 때문에 몇 년이 더 지나면 (수명이 다해) 없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자작나무숲이 유명해진 상태에서 계속 (방문이) 이어지고 있는데 숲이 없어지면 문제가 생기지 않느냐. 그래서 계속 유지하려고 후계림을 조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작나무를 조림해서 숲을 만든다는 것 자체에는 딴지를 걸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다만 특정 수종을 위해 자생하는 나무들이 피해를 본다면 문제의 소지가 있지 않을까요.” 식물분류학자 허태임 박사의 말이다. 후계림 조성 당시 지역 언론 보도를 보면, 자작나무숲 인근 노령·불량림을 대상으로 수종을 갱신해 사업을 진행한다고 산림청은 밝혔다. 실제로 벌채는 ‘나이 들고, 불량한’ 나무를 대상으로 이루어졌을까.
후계림 조성지에 남은 굴참나무 밑동 사진을 찍어 전문가 네 명에게 보여줬다. 한 명은 수령을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세 명은 최소 50년에서 70년 정도로 판단했다. 소나무의 경우 70~80년 정도 수령이라고 전문가들은 봤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는 “이 숲은 60년 이상 된, 우리나라에선 1% 안에 들어가는 희소성 높은 숲으로 판단된다”며 “훌륭한 숲을 이렇게 벌거숭이산으로 만든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2021년 <산림임업통계연보>를 보면, 2020년 기준 전국의 6영급(51~60년) 숲은 5%에 불과했다.(1영급에서 6영급까지만 집계) “사실 60~70년 나무도 노령림이 아니죠. 우리가 흔히 카페에서 보는 우드슬랩(두꺼운 나무판)도 100년이 지난 원목을 쓰거든요. 이렇게 60년이 넘은 나무를 노령이라고 잘라내니까 없는 거예요.” 홍 교수가 덧붙였다.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산속 한가운데 조성된 자작나무숲 후계림. 잘린 밑동 사이사이로 어린 자작나무들이 서 있다. 류석우 기자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자작나무를 심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참나무과랑 물박달나무, 소나무가 섞여 있으면 국립공원 정도, 1등급 수준의 식생대라고 볼 수 있어요. 이걸 자작나무를 심기 위해 벤다? 정말 욕먹을 얘기예요. 경제적 목적으로 목재 수급을 위한 거라면 모를까 생물다양성의 기초조차 모르는 거죠.”
러시아와 일본·중국 북부, 백두산 인근에 자생하는 자작나무는 추운 환경에 견디기 위해 수피에 기름이 많다. 하얀색으로 유명한 수피는 이전부터 책자를 만들거나 종이로도 많이 활용됐다. 그러나 이광열씨 같은 주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한두 번 보면 멋있죠. 그런데 오로지 관광 용도밖에 없잖아요. 원래 여긴 버섯도 많이 나고 봄에는 나물도 나는 곳이에요. 산에서 부산물을 얻어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으로서 누굴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어요.”
숲에서 살아가는 동물에게도 천연림은 중요하다. 숲은 동물의 집이기도 하지만 먹이원 구실도 한다. 이를테면 굴참나무에서 나오는 도토리만 해도 산짐승의 먹거리 중 하나다. 이씨는 후계림 조성 이후 민가로 내려오는 동물이 많아졌지만 그 대책은 없다고 했다. 이날 후계림을 찾은 뒤 내려가는 길에도 민가 근처에서 노루와 꿩 등 야생동물을 여럿 목격할 수 있었다.
후계림 옆엔 4배 크기 ‘채종원'… 얼마나 더 없어져야
원대리 자작나무숲 일대 천연림이 벌목된 건 후계림이 조성된 곳뿐만이 아니다. 자작나무숲 남쪽으로 이어진 산자락엔 2019년부터 2년 동안 축구장 56개 규모(40㏊)로 벌목이 이뤄졌다. 산림청이 수종갱신을 통해 조성한 것은 ‘채종원’이다. 이곳은 우수한 종자를 대량생산하고 쉽게 채취할 수 있도록 산림청에서 운영·관리하는 종자 생산 공급원이다.
후계림에 이어 찾은 채종원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21년 벌채가 끝났음에도 곳곳에 나뭇가지가 쌓여 있었다. 어린 헛개나무와 낙엽송들 사이로 잘려 나간 나무들의 밑동이 보였다. 참나무와 소나무 외에 물박달나무, 잣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밑동만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후계림에서 봤던 참나무(50~70년 추정)보다 훨씬 굵은 참나무 밑동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50∼70년으로 추정되는 굴참나무 밑동. 그 주위로 어린 자작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류석우 기자
자작나무숲 후계림과는 다른, 종자 생산을 위한 곳이지만 주민들은 이곳까지 개발될까 우려한다. “처음엔 다양한 종자 확보를 위한 차원이라고 주민들에게 설명했어요. 면적도 넓다보니 주민 동의를 받았거든요. 그런데 슬슬 시간이 지나니 자작나무만 심는 거예요. 이후 전혀 설명은 없었고 나중에 물어보니 자작나무를 심는다고 하더라고요.” 이광열씨가 말했다.
산림청 품종관리센터에 따르면 원대리 채종원엔 소나무와 낙엽송, 헛개나무, 잣나무, 자작나무 등을 심었다. 그중 자작나무가 조림된 영역만 전체 채종원의 4분의 1(10㏊) 수준이다. 후계림이 조성된 면적과 비슷한 규모다. 품종관리센터 관계자는 “이 지역이 자작나무가 잘 자라기 때문에 심은 것뿐이지 제2의 자작나무숲을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라며 “여러 종자를 심어서 나중에 채취하면 전국에 보급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러나 채종원에 조림된 자작나무가 다 자라면 관광객이 몰려올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인근에서 장사하는 주민들은 벌써 기존 자작나무숲과 채종원을 잇는 길을 원하고 있다. 인제군에서도 자작나무숲과 연결되는 길을 내어 상품화하려는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도 자작나무숲에서 채종원으로 가는 길은 있지만, 관리되지 않은 비포장도로를 지나야 한다. 품종관리센터 관계자는 “채종원의 목적은 관광상품이 아니지만 길을 뚫어달라고 하면 우리로서는 막을 수도 없는 상황이고 여러 애로사항이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산림청이 현재 40㏊인 채종원 규모를 더 늘려갈 계획이라는 점이다. 산림청 쪽은 불량 활엽수가 자생하는 지역을 위주로 수종갱신을 해나간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앞으로 벌채될 나무가 불량 활엽수만을 대상으로 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특히 산림청은 채종원 수종갱신을 위한 벌채작업을 하기 전 수령조사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후계림이 조성된 지 1년6개월, 채종원 조성은 2년이 훌쩍 지났지만 지금껏 이런 이야기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산림청과 지자체가 조용히 사업을 진행하고 주민들도 대부분이 반대하지 않으며 넘어갔기 때문이다. “채종원은 반대하는 사람이 많이 없었어요. 주민이 소수이기도 했고 우량종자를 생산한다고 해서 좋은 건 줄 알았거든요. (후계림은) 장사하는 사람들한테는 굉장히 도움이 돼요. 지역에서 주도권을 잡은 사람들이 이런 돈 있는 사람이다보니 저같이 농사짓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원주민들 목소리는 묻힐 수밖에 없죠.”(이광열씨)
그나마 일부 주민의 뜻이 모일 수 있었던 건 2022년 인제군이 자작나무숲 인근에 사방댐을 짓겠다고 발표하면서다. 인제군은 당시 산불 같은 재해 예방을 이유로 들었다. 계곡 내 친수공간을 만들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겠다고도 했다. 환경보호에는 관심 없던 주민들도 식수로 사용하던 계곡물이 막힐 처지에 놓이자 반대를 외쳤다. 애초 공사는 2022년 착공해 2023년 완공될 예정이었지만, 주민 반대로 중단됐다. 인제군은 댐 위치를 300m 정도 상류로 올려 짓겠다는 방침이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자작나무숲을 확대하고, 불에 잘 타는 자작나무 특성상 산불 대비를 위해 댐을 짓는다. 이왕 짓는 김에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친수공간까지 조성한다. 개발이 개발을 낳는 모양새다. 이 과정에서 밀려나는 것은 자연과 원주민이다. 기후위기 시대에도 맞지 않는다.
“자작나무는 산불에 취약해요. 지구온난화 시대에 (자작나무)숲이 커질수록 산불은 심각한 피해를 낳습니다. 산불에 저항성이 있는 숲을 만든다든지, 기후와 토지 환경에 맞는 자생종을 심어 관리해야죠. 한국의 산지대와는 맞지 않는 몰생태라고 봅니다.” 식물사회학자 김원종 박사(전 계명대 교수)의 말이다.
원대리 원대봉 일대 산이 모두 자작나무로 덮이면 벌목을 멈출까. “(후계림) 면적이 적다보니 앞으로도 이런 자작나무숲을 늘리려 할 거고 원대리의 자연림이 남아나지 않을 거예요. 길도 만들고 시설도 만들 겁니다. 그럼 산은 더 망가질 거예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거죠.” 이광열씨의 걱정은 계속된다.
인제(강원)=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