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서울 전쟁기념관 앞에서 고 채 상병 사건의 진상을 촉구하는 해병대 예비역 전국 연대 1차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국방부 장관이 해병대 채아무개 상병 순직 사건 처리 과정에서 해병대 수사단 외 국방부 조사본부에까지 개입한 정황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수사 과정 전반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못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자신이 결재한 결과를 뒤집기 위해 국방부 장관이 전방위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밝히기 위해 특별검사의 수사나 국정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은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최종 결재한 뒤 하루 만에 번복하면서 불거졌다. 지난 7월19일 경북 예천에서 호우 실종자를 찾다 순직한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하던 박정훈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은 7월30일 오후 ‘임성근 1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를 적용해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내용을 장관에게 보고했다. 이 장관은 보고서에 결재했다.
그런데 다음날 국방부는 예정됐던 언론 브리핑과 국회 국방위원회 설명을 취소했다. 이 장관은 ‘사건의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자신이 결재한 내용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갑작스레 뒤바뀐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개입이 시작됐다. 국방부 장관의 법무참모인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7월31일~8월1일 박 단장에게 수차례 전화해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다 빼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제목을 빼라’고 말했다고 박 전 단장은 주장하고 있다.
장관의 군사보좌관이던 박진희 육군 준장(현 소장)은 8월1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확실한 혐의자는 수사 의뢰, 지휘책임 관련 인원은 징계로 하는 것도 검토해주십시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지휘책임 관련 인원’은 사고 현장에 없던 여단장, 사단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국방부 군사보좌관은 국방부 장관의 비서실장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의 발언은 장관의 지시로 받아들여진다.
장관이 자신의 결정을 뒤집은 배경으로 제기되던 ‘ 윤석열 대통령 - 대통령실 국가안보실-국방부’로 이어지는 수사 외압 경로도 여러 증언을 통해 드러난 바 있다.
박 전 단장은 장관 결재를 받은 날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에 파견된 해병 대령으로부터 ‘장관 결재본을 보내줄 수 없느냐, (조태용) 안보실장이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을 통화로 들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단장이 거부하자 이번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언론 브리핑 예정 자료’라도 보낼 것을 지시해 박 전 단장은 이를 국가안보실로 보냈다.
박 전 단장은 지난 8월28일 공개한 사실관계 진술서에서 장관의 결재 번복 이유에 대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으로부터 “브이아이피(VIP·대통령 지칭)가 격노하면서 국방부 장관과 통화한 뒤 이렇게 되었다”라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단장과 함께 수사했던 해병대1광역수사대장도 지난 9월 수원지방법원에 제출한 사실확인서에서 “지난 7월31일 정종범 해병대 부사령관으로부터 언론 브리핑 등이 취소된 사유에 대해 ‘대통령이 이런 일에 사단장이 포함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하겠냐, 군의 사기는 어떻게 되겠냐라며 해병대 1사단장 소장 임성근을 관계자(혐의자)에서 제외하라고 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박 전 단장 변호인 김정민 변호사는 “채 상병 사건 수사 독립성이 전반적으로 침해됐음이 드러났다”며 “실체를 드러내려면 특별검사의 수사나 국정조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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