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서 활동하는 13년차 여성대리기사 ㄱ(56)씨는 지난 10월 저녁 9시 충북 진천에서 ‘여성기사’라는 이유로 배차를 거부당했다. 휴대전화를 이용해 정상적으로 ‘콜’을 받았지만, 대리운전업체는 “고객 관리 차원에서 남성기사를 우선 배차한다”며 다른 기사에게 ‘콜’을 넘겼다. 문제를 제기하자 폭언이 이어졌다. ㄱ씨는 “대리운전 업체 상황실에선 ‘여성 기사는 골치가 아프다. 여성기사들은 우리 회사에서 없애 버릴까요?’라고 협박했다”며 “폭언 뒤 (사과는 커녕) 동냥 주듯 가서 운행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7일 위풍당당 여성대리기사모임, 전국대리운전노조 등은 국회의원회관 제5간담회실에서 ‘여성대리기사를 옥죄는 성차별,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간담회를 열고 여성대리기사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차를 제한받고, 성희롱에 노출되는 일이 빈번하다고 주장했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의 자체 수도권 실태조사, 국토부 실태조사 등을 종합하면 여성 대리기사 비율은 5% 안팎으로, 여성 대리기사들이 모여 목소리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여성대리기사는 하루에 3∼4번씩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차에서 배제당한다고 했다. 하루 일당으로 따지면 15만원 정보 남성보다 손해를 본다. 수도권에서 20년째 대리기사로 일하고 있는 ㄴ(50)씨는 “일부 업체들은 아예 여성 기사는 뽑지도 않고 콜도 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20년 동안 열심히 일했는데 ‘여성기사 소용없다’라는 말을 들으면 많이 억울하다”고 했다. 파주지역에서 17년째 대리기사로 일하는 한아무개(55)씨는 “사무실에서 남성 기사와 같이 있으면 남성 기사에겐 ‘콜’이 뜨는데, 저한텐 뜨지 않는 경우가 있다. 여성기사들은 아예 보지도 못하는 ‘콜’들이 많다”고 했다.
‘여성대리기사를 옥죄는 성차별,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간담회에서 23년 차 대리운전 기사 이수민(55·왼쪽), 19년 차 대리기사 강금주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전남지부장(가운데),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고병찬 기자
일상적인 성희롱에도 노출된다. 19년 차 대리기사인 강금주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전남지부장은 “운행 중에 뒤에서 남성 손님이 ‘야한 동영상’을 봤다며 상담을 요청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23년 차 대리기사 이수민(55)씨는 “여성 기사가 운전하는 동안 뒤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손님을 본 적도 있다”고 했다. 실제 지난 국토교통부가 2020년 4월 발표한 ‘대리운전 실태조사 및 정책연구’를 보면, 대리운전 중 성희롱·성추행 피해를 경험한 남성 기사는 8.1%에 불과했지만, 여성 기사는 60%에 달했다.
이들은 정부가 노동환경 실태조사와 성희롱 문제 예방을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재 대리기사들은 특수형태고용노동자로서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으로 보호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창배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교육국장은 “여성대리기사 배차 차별 제한 실태를 파악해 정부가 업체에 성차별 시정을 지시해야 하고, 대리기사도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을 받아 대리업체 등 고용주가 성희롱 예방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고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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