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서울남부교도소에 있는 만델라 소년학교에서 학생들이 14일 2024학년도 수능을 이틀 앞두고 수업을 듣고 있다.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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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창살로 된 굳건한 문 5개를 통과해야 이를 수 있는 학교가 있다. 입구에는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는 데 있다’는 넬슨 만델라의 명언이 적혀 있다. 복도를 따라 교무실, 교육실, 상담실, 소그룹실이 늘어서 있는 풍경은 여느 학교와 다르지 않은데, 학생들은 가슴팍에 번호를 단 파란색 수감복을 입었다. 서울시 구로구 서울남부교도소에 있는 ‘만델라 소년학교’다. 2024학년도 수능을 이틀 앞둔 14일 오전, 소년 수용자 10명이 한 교실에 앉아 이비에스(EBS) 수능특강 교재를 풀고 있다.
교도소 안 학교인 만델라 소년학교는 올해 3월2일 문을 열었다. 만 15~17살 소년 수용자를 위한 교육 과정을 만들어 학교처럼 정규 수업을 진행한다. 법무부가 지난해 10월 내놓은 ‘소년범죄 종합대책’에서 수도권에 ‘학과교육 중심 소년전담 교정시설’을 운영하기로 하면서 설치됐다. 학생 수는 현재 37명인데 수감 기간이 저마다 달라 들쑥날쑥하다. 지난 8월 이 학교 27명이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 가운데 10명이 2024학년도 수능을 치르기로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만델라 소년학교에 공식 수능 시험장을 설치했다. 교도소 안에 설치된 첫 수능 시험장으로, ‘서울 구로구 제13지구 제6시험장’이라는 어엿한 이름도 붙었다. 교육청은 이들의 수능 응시 수수료도 전액 지원한다. 이전에도 교도소에서 간혹 수능을 치르는 수용자가 있었는데, 교육청 직원이 교도소에 파견돼 특별 공간에서 일대일로 감독하며 시험을 쳤다.
수능을 앞둔 교실의 긴장감은 만델라 소년학교에서도 매한가지다. 맨 앞자리에서 문제집을 풀던 한 소년 수용자가 손을 번쩍 들자 선생님이 그의 곁으로 향한다. 문제풀이를 돕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문학·수학 수업을 맡고 있는 연세대 건축공학과 김민선(20)씨는 “검정고시에 비해 수능시험은 수준이 확 높아져 힘들었을 텐데 아이들이 잘 따라와줬다”며 “틀려도 되니까 계속 대답하라고 첫 수업부터 이야기했는데, 이렇게 태도를 잡아주니 아이들 실력이나 수업 집중도가 하루하루 높아지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들의 하루 일과도 여느 수험생처럼 간단치 않다. 평일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국어·수학·영어·한국사 등 과목 수업을 듣는다. 수업은 대학생 강사들이 맡는다. 밤 9시까지는 자습시간이 이어진다. 김종한 서울남부교도소 사회복귀과장은 “만델라 소년학교를 처음 시작할 땐 소년수들이 과연 공부에 열의를 보일까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수업을 진행해보니 깜짝 놀랄 정도로 학구열이 높다. 영어단어 외우기 경쟁을 하느라 밤 11시까지 공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수능을 치르고 대학 입학 기회를 얻는 소년 수용자는 출소 때까지 휴학계를 내 입학을 늦추거나, 형이 많이 남은 경우 방송통신대학교 수업을 듣는 등 교도소에서 고등교육도 받을 수 있다. 교도소 안 수업과 수험 생활은 더 좋은 상급학교 진학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김종한 과장은 “교도관 생활을 33년 하면서 재범으로 다시 교도소에 돌아오는 소년수들을 많이 봐왔다”며 “이들에게 다시 범죄의 길로 빠지지 않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학교 운영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