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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피해자 국선변호사들 “경찰 조사 다 마치고 선임, 조력권 침해”

등록 2023-11-23 14:49수정 2023-11-23 15:00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한 성범죄 사건에서 경찰이 저에게 연락해 국선변호사로 선정됐으니 피해자를 대리하라고 했습니다. 상황을 보니, 국선변호사가 선정되기 전에 피해자에 대한 경찰 조사는 다 끝나있었습니다. 성범죄 사건은 경찰의 초기 조사가 중요하고, 경찰에서의 피해자 진술은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는데 ‘국선 변호사 선정 전 피해자 조사’는 피해자가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합니다.” (10년 차 성범죄전담 국선변호사인 신진희 변호사)

성범죄, 아동·장애인 학대 등 범죄 피해자의 법률대리를 돕는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 도입 10년째를 맞아 법무부가 지난 22일 연 학술대회에서 국선변호사 수십명이 제도 개선을 요청했다. 지난 2012년 도입된 피해자 국선변호사제도는 올해 9월까지 26만251개 사건을 지원했다.

미성년자인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무료로 법률 지원을 해준다는 취지로 도입된 이 제도는 장애인 및 성인으로까지 지원 대상을 넓혀왔고, 내년부터는 스토킹 범죄 피해자들도 지원한다. 국선변호사들은 성폭력 재판에서 피해자의 얼굴이 나오는 시시티브이(CCTV) 사진에 대한 증거조사를 비공개로 하도록 재판부에 직접 요청하는 등 피해자 인권 향상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엔(n)번방 사건 때는 피해자들의 개명과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돕기도 했다.

그러나 국선변호사들은 여전히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변호사들의 정보 접근권이 제한돼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의 얘기를 듣고 사실관계를 정확히 정리하고, 법적인 조언을 해줘야 할 변호사들이 경찰 조사에서 배제되고, 수사기록을 파악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발제를 맡은 신진희 변호사는 “일선 경찰서에선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를 조사한 뒤 국선변호사 선정을 하는 게 일반적이고 오히려 피해자가 변호사 동석을 희망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선정 뒤 조사를 하고 있다”며 “특히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갖게 돼 경찰이 사건을 불송치하면 피해자가 이의신청을 해야 하는데 이런 불복절차를 위해선 조사 단계에서부터 변호사와 함께 조사받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오히려 ‘경찰 조사 뒤 국선변호사 선정’ 관행이 강해졌다”고 지적했다. 신 변호사는 “관련 지침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국선변호사들은 수사 결과 통지도 더 구체적으로 돼야 한다고 말했다. 6년 차 국선변호사인 ㄱ씨는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면 1301 검찰콜센터에서 국선변호사한테 수사결과를 통지하는데 사건번호, 접수일자, 죄명 정도이고 피의자의 이름은 없다. 검찰 사건조회를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도 “특히 불법촬영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 뒤, 경찰이 수사 중 불법촬영물을 다운받은 또 다른 피의자를 찾아냈어도 국선변호사는 추가 피의자에 대해선 수사결과를 통지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법무부 제공
법무부 제공

나이, 신체·정신적인 장애로 인해 의사소통이 어려운 피해자들의 수사 및 재판에서 진술을 돕는 진술조력인 제도도 10년째를 맞아 이날 학술대회에서 여러 개선점이 논의됐다.

진술조력인들은 실무보다는 이론에 치중한 교육방식 때문에 전문성 강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계약직 근로형태, 경력 반영을 하지 않는 급여 등 처우 개선도 과제로 지적됐다.

김진영 경기서부해바라기센터 진술조력인은 “영국·캐나다 등 국외에서는 피의자나 피고인도 진술조력을 받을 수 있다. 현장에서도 장애인 피의자에 대한 진술조력 문의가 잦은데 의사소통이 어려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진술조력 대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술조력인 ㄴ씨는 “(보호자 외의) 타인에 의한 아동학대는 (아동학대 처벌 특례법이 아닌) 아동복지법 적용을 받는데, 법적으로 진술조력인이 개입할 수 없는 사건이다. 사례회의 때도 여러 번 얘기했었는데 법령개정이 시급하다. 이 자리에서 말하는 게 가장 빠르다고 생각해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정가진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장은 “아동복지법 소관기관인 보건복지부와 얘기해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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