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5일 안양의 한 요양원 면회실에서 엄주분씨를 만나 이야기 나누는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고경태 기자
*편집자주: 100살을 눈앞에 둔 전직 ‘남파 공작원’이 재심을 신청한다. 공작원인 건 맞지만 수사 과정에서 고문 끝에 허위 자백을 했고, 하지도 않은 간첩 행위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니 재심을 통해 무죄 선고를 해달라는 취지다. 본인이 실제 공작원임을 인정하면서 재심을 청구한 첫 사례다.
‘남파 공작원’ 엄주분(98)씨의 변호인단은 6일 대법원에 재심신청서를 제출한다. 변호인단은 △민간인 수사권이 없는 국군 수사기관이 엄씨를 수사·체포했고 △장시간 불법체포 구금 상태에서 자백이 이뤄졌으며 △남파 공작원은 맞지만 형법상 간첩죄 행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씨의 간첩행위 유죄 판결은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형사소송법은 ‘공소의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경찰이 저지른 직무 관련 범죄에 대한 확정판결이 있거나, 없다면 이를 증명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데, 국군 수사기관이 불법 수사를 했으니 재심 개시가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다.
엄주분의 존재를 추적해 찾아낸 사람은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김 교수는 해방공간의 법조인들을 다룬 ‘법률가들’(창비, 2018) 후속작으로 1950년대 피고인 이야기에 관한 집필을 구상하던 중 흥미로운 인물을 만났다고 했다. 죄수들에 대한 헌신적 사랑으로 ‘사도법관’으로 불린 김홍섭 판사와 나눈 편지 속의 단정한 글씨와 지성적 문체, 그 시절 드물게 검찰 수사와 공판 과정에서 진술거부권을 행사한 결기 있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남동생이 안양에 산다”는 편지 내용을 근거로 유가족을 찾다가 살아있는 당사자를 만났을 때는 기적을 눈앞에 보는 느낌이었다고 김 교수는 회고했다.
엄주분씨와는 지난해 5월15일부터 2023년 10월25일까지 무려 30여차례 면담을 진행했다. 이후 엄씨에 대한 1·2·3심 판결문을 확보하고, 수사·공판·수형기록까지 모두 열람해 엄주분이라는 인물의 궤적을 공적인 기록으로 확인했다.
김 교수는 4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를 통해 “해병대특무대, 해군정보국의 안가 등에 영장 없이 갇혀 지내며 고문당한 사실을 법원도 외면할 수 없으리라 본다”고 전망하며 “이번 재심을 진영논리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이번에 도움을 준 이들이 모두 보수적인 분들이었음도 밝히고 싶다”고 덧붙였다. 1979년 대전교도소에서 나온 이후 안양의 한 교회를 중심으로 호스피스, 화단 관리, 화장실 청소 등의 봉사활동을 하며 40여년간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살아온 엄씨에 대해 김 교수는 '엄 권사님'이라고 호칭했다.
1947년 3월12일 박천평과 엄주분의 결혼식. 결혼 당시 박천평은 충남 조선민주청년동맹(민청) 청년부장으로 일하고 있었고 엄주분은 결혼 후 충남도 남조선민주여성동맹(여맹, 조선부녀총동맹의 후신) 선전부장으로 활동했다. 엄씨는 1948년 1월9일 딸 박예춘을 출산하고 그해 8월에는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 인민대표자회의에 공주군 여맹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박예춘 제공
― 30회 면담을 하면서 무엇을 느꼈나. 결론적으로 엄주분은 어떤 사람이던가.
“정직성 강박을 지닌 분이다. 엄주분은 체포 뒤 한동안은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거짓말을 지어내며 버텼지만, 결국 자신이 거짓말한 것을 스스로 밝히고 보복으로 더 심한 고문을 받았다. 웃기지만 어린시절 받은 기독교 신앙교육의 영향이었다. 그게 수사기록으로도 그대로 확인된다.
할머니는 아는 척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 당대 최고의 명문 여학교를 다니면서 자발적으로 창씨개명한 얘기 등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지금은 기독교인에 반공주의자이지만, 1950년 감옥살이를 함께하고 북에서도 가깝게 지낸 정주경 같은 옛 동료들을 이야기할 때면 애정이 뚝뚝 떨어진다. 정주경은 남쪽에 정경희로 알려진 인물이고 훗날 노동당 중앙위원회 연락부장을 지냈다. 누구 눈치 볼 필요 없는 98살 노인의 이야기는 그 시대를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보게 만든다. 최근에 기력이 많이 떨어지셔서 안타까울 뿐이다.”
― 재심을 권유한 것으로 안다.
“엄주분은 체포된 이후 영장 없이 7개월 20일간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고문과 전향공작을 당했다. 고문하던 사람 중에는 전향한 전직 간첩들도 있었다. 정식으로 입건되기 전에 동료들을 넘기고 전향하면 수사관이나 반공강연 강사가 되는 거다. 고문을 이겨내며 끝까지 전향을 거부하면 그때부터 입건, 수사, 공판을 거쳐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받는다. 비전향 장기수들은 재판 확정 이후 교도소에서 이루어진 살인적인 전향공작 이야기를 많이 했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서 엄주분 수사기록과 공판기록을 들여다보니 ‘입건 전 전향공작’의 끔찍한 실체가 손에 잡혔다. 예컨대 남영동 대공분실도 ‘입건 전 전향공작’을 위해 만들어진 장소다. 북에서 간첩을 안 보내니 민주화 운동 하는 청년, 학생을 거기 가뒀다가 끔찍한 사건들이 터진 것이다. 엄주분 사건의 경우 기록만 봐도 명백한 불법이 눈에 띄어서 충분히 재심이 가능하다 싶었다. 그런데 엄 권사님은 평생 속죄하며 살아온 분이라서 재심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억울하게 공범으로 몰린 분들을 찾아서 사과하고 싶지 않냐고 하니 겨우 재심에 동의하셨다.”
올해 8월14일 안양의 한 요양원에서 엄주분씨를 만난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오른쪽). 맨 왼쪽은 변호인단에 속한 김진한 변호사.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법률가로서 이번 재심의 의미는 무엇이라 정리할 수 있나.
“ ‘진짜’ 남파공작원의 재심청구가 받아들여진 경우를 찾기 어렵다. 그런데 ‘조작’ 간첩 사례인 조봉암 사건과 ‘진짜’ 남파공작원 엄주분 사건을 비교해보면 첫째, 수사권이 없는 국군정보기관의 수사, 둘째, 장기간의 불법체포구금 상태에서 이루어진 본인 또는 공범의 자백, 셋째, 간첩죄에 해당하는 실제 범죄사실의 부존재라는 점에서 다를 게 없다. 엄주분은 여성들에게 평화통일정책을 선전하러 남쪽에 내려왔다. 조봉암이 무죄라면 엄주분도 무죄다. 해병대특무대, 해군정보국의 안가 등에서 영장 없이 갇혀 지내며 고문당한 사실을 법원도 외면할 수 없으리라고 본다.”
― 남파공작원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거다.
“이번 재심을 진영논리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고속성장의 그늘에는 사회주의자나 민주화 운동가들에 대한 가혹한 탄압과 비인간화의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우리 체제의 우월성, 정당성, 건강성을 보여주는 최선의 수단이다. 엄 권사님을 찾는 데 도움을 준 분들이 모두 보수적인 분들이었음도 밝히고 싶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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