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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사내 비위 조사 담당자가 성추행…외려 피해자 부서 이동 시도

등록 2023-11-21 07:00수정 2023-11-22 02:50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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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중순,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로 병가 중인 ㄱ씨는 돌연 소속 팀장으로부터 ‘다른 팀에 갈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다른 팀원을 충원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제가 다른 팀에 갔으면 하시는 건가요? 저는 제 복귀 시점에 원하는대로 가해자와 분리해 발령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ㄱ씨의 대답에 다시 질문이 돌아왔다. “복직할 때 ‘배려’해주는 걸로 회사랑 얘기가 된 건가?”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토탈에너지스(한화토탈)가 회사 내에서 강제추행이 발생했음에도 가해자를 솜방망이 징계한 뒤 가해자와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분리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부서 이동을 요구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가해자는 감사업무를 총괄하는 자로 사내 구성원의 비위 행위를 조사하는 업무를 맡은 자였다.

한화토탈에서 직장 상사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당한 ㄱ씨는 한겨레에 “성폭력 사실 자체로도 괴롭히지만, 더욱 힘든 건 회사의 대처 방식”이라며 “그간 인정받았던 업무 능력과 인간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ㄱ씨는 지난해 10월6일 팀장 ㄴ씨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 ㄴ팀장은 ㄱ씨에게 “나는 네가 여자로 보인다”고 말하며 속옷 끈 위치의 등을 만지거나 어깨, 손을 수차례 만졌다. 당시 ㄴ팀장은 사내 비위 혐의자를 조사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ㄱ씨의 직속 팀장은 아니지만 업무상 우월적 지위가 인정됐다.

ㄱ씨는 사건 발생 직후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회사는 ㄴ팀장을 정직 3개월 징계하는 데 그쳤다. ‘징계 수준이 낮다’고 이의제기하자 회사는 ‘지난 10년간 회사에 신고된 성폭력 사건 5건 모두 그보다 가볍거나 비슷한 징계가 내려졌다’며 전례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는 가해자·피해자를 분리하겠다며 ㄴ팀장을 보직에서 해임하고, 지역에 있는 공장으로 발령냈다. 하지만 ㄴ씨의 공장에서의 업무가 곧 복직할 ㄱ씨가 본사에서 줄곧 도맡아 온 업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게 ㄱ씨 주장이다. ㄱ씨는 회사에 ‘실질적 분리 조치’를 요구했다. 회사는 ‘불가능하다’고 답한 뒤, 오히려 ㄱ씨에게 ㄴ씨 업무와 연관이 적은 다른 팀으로 이동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와중에 지난 8월10일 법원은 ㄴ씨의 강제추행 혐의를 인정해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다. 1심 유죄 판결이 나오자 회사는 “확정 판결이 나오면 최종 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 수위를 재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히면서도 추가 조치는 하지 않았다.

ㄱ씨는 “ㄴ팀장으로부터 같은 피해를 봤다는 다른 직원의 폭로도 나왔지만 회사는 전수 조사도 하지 않고 추가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ㄱ씨는 현재 트라우마 치료를 받고 있다.

한화토탈 관계자는 “사건 발생 직후 가해자에 대해 팀장 면보직을 했고, 징계가 끝난 뒤 복귀할 때도 서울사무소가 아닌 공장에 복직을 시키는 등 가해자·피해자를 분리하기 위해 재빨리 움직였다”며 “피해자가 병가 중이라 현재까지 둘이 마주칠 일도 없었다”고 말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언어 성희롱이 아닌 강제추행이 있었는데, 실질적인 분리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의무조치 불이행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정 민주노총 금속노조 여성국장도 “실질적인 업무상 분리조치가 되지 않은 상황으로 보인다”며 “형사 사건 1심에서 벌금 800만원이 나올 정도면 다른 기업에서는 해고되는 사례가 많다”고 평가했다. 지난 2021년 울산지법은 이 사건과 유사한 ‘1회성 강제추행’으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고 해고당한 이가 제기한 해고무효 소송에서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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