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음성분석실로 녹음파일 하나가 도착했다. 성폭행 피해자가 범죄 상황을 녹음한 파일이었다. 피의자 쪽은 소리가 중간중간 끊기는 점을 지적하며 조작된 녹음파일이라고 주장했다. 위·변조 감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증거파일이 위조된 건지 알려면, 녹음된 기종의 표준파일 정보값과 비교를 해야 한다. 그런데 피해자가 당시 녹음했던 휴대전화 기기는 10년 전 출시된 휴대전화로 이미 단종된 상태여서, 표준파일 정보값을 알 수가 없었다. 음성분석실은 각종 중고 사이트와 휴대전화 대리점을 뒤져 가까스로 휴대전화를 찾아내 표준파일 정보값을 추출했다. 그 결과, 음성파일은 위조되지 않았음이 드러났고 피해자는 피해를 입증할 수 있었다. 감정 의뢰가 온 지 이미 한달이 지난 뒤였다. 이듬해 대검은 스마트폰 녹음파일 감정 소요 시간을 줄이고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연구에 들어갔다.
대검이 1·2차로 나눠 연구를 진행한 결과 지난달 30일 ‘스마트폰 녹음 위·변조 식별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8일 밝혔다. 그동안은 녹음된 스마트폰 기기와 녹음파일이 함께 있어야 정확한 감정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녹음파일만 있어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감정이 몇초 안에 가능하다.
녹음 위·변조 감정에 왜 스마트폰과 파일 모두가 필요했을까. 스마트폰 녹음파일의 위·변조 여부를 결정적으로 판단하려면 같은 기종에서 녹음된 파일의 표준값을 추출해 비교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제조사, 모델, 운영체제 버전 등에 따라 표준값, 즉 ‘디엔에이(DNA)’가 다른 점을 이용한 것이다.
2020년 성폭행 사건처럼 녹음된 스마트폰의 기종을 알더라도 단종됐거나 오래된 기종이면 기기를 찾을 수 없어 정확한 감정이 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새로운 스마트폰 기종이 매년 출시되고 단종도 빨라지면서 표준파일 찾기는 더 힘들어졌다. 스마트폰 녹음파일 위·변조 감정을 의뢰할 때 스마트폰이 함께 제출되는 경우는 전체의 10%에 불과하다. 이번에 대검은 2010년부터 현재까지 출시된 출시된 삼성·애플·엘지(LG)·샤오미·화웨이 등 스마트폰 181개 기종 녹음 표준파일을 확보했기 때문에, 감정 의뢰를 할 때 기기가 없어도 이 표준파일로 위·변조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됐다.
김경화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음성분석실장(오른쪽)과 정은혜 감정관. 대검찰청 제공
스마트폰 녹음 대중화로 각종 재판에서 녹음파일이 중요 증거로 채택되면서 녹음파일 위·변조 감정 의뢰는 앞으로 더 늘 것으로 보인다. 대검에 의뢰된 전체 음성감정 중 녹음파일 위변조 감정 의뢰 비율은 2020년 24%에서 지난해 30%로 늘었다. 녹음파일 위·변조 감정 의뢰 가운데 스마트폰 의뢰 비율은 2020년 75%에서 지난해 84%로 매년 늘고 있다.
대검은 내년부터는 딥보이스(목소리 딥페이크) 탐지 기술 개발에도 나선다. 딥보이스는 인공지능(AI) 딥페이크 기술로 목소리를 합성하는 것을 말한다. 가족이나 지인의 목소리를 모방해 보이스피싱 범죄 수법이나 성착취물 제작에 쓰인다. 대검 관계자는 “딥보이스 탐지기술 개발을 통해 보이스피싱, 가짜뉴스 등 사회적 혼란과 민생 범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감정 결과의 법정 증명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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