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일인 지난 16일 오전 광주 북구의 한 고사장에 한 수험생의 준비물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갑자기 고사장이 바뀌어서 숨도 못 쉬고 죽다 살았어. 무슨 정신으로 시험을 봤는지 모르겠어.”
지난 16일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끝난 오후 5시께, ㄱ(50)씨는 시험을 보고 나오는 아들 ㄴ(20)군을 보고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우리 아들 잘했어?”라고 묻는 말에 ㄴ군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ㄴ군은 어렸을 때부터 앓았던 천식으로 ‘시험 편의 제공’ 대상자였다. 예상치 못한 기침, 호흡곤란으로 본인은 물론 다른 학생들에게도 피해를 줄까 봐 별도의 교실에서 시험을 치르기로 한 터였다.
ㄱ씨가 사정을 들어보니, 1교시 시험 시작 직전 누군가 들어와 책상과 의자를 들고 옆 교실로 이동하라고 했다고 한다. 담배나 향수 등 냄새를 맡으면 가슴 통증이 시작되고 천식 호흡기(네블라이저)를 사용해야만 하는 ㄴ군은 아침 7시50분부터 교실 환기를 모두 시켜둔 상태였다. 예상치 못한 교실로 가니 전자담배 냄새가 났고 가슴 통증이 느껴졌다. “환기를 시켜둔 교실로 다시 가겠다”고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ㄱ씨는 17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디스크를 앓는 학생의 침대를 아들 고사장 교실에 실수로 가져다 놨는데 침대를 다시 옮길 생각을 하지 않고 아들더러 옆 교실로 가라고 했다”며 “아들은 당황한 나머지 호흡곤란이 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나머지 시험을 치러야만 했다”고 토로했다.
특히 ㄴ군은 지난해 4월 코로나19에 걸린 뒤 증상이 심해져 학원에서 모의고사를 볼 때도 창문 옆자리를 배정받거나 하는 등 방법으로 시험을 치러왔다고 한다. 호흡곤란 증상은 한 달에 4∼5번꼴로 나타나기 때문에 1년에 한 번인 수능을 망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더욱 단단히 준비했는데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져 증상이 심해진 영향도 있다.
ㄱ씨는 “그런데도 학교 쪽에선 유감이라는 뜻만 밝히고 공식 사과는 하지 않았다. 고사장을 임의로 바꾼 것도 큰 문제 아닌가. 교육청 쪽에서도 학교 쪽에 주의를 시킬 수밖에 없다고만 말했다”며 “단순 실수로 넘어간다면, 그 실수로 시험도 제대로 보지 못한 우리 아들의 지난 1년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느냐”고 했다.
전남 순천에 위치한 학교 쪽은 “원래 디스크 환자를 위해 침대 등이 배치된 고사장이 있었고, 천식 환자를 위한 고사장이 있었는데 실수로 두 고사장을 바꿔 안내했다. 시험이 시작되기 직전이라 침대를 옮길 순 없어서 학생(ㄴ군)을 옆 교실로 이동시켰다”며 “옮긴 교실을 충분히 환기했고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예비시험실도 있다고 안내를 했다”고 해명했다.
김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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