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에서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조주빈 등의 선고 공판이 열린 2020년 11월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엔(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 시위팀 ‘엔드’(eNd)의 회원이 조주빈 등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불법촬영 등 디지털 성폭력을 겪은 피해자들이 수사·재판과정이나 주변인에게 입는 ‘2차 피해’가 심각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7일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상담지원 현황 및 피해자원 욕구조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가 2018년 4월30일(개소일)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상담 지원한 피해자 1만3590명(단순 문의 제외)의 사례를 전수조사해 작성됐다.
피해자 중 72.4%는 여성이었고, 연령별(연령미상 제외)로 보면 20대(27.2%)와 10대(25.3%)가 주를 이뤘다. 피해 유형 중 최다 비율을 차지한 건 불법촬영(26.8%)이었다. 그 다음으로 비동의 유포(18.7%), 몸캠 피싱(성적인 영상을 녹화한 후 피해자 휴대전화에 악성코드를 감염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지인들 연락처 정보를 탈취해 녹화한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고 금전을 요구하는 행위·18.0%),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물(12.2%) 순이었다.
불법촬영이나 성착취물 유포 등의 피해를 본 피해자 다수는 2차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디성센터가 피해촬영물 삭제 및 모니터링을 지원한 대상자 3648명 중 100명(여성 96명·남성 4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2차 피해를 경험한 피해자는 88%에 달했다. 2차 가해자(중복응답)로는 주변 지인(58%) 비율이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모르는 사람(52.3%), 가족(28.4%) 순이었다. 피해 촬영물을 시청한 지인이 ‘이거 너 아니냐’며 연락을 해오거나, 가족들로부터 피해자를 탓하는 말을 들은 사례 등이 주를 이뤘다.
피해자들은 수사(55.7)와 재판(34.1%), 언론 보도(25%) 등 각종 기관들로부터 2차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 진흥원 관계자는 “디지털 성폭력 피해를 입게 된 경위를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수사관이 재차 ‘상대방과 합의해서 촬영·유포한 것 아니냐’와 같은 말로 2차 피해를 주거나, 피해촬영물이 유포된 곳이 국외 사이트인 경우 ‘어차피 신고해도 수사가 잘 안 된다’는 말을 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재판 과정에서 느끼는 불만은 판사가 가해자에게 낮은 형을 선고하거나, 판사마다 선고 형량에 온도 차가 있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설문에 응한 피해자들은 디지털 성폭력 피해 이후 이사를 하거나(62.2%) 직장 퇴사(60.8%), 이직·전학(43.2%), 학업 중단(27.0%)을 경험했다(중복 응답)고 밝히기도 했다.
응답자들은 피해 이전으로의 삶을 회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치로 ‘피해촬영물의 완벽한 삭제’를 꼽았다. 디지털 성폭력이 재발하지 않도록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그 뒤를 이었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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