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18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법무부 난민면접 조작 사건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피해자들이 증언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현 출입국·외국인청) 직원들이 허위로 면접 조서를 작성해 신청자가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이른바
‘난민면접 조작 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중과실이 없다”는 이유로 면접 공무원과 통역인의 손해배생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중과실을 인정한 1심 판단을 뒤집은 것인데, 2심 법원은 원고가 고의 과실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1심에서 재판 결과에 승복해 패소가 확정됐고 배상금을 지급했지만 업무를 담당했던 공무원들은 향후 예상되는 구상권 청구 등에 대비해 항소했었다.
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10-3부(재판장 이상아)는 이집트인 무삽이 난민 심사 면접을 맡았던 통역관 장아무개씨, 서울 출입국·외국인청 조아무개 조사관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무삽의 손을 들어줬던 1심 선고를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조사관 조씨가 난민면접에서 위축된 난민신청자의 상태를 고려해 풍부한 진술을 유도하고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위법행위가 인정된다”면서도 “국가배상법은 공무원 개인은 고의나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손해배상책임을 지는데 피고의 고의·중과실에 의한 불법행위는 없어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일부 위법행위가 있었던 것은 인정하면서도 공무원의 고의나 무거운 과실 때문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또 “원고가 제출한 증거로는 조씨와 장씨가 난민면접의 허위통역·번역, 난민면접조서 기재 내용의 확인누락과 허위기재라는 위법행위를 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무삽 쪽은 “난민면접을 진행한 조사관 조씨가 법 절차를 지키지 않고 면접 영상을 기록하지 않아 증거가 남지 않은 것”이라며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당시 늘어나는 난민심사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공무원들에게 무리한 업무를 주문한 정부의 잘못은 법원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담당 공무원이 처리목표에 미달한 경우 경위서를 제출하도록 했고, 실제로 일부 공무원이 경위서를 제출했다”며 “법무부와 출입국관리사무소가 ‘난민심사 적체 해소방안’을 준수할 것을 적극적으로 지시해 난민심사가 부실하고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구조적 유인을 제공했다”고 했다. 다만, 법무부는 1심에서 항소하지 않아 2심 재판 판단 대상은 아니었다.
이집트의 한 인권단체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했던 운동가 무삽은 2011년 ‘아랍의 봄’ 혁명을 주도한 단체에서 일하며, 반정부 시위를 벌이다 당국에 수차례 체포된 뒤 한국으로 망명했다. 2016년 5월 아내와 함께 한국에 온 무삽은 난민인정신청서에 이러한 사연을 적었지만, 난민면접 조서에는 전혀 다른 사실이 기재되며 난민 불인정처분을 받았다. 조서에는 무삽이 “한국에서 돈을 벌 목적으로 난민신청을 했다. 난민신청서에 기재된 사유는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적혔다.
무삽 뿐만 아니라 2015년 9월4일부터 2018년 7월1일 사이 아랍어로 진행된 난민 면접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한 정부는 자체 조사를 거쳐 8백여명에게 재심사 기회를 부여했다. 정부는 무삽에 대해서도 난민 불인정처분을 직권 취소한 다음 다시 난민면접을 진행해 2018년 3월 난민 지위를 인정했다. 무삽은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데 그치지 않고, 2018년 9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021년 12월 3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08단독 이정권 부장판사는 “피고(장씨와 조씨, 그리고 정부)가 3700만원을 공동하여(나눠)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판결한 바 있다. 1심 선고 이후 정부(법무부)는 판결에 승복하고 배상금 3700만원을 무삽에게 지급했지만, 장씨와 조씨는 향후 예상되는 정부의 구상권 청구 등에 대비해 항소를 제기했다.
무삽 쪽은 정부도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금을 지급한 사건의 결론이 2심에서 뒤집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무삽의 변호인은 한겨레에 “당시 수백명의 난민면접 조작 사건 피해자 가운데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한 건 무삽 한명으로 ‘난민 면접조작 사건’의 피해자라는 상징성이 있다”며 “대법원에 상고해 다투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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